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사는 고양이들이 어느덧 사람 나이로는 중년이 되었다. ⓒ김영글 제공
함께 사는 고양이들이 어느덧 사람 나이로는 중년이 되었다. ⓒ김영글 제공

세상에 태어나 시간의 흐름에 따라 늙어가다 죽음에 이르는 것. 목숨을 가진 존재라면 피할 수 없는 생명의 법칙이다. 그러나 주어진 시간이 같지는 않다. 종마다 타고난 생김새와 습성이 다르듯이 동물의 수명도 천차만별이다. 쥐처럼 몸집이 작은 동물은 보통 3~4년의 생을 산다.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 사는 동물인 수염고래는 200년을 넘게 살기도 한다. 진화의 환경과 과정이 다르니 종별로 신체 크기나 노화의 속도도 달라진 것이다.

실내에 사는 고양이의 수명은 보통 15년에서 20년 정도라 알려져 있다. 평균수명이 3년, 길어야 5년에 불과한 길고양이의 험난한 삶에 비하면 꽤 긴 시간이다. 하지만 인간의 수명은 그 몇 배에 달한다. 가족과 평생을 함께하고픈 반려인의 입장에서 본다면, 꽉 채운 20년조차 마음 아프도록 짧은 시간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집 첫째 고양이 요다는 올해로 열두 살이 되었다. 언제 이렇게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다. 조그마한 플라스틱 통에 담아서 데려올 때 겨우 주먹만 한 아기 고양이였는데, 이제 사람 나이로 환산해보면 중년도 훌쩍 넘긴 셈이다. 둘째 모래는 열한 살, 셋째 녹두는 아홉 살이니 모두 적지 않은 나이다. 활동량도 많이 줄었고 병원 갈 일도 곧잘 생긴다. 한 해 한 해 나이 드는 고양이들을 보면 쇠약해질 미래에 대한 걱정이나 안타까움만 드는 것은 아니다.

상대적으로 다른 시간 감각 속에서 다른 종의 생애를 한발 물러서 바라보는 일은 삶의 덧없음과 애틋함을 동시에 일깨운다. 매미는 수년간의 유충 생활을 거쳐, 성충이 되고 나면 고작 보름 정도를 살다 죽는다. 작열하는 태양이 비치는 여름의 무대 위에서 사람은 매미의 전 생애를 듣는다. 하지만 그 짧은 생애를 충분히 이해하는 데에는 한 사람의 전 생애로도 부족할지 모른다.

고양이와 내가 너무나 다른 시간의 궤도 속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뒤, 나는 우리가 함께 보내는 하루가 어떤 의미일지 다시금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같은 공간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지만, 서로가 느끼는 시간의 속도가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게 시간 감각이 충돌할 때면 잊고 있던 사실 하나가 분명해진다. 나의 삶 속에 고양이를 들인 것이 아니라, 나의 시간과 고양이의 시간이 한때 잠시 겹친 것이라는 사실 말이다.

인간보다 수명이 짧은 개나 고양이의 삶을 가까이서 지켜보다 보면 그들의 생로병사가 인간 삶의 압축판처럼 여겨질 때도 있다. 하지만 착각임을 이내 깨닫는다. 서로의 시간대와 연령은 끊임없이 달라지고 관계는 계속해서 역전하기에, 이 만남은 인간과 관계 맺을 때와는 또 다른 집중력과 이해심을 요구한다.

인간과 비인간 존재들의 관계와 상호작용을 새롭게 읽어내는 책 〈세계 끝의 버섯〉(애나 로웬하웁트 칭 지음)을 보면 그런 얘기가 나온다. 인간은 서로 다른 종류의 시간을 하나의 리듬에 맞추어 바라보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살아 있는 것들은 저마다 다른 성장 속도와 생식 유형, 다른 시간의 패턴을 지니고서 각자의 세계를 구축해나간다. 어쩌면 타 생물종과 일상을 나누며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그러한 ‘시간의 복수성’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이 불균질하고 무심한 시간 속에서 우리는 살을 맞대고 있다. 나는 내 체온보다 조금 높은 온도, 내 호흡보다 조금 빠른 호흡을 느껴본다. 고양이의 심장박동 소리에 가만히 귀를 기울인다. 마치 어떤 세계의 중대한 비밀을 알아차리는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일 분, 일 초, 이 찰나가 오늘도 무척 소중하고 값지다.

기자명 김영글 (미술작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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