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 세 가지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민주주의의 위기, 서민경제의 위기, 남북관계의 위기가 그것입니다.” 2008년 12월18일, 노벨평화상 수상 8주년 기념 강연에서. 이후 민주당은 ‘민주주의·서민경제·남북관계의 3대 위기’라는 프레임을 적극 내세웠다.

“북한에 대해서 이른바 남한에서 ‘퍼주기’라는 말이 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독일은 20년 동안 평균 32억 달러를 매년 지원했습니다. 우리는 13년 동안 매년 1억5000만 달러를 줬습니다. 1인당 연 5000원으로 북한을 도운 셈입니다. 그 대가로 가장 크게 얻은 것은 냉전체제를 종식시키고 화해협력의 시대가 왔다는 것입니다. 한반도 긴장이 일거에 완화되어 우리가 지금까지 10년 동안 발 뻗고 산 게 가장 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올해 1월15일 외신기자클럽 강연 후 질의응답에서. 이른바 ‘퍼주기’ 논란은 한나라당과 보수 언론이 들고 나오는 단골 소재였던 만큼, 김 전 대통령은 이를 반박하는 데 많은 공을 들였다.

“저는 어렸을 때 서당에 다녔습니다. 하루는 아버지가 ‘여기에 초등학교가 생겼으니 네 동생 입학시키려 가는데 너도 구경 가자’라고 했습니다. 하의면에 있는 초등학교에 갔습니다. 아버지는 안에 들어가시고, 나는 밖에서 기다렸습니다. 밖으로 나오신 아버지는 ‘2학년도 들어올 수 있단다. 넌 2학년으로 들어가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2학년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 뒤 목포로 가서, 초등학교, 상업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제 인생을 볼 때 만일 그날 아버지가 2학년으로 입학을 안 시켰더라면 어떻게 됐겠는가 생각해보면, 정치에는 관심 있으니까 신안 시의원쯤 돼서 군수에게 따지고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웃음).” 4월23일 14년 만에 고향 하의도를 방문한 자리에서. ‘유머감각’은 김 전 대통령의 화법을 설명하는 데 빠지지 않는 코드다.

“제가 북한을 방문한 것은 2000년 6월입니다. 북한의 핵문제는 1993년부터 시작하여 1994년 본격적으로 국제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핵문제와 저의 북한 방문과는 관계가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5월6일 베이징 대학 강연 후 질의응답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은 햇볕정책과 남북 정상회담이 북한 핵 개발을 불러왔다는 비판이 있지 않느냐는 청중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지미 카터 전 대통령처럼 당신이 나설 때다.” 5월18일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과의 만찬 당시 발언. 김 전 대통령이 클린턴에게 북한 문제에 적극 나서라며 이렇게 권유한 사실이, 클린턴의 방북 이후 뒤늦게 알려졌다. 워싱턴 타임스는 이 장면을 두고 “김 전 대통령의 비범한 삶에 어울리는 피날레”라고 논평했다.

 

김 전 대통령의 ‘정치적 유언’이 나온 6·15 공동선언 9주년 기념 연설(위). 이는 DJ의 마지막 연설이 됐다.

“너무도 슬프다. 큰 충격이다. 평생 민주화 동지를 잃었고 민주정권 10년을 같이한 사람으로서 내 몸의 반이 무너진 것 같은 심정이다.” 5월23일 노 전 대통령 서거 직후. 김 전 대통령은 이후에도 “내 몸의 반이 무너진 것 같은 심정”이라는 말을 되풀이했고, 끝내 석 달 만에 노 전 대통령을 따라 떠났다.

“노무현 대통령과 제가 이상하게 닮은 점이 많습니다. 둘 다 농민의 아들로 태어났고, 노 대통령은 부산상고, 나는 목포상고를 나왔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돈이 없어서 대학에 못 가고 나도 돈이 없어서 대학 못 갔습니다(웃음). 노 대통령은 대학 못 간 뒤 열심히 공부해서 변호사가 됐고, 나는 열심히 사업해서 돈 좀 벌었습니다(웃음). 그 후로 나는 이승만 정권, 노 대통령은 박정희 정권 독재에 분개해 본업을 버리고 정치권에 들어간 것입니다.

당도 같았고, 국회의원도 같이 했고, 북한도 교대로 다녀왔고, 가만히 보니까 전생에 노 대통령과 나하고 무슨 형제간이 아니냐는 생각도 들어요. 물론 형님은 내가 되고요(웃음). 해서 제가 노 대통령 서거를 듣고 내 몸이 반쪽으로 무너지는 것 같다고 했는데, 지나간 과거만 봐도 여간한 인연이 아닙니다.” 6월11일, 6·15 공동선언 9주년 기념 연설 중에서. 민주개혁 세력이 낳은 두 대통령은 같은 해에 서거함으로써 오랫동안 ‘한 쌍’으로 기억되게 됐다.  

“우리 국민은 독재자가 나왔을 때 반드시 이를 극복하고 민주주의를 회복했다는 것을 우리는 명심해야 합니다. (중략) 피맺힌 마음으로 말씀드립니다. 행동하는 양심이 됩시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입니다.” 6월11일, 6·15 공동선언 9주년 기념 연설 중에서.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라는 말은 결국 김 전 대통령의 ‘정치적 유언’이 됐다.

“노무현 대통령 당신, 죽어서도 죽지 마십시오. 우리는 당신이 필요합니다. 노무현 당신이 우리 마음속에 살아서 민주주의 위기, 경제 위기, 남북관계 위기, 이 3대 위기를 헤쳐나가는 데 힘이 되어주십시오. 당신은 저승에서, 나는 이승에서 우리 모두 힘을 합쳐 민주주의를 지켜냅시다. 그래야 우리가 인생을 살았던 보람이 있지 않겠습니까. 당신같이 유쾌하고 용감하고, 그리고 탁월한 식견을 가진 그런 지도자와 한 시대를 같이했던 것을 나는 아주 큰 보람으로 생각합니다. 저승이 있는지 모르지만 저승이 있다면 거기서도 기어이 만나서 지금까지 하려다 못한 이야기를 나눕시다. 그동안 부디 저승에서라도 끝까지 국민을 지켜주십시오. 위기에 처해 있는 이 나라와 민족을 지켜주십시오. (중략) 독재정권, 보수정권 50여 년 끝에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가 10년 동안 이제 좀 민주주의를 해보려고 했는데 어느새 되돌아가고 있습니다. 민주주의가 되돌아가고 경제가 양극화로 되돌아가고, 남북관계가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나는 이것이 꿈같습니다, 정말 꿈같습니다.” 책으로 출간된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 추천사 중에서.

“내가 2000년 평양을 간 뒤 10년 동안 남북관계는 화해 협력적 방향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퇴임 후 사태가 급변하여 지금은 제2의 냉전시대가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매우 슬픕니다.” 7월10일 진행한 BBC와의 대담 중에서. 이 대담은 김 전 대통령의 마지막 언론 인터뷰가 됐다.

“오늘의 북핵문제 해결방안은 북한은 핵을 완전히 포기하고, 미국은 관계 정상화를 통해 북한을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는 길뿐입니다. 이 외에 대안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미 이러한 원칙에 합의한 바 있습니다. 2005년 9월19일 6자회담의 공동성명, 그것을 준수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미국도 좋고, 일본도 좋고, 중국도 좋고, 러시아도 좋고, 한국도 좋고, 북한도 좋은 것입니다. 다시 9·19 선언으로 돌아갑시다. 그리하여 동북아시아에 평화와 안전, 협력의 시대를 열어갑시다.” 7월14일 주한유럽연합상공회의소 연설을 위해 준비했던 연설문. 김 전 대통령은 하루 전인 13일 입원해 실제로 이 연설을 하지는 못했다. “다시 9·19 선언으로 돌아갑시다”는 이 연설문의 제목이자 마무리 발언이었다. 이것이 김 전 대통령의 ‘마지막 공식 발언’이 됐다.

 

기자명 천관율 기자 다른기사 보기 yu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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