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훈의 〈비대칭 탈냉전 1990~2020〉(서해문집, 2023)은 정전협정 70년이자 한·미 동맹 70년을 맞은 올해의 책이다.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 소비에트(소련)와 동구 공산권이 몰락했다. 냉전의 한 축이던 공산권의 몰락이 지구 전역의 냉전을 해소해줄 것으로 기대했지만, 한반도에서는 그렇게 되지 않았다. 한국은 소련(1990)·중국(1992)과 국교를 맺었지만, 북한은 미국·일본과 수교하는 데 실패했다. 기울어진 탈냉전 구도는 북한 정권을 불안하게 하고 ‘핵게임’에 몰두하게 만들었다.

ⓒ이지영 그림
ⓒ이지영 그림

〈비대칭 탈냉전 1990~2020〉은 지난 30년 동안 남한과 북한 정부가 적대를 해소하고 평화를 위해 기울인 네 차례의 중요한 시도를 세밀하게 복기하고 패착을 분석한다. 네 차례 시도는 다음과 같다. ①남북이 유엔에 동시 가입하고(1991. 9), 두 달 뒤에 남북이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남북기본합의서)를 체결했을 때(1991. 12) ②빌 클린턴 행정부가 ‘페리 프로세스’라는 한반도 냉전구조 해체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남북이 사상 첫 남북정상회담(2000. 6)을 했을 때 ③2차 남북정상회담(2007. 10)과 10·4 남북정상선언이 나온 때 ④2018년에 연 세 차례 남북 정상회담과 그해 6월 싱가포르 센토사섬에서 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이 이루어졌을 때. 이 시도들은 남한의 친미·보수 세력의 방해를 받았고, 하노이에서 2차 북·미 정상회담 중이던 트럼프조차도 변화보다는 한반도의 현상 유지를 원하는 미국 군산복합체와 보수 강경파들의 제동에 걸려 회담을 깨고 말았다.

남북기본합의서를 도출하기도 한 노태우는 북한이 미국·일본 등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데 협조하겠다고 공언해놓고, 북미·북일 관계 정상화를 방해하는 뼈아픈 실책을 했다. 이명박은 노무현 정부가 김정일과 함께 내놓은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설치 구상의 계승·이행을 거부했고, 박근혜는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성사시킨 개성공단 사업을 백지로 만들었다. 그동안 보수 우파는 냉전을 녹이려는 진보 정권의 성취를 무효화하는 데 진력했다. 그러나 지난 30여 년 동안 남한과 북한이 시도했던 번영과 평화를 위한 노력은 박정희와 김일성이 결단한 ‘7·4 남북공동성명’ 없이는 가능하지 않았을 일이다. 왜 이 사실을 외면하는가.

〈동맹의 풍경〉(나무연필, 2023)을 쓴 엘리자베스 쇼버는 2007년 9월 처음 한국 땅을 밟았다. 그해 1월 한 미군이 홍대 인근에서 출근하던 환경미화원 여성을 성폭행한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은 기지촌 문제가 미군 부대 주변이 아닌 홍대라는 일반적인 공간으로 이동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지은이가 기지촌에서 현장 연구를 시작한 2009년, 30~40대 이상의 한국 여성은 접대 일에서 밀려나고 그 자리를 필리핀이나 중앙아시아 출신의 젊은 여성들이 메웠다. 한국 정부는 외국에서 온 접대부의 인권에 더더욱 무심하다.

“일본에서 미국으로 입양된 한국”

기지촌은 1960~1970년대에 급성장해 2만여 명 한국인 성매매 여성들이 주한미군 6만여 명을 상대했다. 기지촌은 윤락행위등방지법에서 암묵적으로 면제되었고, 한국 관료들은 경제에 기여하는 성매매 여성들의 노고를 치하하면서 성 산업을 육성했다. 이때 기지촌과 그곳의 여자들은 부도덕을 표상하는 것에 그쳤다.

1992년 10월28일, 한 미군에게 윤금이씨가 잔혹하게 살해되면서 기지촌과 양공주는 새삼 한국의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하지만 1990년대 초는 박정희 정권하에서 정점을 찍은 접대부의 수가 급감한 상태였다. 기지촌 문제가 이처럼 뒤늦게 떠오른 첫 번째 이유는 1950~1980년대에는 주한미군에 대한 그 어떤 반대 의견 개진도 가능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두 번째 이유는 신군부에 의해 광주민주화운동이 잔혹하게 진압된 1980년 5월 이후 좌파 지식인 사이에 반미주의가 활성화되었기 때문이다. 기지촌은 한민족의 수난을 상징하는 공간으로, 접대부는 외세(미군)에 침탈당한 ‘민족의 잃어버린 딸’로 재현되었다. 기지촌의 복합적인 성격과 그곳 여성들(주민들)의 개인적 동기와 꿈은 가시화되지 못했고, 한번 결정된 민족주의적 서사는 홍대와 그곳의 클럽을 찾는 젊은 여성에게 부정적으로 적용되었다(‘오염된 딸’).

9월26일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78차 유엔총회에서 김성 유엔 주재 북한 대사는 “미국은 미·일·한 삼각 군사동맹 체제를 수립함으로써 아시아판 나토 창설 계획을 실천에 옮겼고, 동북아시아 지역에는 신냉전 구도가 들어서게 됐다”라고 주장하면서 “미국의 식민지에 불과한 대한민국”을 성토했다. 과연 한국은 미국의 식민지일까. 마침맞게도 김성해의 〈벌거벗은 한미동맹〉(개마고원, 2023)이 정답을 가르쳐준다.

지은이는 한·미 관계를 고아와 양부모 관계로 본다. 아시아태평양전쟁이 끝난 뒤, 한국은 36년 동안 부모 노릇을 했던 일본에서 미국으로 입양되었다. 그런데 웬일인지 이 입양아는 잠시 버려진 적이 있다. 1950년 1월12일, 미국의 딘 애치슨 국무장관이 미국의 ‘알류샨열도-일본-오키나와-필리핀’을 잇는 태평양 방어선에서 한국과 타이완은 제외된다는 일명 ‘애치슨 라인’을 발표했다. 미국의 음모(군수산업을 부양하고 냉전 구도를 확립·확산하는 것)를 몰랐던 김일성은 오판하고 남침했다. 이후의 전황과 휴전 이후의 남북간 체제 경쟁의 결과는 모두가 아는 결론이지만, 잠시 버려졌다가 죽음 직전(전쟁)에 구출된(재입양된) 고아는 그때부터 다시 버려질지도 모른다는 유기 불안을 떨치지 못했다. 양부모의 사랑을 놓치지 않으려고 입양아는 혼과 몸을 바친다.

일제강점기의 조선 엘리트들은 일제를 매개로 ‘근대화의 꿈’을 이룩할 수 있다고 믿었다. 지은이는 “여기서 일본 대신 미국을 넣으면 어떨까?”라고 묻는다. 다만 일제는 강압적인 동화정책을 썼기에 조선인들은 쉽게 자신이 식민 상태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으나, 간접통치는 식민 상태임에도 자신이 식민 상태라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게 만든다. “제국은 외교와 군사 정도만 장악하고 있으면 된다. 정치는 제국의 아바타에 해당하는 토착 엘리트에게 맡기는 게 좋다. 전통·문화·언어도 굳이 제국을 따라 할 필요가 없다. 원주민 사회의 주체성을 훼손하지 않으면 통제받는다는 사실을 잊거나 덜 민감해진다.” 대통령실이 도청당하고도 “동맹국인 미국이 우리에게 어떤 악의를 가지고 했다는 정황은 발견되지 않고 있다”라고 천연덕스레 말하는 대통령 직속 국가안보실 외교 책임자를 보면 지은이의 말이 틀리지 않은 것 같다.

기자명 장정일 (소설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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