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신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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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법관은 판결로 말한다’고 한다. 대법원장 인사청문회에서도 곧잘 등장하는 말이다. 6년 전 김명수 대법원장 인사청문회에 나선 당시 장제원 자유한국당 의원은 “법관은 판결로 얘기하는 것이지요?”라고 물었다. 과거 판결로 대법원장 후보자의 자질을 검증하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의 첫 대법원장 후보자가 나왔다. 8월22일 윤석열 대통령은 이균용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를 신임 대법원장 후보자로 지명했다. 김대기 대통령비서실장은 이 후보자를 소개하며 “사회적 약자의 인권을 신장하는 데 앞장서온 신망 있는 법관”이라고 말했다. 인사청문회는 9월19~20일로 예정되어 있다.

지명 초기 이 후보자와 관련해 화제로 떠오른 장면은 지난해 10월14일 국정감사였다. 당시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균용 대전고등법원장에게 윤석열 대통령과의 친분을 물었다. 그는 윤 대통령에 대해 “친한 친구의 친한 친구다” “단둘이 만난 적은 없다” “친하다고 볼 수도 있다”라고 답했다. 사법부 독립을 수호해야 할 대법원장 후보자가 대통령과 친분이 있다는 사실에 대한 지적이 나왔다.

현재 이균용 후보자에 대해 강경하게 비판 목소리를 내는 쪽 중 하나가 여성단체다. 이 후보자는 지명 직전까지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로 재판을 맡았다. 특히 여성 대상 범죄의 항소심에서 감형한 여러 판결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되었다. 2020년 1월 배우자를 밟아 숨지게 한 남성에게 징역 3년을 깎아줬다(징역 10년→7년). 1심에서 인정된 살인 혐의 대신 상해치사 혐의를 적용했다. 같은 해 11월에는 미성년자 대상 성범죄자에게도 감형을 했다(징역 10년→7년). “20대의 젊은 나이”를 이유로 들었다.

8월31일 한국여성의전화·한국성폭력상담소·한국여성민우회 등 57개 단체는 ‘대한민국 입법·사법·행정 삼권에서의 성평등 후퇴를 완성할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 윤석열 대통령은 지명을 당장 철회하라’는 성명을 냈다. 이들 단체는 한국 사회에서의 대법원 역할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며, 이균용 후보자가 사법부의 수장이 되기에 부적절하다고 비판했다.

“그간 대법원은 2013년 아내 강간을 최초로 인정한 판결, 2018년 성폭력 사건의 판단에서 피해자가 처한 구체적인 입장을 고려해야 한다는 판결 등 우리 사회가 직면했던 몇 가지 중요한 순간에 과거와는 다른 관점의 판결로 변화의 단초를 제공한 바 있다. 과거 재판 과정에서 성차별을 외면하고, 여성 폭력 가해자를 제대로 처벌하지 않는 등 여성 인권을 퇴행시키는 판결을 해온 이 후보자가 대법원의 수장이 된다면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겠는가.”

판결문 속 ‘그러나’ ‘다만’ ‘한편’

이균용 후보자는 반박한다. “과거 성범죄를 포함한 강력범죄 등에 대하여 엄정한 판단과 형을 선고한 다수의 판결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감형한 일부 판결만이 최근 언론에 보도되고 있는 것에 대하여 안타깝게 생각하며, 후보자가 법관 재직 기간 동안 선고했던 판결 전체에 대하여 균형 있게 살펴봐주시기를 당부드린다.” 동시에 1심보다 더 무겁게 선고한 특수강간 혐의 등의 항소심 판례를 소개했다.

그래서 살폈다. 〈시사IN〉은 지난 3년 동안 이균용 후보자의 성범죄 판결을 전수 분석했다(〈그림 1〉 참조). 2020년 9월부터 2023년 8월까지 법원 판결서 열람 시스템 및 유료 판례 검색 사이트(엘박스)에 올라온 이 후보자의 성범죄 판결은 모두 84건이다. 이 중 30건이 '감형' 판결이었다. 1심을 그대로 인정한 항소 기각이 가장 많았지만(42건, 50%) 다음 순위는 ‘감형’이 차지했다. 35.7%다. 이균용 후보자의 2심 재판부에 성범죄가 배당되면, 해당 범죄자 3명 중 1명 이상은 형량이 깎였다는 뜻이다. 무죄·일부 무죄도 5건(5.9%)이었다. 이 후보자 말대로, 2심에서 더 엄벌한(가형) 사건도 있었다. 5건(5.9%)이었다.

실제 감형이 된 판결에서 인정된 감형 요소도 분류했다(〈그림 2〉 참조). 보통 판결 하나에서 언급되는 감형 및 가형 이유는 여러 가지다. 이 후보자가 재판장으로 판결한 지난 3년치 성범죄 항소심 판결에서 감형 사유 1위는 피고인(가해자)의 반성·범행 자백·범행 인정이었다(28회). 이어 형사범죄 또는 동종 범죄 등에 대해 초범이라서(23회), 피해자와 합의를 했거나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밝혀서(20회), 피해가 경미해서(7회), 젊거나 어려서(5회), 우발적이라서(3회) 순이다(중복 집계).

양형은 기준이 있다. 이 후보자 또한 해당 기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성범죄 양형에 ‘피해자 관점’이 빠졌다는 비판은 오래 지속되어 왔다. 2019년 N번방 사건이 불거진 이후 디지털 성범죄 심각성에 대한 사회의 인식이 높아지면서, 2021년 법무부는 디지털 성범죄 등 대응 TF·전문위원회(위원회)를 꾸렸다. 위원회는 11차례에 걸쳐 권고안을 발표했다. 성범죄 관련 양형에 대한 부분도 있다.

현행법상 양형은 가해자의 사정을 중심으로 판단하는데, 피해자 보호 관점 요소가 추가되어야 한다는 내용이다. 형법 제51조 양형 조건에 ‘피해자의 연령, 피해의 결과 및 정도, 피해 회복 여부, 피해자의 처벌 및 양형에 관한 의견’이 추가되어야 한다고 권고했다. 법 개정으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성범죄를 비롯한 형사재판에서 피해자의 엄벌 요청을 양형 산정에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다.

이균용 후보자의 감형 판결문에도 피해자의 엄벌 요청과 같은 내용이 눈에 띈다. “피고인은 피해자로부터 용서받지 못하였으며, 피해자는 피고인에 대한 엄벌을 탄원하고 있다”라는 표현이 감형 판결문 총 8건에 들어 있다. 그런데 이는 ‘가형’ 판결문이 아니라 ‘감형’ 판결문에 있는 내용이다. 피해자가 엄벌을 요구했더라도, 이어지는 판결문의 ‘그러나’ ‘다만’ ‘한편’으로 시작하는 문장의 내용을 이유로 형을 깎아줬다.

이런 식이다. 2020년 9월25일 주거침입 강제추행 혐의에 대한 이 후보자의 판결이다.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같은 버스에서 내린 피해자를 따라가 아파트 공동현관에 같이 들어간 뒤 껴안으려다 미수에 그친 사건이다. 1심은 징역 1년3개월을 선고했다. 2심 또한 범행을 모두 인정하며 “피해자가 평소 자신이 거주하는 아파트에서 범행을 당해 앞으로도 상당한 불안감을 느끼면서 정신적 고통을 겪을 것으로 보이며, 피해자와 합의가 되지 아니하여 피해자는 피고인에 대한 엄한 처벌을 원한다”라고 판시했다.

문제는 다음이다. “그러나 피고인은 형사처분을 받은 전력이 없는 초범으로 술에 상당히 취하여 우발적으로 이 사건 범행에 이르게 되었다. (중략) 넉넉하지 않은 가정환경 속에서도 그동안 성실하게 회사 생활을 하면서 스스로 자신의 발전을 위해서 노력하여 대학에 입학하는 등 어느 정도 독립자존의 자세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고, 앞으로 학업을 계속하여 건전한 사회구성원으로 복귀할 것을 다짐하고 있다”라는 이유로 집행유예(징역 1년3개월에 집행유예 3년)를 선고했다.

또 다른 판례를 보자. 2020년 10월23일 A씨의 아동복지법 위반(아동에 대한 음행 강요·매개·성희롱 등), 협박,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통신매체 이용 음란) 혐의에 대한 2심 판결이다.

“채팅 앱을 통해 알게 된 중학생 피해자(14세)에게 얼굴과 가슴이 노출된 사진을 보내줄 것을 요구해 사진을 전송받은 다음, 휴대폰 전화번호를 알려달라는 추가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사진을 SNS에 유포하겠다고 협박했다. 나아가 피고인은 피해자가 피해자의 어머니인 척 행세하며 사진을 지워달라고 요청하자, 부부의 성관계 영상을 촬영하여 보내달라는 등의 음란한 문자를 보내기도 했다. (중략) 피고인은 피해 회복을 위한 아무런 노력도 하지 못하였다. 피고인이 다른 청소년에게 겁을 줘 음란한 사진을 전송받은 범죄사실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은 항소심 재판이 진행되는 도중 저지른 점에서 그 책임이 더욱 무겁다.”

7월21일 대법관 임명장 수여식에 참석한 김명수 대법원장, 윤석열 대통령, 서경환 대법관, 권영준 대법관(왼쪽부터)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7월21일 대법관 임명장 수여식에 참석한 김명수 대법원장, 윤석열 대통령, 서경환 대법관, 권영준 대법관(왼쪽부터)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사회 변화·인권 의식에 관심 없다는 뜻”

그런데도 형이 깎였다. 곧바로 이어지는 문장이다. “다만 피고인은 당심(2심)에 이르러 범행을 모두 인정한 점, 피고인이 피해자의 사진을 외부로 유출하였다고 보이지 않는 점, 피고인이 어릴 때 받은 항암치료의 후유증으로 인해 또래와 교류하지 못하고 인터넷에 빠져들게 되면서 이 사건 범행에 이르게 된 점” 등을 피고인에게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했다. 미성년자 대상 성범죄를 반복해서 저지른 A씨는 2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이균용 후보자는 징역 4년을 선고한 1심 형의 절반을 깎아줬다.

이미 2015년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항소심(2심)은 1심의 양형을 존중하라’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1심과 비교하여 양형의 조건에 변화가 없고 1심의 양형이 재량의 합리적인 범위를 벗어나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이를 존중함이 타당하며, 1심의 형량이 재량의 합리적인 범위 내에 속함에도 항소심의 견해와 다소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1심 판결을 파기하여 1심과 별로 차이 없는 형을 선고하는 것은 자제함이 바람직하다.”

성범죄 사건을 다뤄본 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이균용 후보자의 판결에 대해 이렇게 지적했다. “극단적인 상황의 강간에 대해서는 엄벌을 내렸지만, 피를 흘려야지만 성범죄가 성립하는 건 아니다. ‘아동 청소년을 협박해서 강제로 음란물을 촬영하게 하지 않았다’라는 이유를 들며 감형을 해주는 등의 판결은 퇴행적이다. 대법원 판례와도 맞지 않는다. 사회 변화와 인권 의식에 관심이 없다는 뜻이다. 이균용 후보자가 대법원장이 돼 이끌 ‘이균용 코트(법원)’가 앞으로 더욱 변화할 한국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걱정된다.”

이균용 후보자 또한 ‘사회 변화와 법원·판사의 역할’에 대해 공개적으로 언급한 바 있다. 지난해 대전고등법원장으로 국정감사에 출석했을 때의 발언이다.

“사회의 급격한 변화에 따른 가치관의 다양화와 국제화가 진행되는 가운데 법률상의 분쟁도 한층 복잡하게 되고 있는 오늘날 법원 구성원에게는 무엇보다도 다양한 사회현상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종합적인 판단을 뒷받침할 수 있는 높은 식견이 요구되고 있다.”

이균용 후보자가 주목하는 ‘급격한 변화에 따른 가치관의 다양화’에 여성 인권 분야는 빠져 있는 게 아니냐는 의심이 계속되고 있다.

기자명 김은지·주하은 기자 다른기사 보기 smi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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