윤석열 대통령은 2022년 5월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에 대해 “미국이 그렇게 한다”라고 설명했다.ⓒ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은 2022년 5월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에 대해 “미국이 그렇게 한다”라고 설명했다.ⓒ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한 인사가 윤석열 정부 고위공직자 후보자로 지명됐다. 곧바로 그와 주변을 둘러싼 여러 의혹이 쏟아졌다. 언론 보도가 이어지면서 정치권에서도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시사IN〉 취재 과정에서도 석연치 않은 정황들이 드러났다. 사실관계 확인을 위해 후보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러 질문에 한참을 설명한 그는 통화를 마치기 전 이렇게 말했다. “인사 검증이 얼마나 길고 혹독했는지 말로 다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제출하라는 것 전부 제출했고, 소명하란 것도 다 했어요. 정말 문제가 있었다면 그때 걸러지지 않았겠습니까?” 의혹에 대한 억울함과 국면 돌파에 대한 자신감을 동시에 내비친 말이었다. 결과적으로 그는 낙마했다. 후보자 지명 전 인사 검증이 부실했다는 지적과 함께 무대에서 내려왔다.

지난해 5월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낙마한 장관급 후보자는 총 5명이다. 김인철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 정호영·김승희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 송옥렬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 김행 여성가족부(여가부) 장관 후보자다. 모두 부실 인사 검증 사례로 꼽힌다. 35년 만에 국회에서 임명동의안이 부결된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 임명 하루 만에 자진 사퇴한 정순신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 후보자도 실패한 인사 검증 사례로 거론된다. 조만간 헌법재판소장과 KBS 사장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가 예정돼 있고, 여가부 장관과 대법원장은 인선 절차를 새로 밟아야 한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연말에 일부 장관도 교체될 가능성이 높다. 윤석열 정부의 인사 검증을 둘러싼 우려가 이어지고 있다.

인사 검증 논란은 역대 정부마다 되풀이됐다. 검증 시스템이 부실하다는 지적과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도 여러 차례 나왔다. 다만 윤석열 정부의 인사 검증 성적표를 향한 비판의 강도는 상대적으로 더 높다. 역대 정부와 비교해 검증 시스템에 큰 변화를 주었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5월 취임과 동시에 민정수석실을 폐지하고 법무부에 인사정보관리단 신설을 추진했다. 과거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주도하던 인사 검증 기능을 다른 기관으로 분산해 투명성과 책임을 높인다는 취지였다. 이에 따라 윤석열 정부의 인사 검증 과정은 크게 4단계로 나뉘게 되었다. ‘대통령실 인사기획관 추천→고위 공직 예비 후보자의 사전 질문서 답변 작성을 통한 자기검증→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 검증→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실 검증 및 보고서 작성’이다. 공직기강비서관실의 보고를 확인한 대통령이 후보자 지명 여부를 최종 판단한다.

대통령실이 공개한 ‘공직 예비 후보자 자기검증 질문서’ 일부.
대통령실이 공개한 ‘공직 예비 후보자 자기검증 질문서’ 일부.

문제는 검증 작업이 초반부에 해당하는 ‘예비 후보자의 사전 질문서 답변’에서부터 제 역할을 못한 정황이 계속해서 드러나고 있다는 점이다. 대통령실은 10월5일 ‘공직 예비 후보자 자기검증 질문서’를 공개했다. 지난해 공개한 질문서에 항목을 추가해 개선한 것으로, 총 64쪽 분량이다. △기본 인적사항 △국적·출입국 및 주민등록 △병역의무 △범죄경력 및 징계 △재산 관계 △납세의무 이행 등 △학력‧경력 △연구 윤리 △직무 윤리 △공직자로서의 품위 △기타 등 11개 항목에 총 169개 질문이 담겨 있다. 예비 후보자는 이 질문들에 대해 모두 답변을 해야 하고 필요하면 관련 자료도 함께 제출해야 한다.

‘자기검증’ 제대로 했나

‘본인, 배우자 또는 직계존비속이 원·피고 등으로 관계된 민사·행정 소송이 있습니까?(공직자로서의 품위 항목, 16번 질문)’ ‘본인, 배우자 또는 직계비속이 비상장회사의 주식 또는 지분을 보유했거나 현재 보유하고 있습니까?(재산 관계 항목 21번 질문)’ ‘비상장회사 주식의 취득 또는 매도 과정에서 사회적·경제적 논란이 될 소지는 없었는지 소명해주시기 바랍니다.(재산 관계 항목 21-4번 질문)’ 자기검증 질문서에 담긴 질문 일부다. 모두 앞서 낙마한 후보자들이 지명 직후 받았던 의혹과 ‘직접적’ 관련이 있다.

김행 전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시사IN 신선영
김행 전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시사IN 신선영

김행 여가부 장관 후보자는 2013년 박근혜 정부 청와대 대변인으로 임명된 직후 자신이 공동 창업한 위키트리의 운영사 소셜뉴스 주식(비상장)을 시누이 등에게 매각했다가 퇴임 후 다시 사들였다. 지금은 이 회사의 최대 주주다. 백지신탁 제도를 회피하려 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공동 창업자와 회사 경영권을 두고 갈등을 벌이다 소송전을 벌이고 패소했다(민사 소송, 2021년).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는 비상장주식 액수가 10억원에 육박했는데 재산 신고를 하지 않았다는 지적을 받았다. 그 밖에 △정순신 후보자의 아들 학교폭력 문제와 이에 대한 소송전 논란 △김승희 후보자 부동산 불법 증여 의혹 △김인철 후보자 ‘논문 심사’ 논란 △정호영 후보자의 ‘자녀 특혜 의혹’ 등과 관련된 질문도 공직 예비 후보자 자기검증 질문서 항목에 포함돼 있다. 질문에 대한 후보자들의 답변만으로 논란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낙마한 후보자들이 자기검증 질문서에서 어떻게 답변했는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사실대로 썼을 수도 있고, 축소하거나 허위로 답변했을 수도 있다. 실제 대통령실은 정순신 국가수사본부장 후보자에 대한 지명을 철회하면서 “정 후보자가 질문서의 ‘본인, 배우자 또는 직계존비속이 원·피고 등으로 관계된 민사·행정 소송이 있습니까?’ 항목에 ‘아니요’라고 대답해 문제를 확인하지 못했다”라고 밝힌 바 있다. 후보자의 축소·허위 답변 작성에 대한 법적 책임은 없다. ‘향후 공직 임용에서 배제되는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게 전부다(자기검증 질문서 표지).

이균용 전 대법원장 후보자.ⓒ시사IN 조남진
이균용 전 대법원장 후보자.ⓒ시사IN 조남진

다만 최근 예비 후보자 자기검증 이후 단계에서 ‘놓쳤다’라거나 ‘몰랐다’고 설명하기 어려운 정황이 드러났다.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는 비상장주식 미신고 사실을 스스로 공개했다. 그는 청문회에서 ‘몰라서 재산 신고를 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자기검증, 또는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 자료수집 과정에서 미신고 사실이 확인돼 뒤늦게 알렸을 가능성이 높다. 미신고 사실 공개 시점은 후보자 지명 후 국회에 인사청문안이 제출될 무렵이라, 대통령실도 파악하고 있었으리라 보인다. 재산 신고 문제는 이균용 후보자를 둘러싼 논란과 국회 인준 부결의 핵심 쟁점이 되었다. ‘부실 검증’ ‘검증 실패’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운 이유다.

예비 후보자들이 작성한 답변과 관련한 자료 수집은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이 맡는다. 검증 동의서를 받아 국세청과 금감원·경찰·검찰·병무청 등 각 기관의 전산망을 통해 확인하고, 법원 판결문도 조회한다. 이 과정에서 예비 후보자들은 추가 소명과 자료 제출을 하게 된다. 자료 수집과 함께 평판 조회 등 추가 정보 수집도 병행한다. 인사정보관리단 검증 자료 수집이 마무리되면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실이 이를 넘겨받아 종합 보고서를 쓴다. 적격 여부에 대한 판단이 이때 이뤄진다. 대통령의 판단은 그다음이다.

투명성 강조한 법무부는 묵묵부답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인사 검증 부실 논란에 대해 “자료 수집 업무를 통상적으로 한다”라고 밝혔다.ⓒ시사IN 이명익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인사 검증 부실 논란에 대해 “자료 수집 업무를 통상적으로 한다”라고 밝혔다.ⓒ시사IN 이명익

광범위한 자료와 정보를 수집하는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이 법원 판결문만으로도 확인할 수 있는 앞서의 정순신 후보자와 김행 후보자의 송사에 대해 파악했는지,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실이 이를 검증해 보고했는지 등은 알려지지 않았다. 법무부는 잇따른 고위공직 후보자 낙마로 인사 검증 부실에 대한 지적에 제대로 답하지 않고 있다. 보안과 개인정보 유출 등의 문제로 검증 내용은 물론 ‘검증했는지 여부도 확인해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국회에서 검증 과정에 대한 자료를 요구해도 제출하지 않는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도 10월11일 국정감사에서 “특정한 검증 대상의 검증 내용에 대해 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저희는 객관적 자료를 수집하는 업무를 통상적으로 한다”라며 종전 법무부 답변을 그대로 유지했다.

법무부는 지난해 5월25일 인사정보관리단 신설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 바 있다. “‘음지’에 있던 인사 검증 업무를 ‘양지’로 끌어내 투명성을 높이고, 감시가 가능한 통상의 시스템하에 두는 것임. 그동안 ‘질문할 수 없었던 영역’이던 인사 검증 업무를, ‘질문할 수 있는 영역’으로 재배치하는 조치임(인사정보관리단 설치 관련 설명자료 1쪽).” 역대 정부는 인사 검증 논란이 불거지면 보안과 기밀, 대통령의 인사권을 앞세워 검증 관련 내용을 확인해주지 않았다. 관행을 끊어내고 투명성과 책임을 강화하겠다던 윤석열 정부의 법무부도 질문은 받지 않고, 확인해주지 않고 있다. 이전 정부와 비슷한 답을 내놓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인사 문제는 인사 검증 실패, 부실 논란으로만 볼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통령의 인사 기조도 되짚어봐야 한다는 취지다. 과거 청와대에서 공직자 인사 실무를 맡았던 한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검증 과정에서 후보자의 드러나지 않은 새로운 의혹이 문제가 된 경우라면 검증 부실, 실패라고 볼 수 있지만 문제 소지가 확인됐는데도 후보자로 지명됐다면 단순히 검증에만 문제가 있다고 볼 수 없다. 적절하지 않다는 보고를 해도 대통령이 결정하면 따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전직 대통령 탄핵 등으로 인재풀이 줄어들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윤석열 대통령의 인사 기조를 재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기자명 문상현 기자 다른기사 보기 moo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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