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형철 사회적협동조합 '한강' 대표는 '4대강 프레임'을 넘어서 '통합적 물관리'를 기준으로 물 정책을 설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시사IN 박미소

염형철 사회적협동조합 ‘한강’ 대표는 전 국가물관리위원회 위원으로 제1차 국가물관리기본계획 수립 등에 관여했다. 2019년에 출범한 대통령직속 국가물관리위원회는 법률에 규정된 물관리 최고의사결정기구다. 1995년부터 환경단체에 몸담았던 염형철 대표는 민관의 가교로 목소리를 내왔다. 김대중 정부 시절 제1기 대통령자문 지속가능발전위원회 국토수자원분과 민간 간사로 활동했다. 2004년에는 수자원장기종합계획 정책협의회 민간 간사로, 2019년에는 1기 국가물관리위원회 위원으로 일하며 정부의 물관리 정책 수립 과정을 가까이서 지켜봤다. 물관리 분야의 뛰어난 전문가들과 토론하고 논의하며 숱한 자료를 봐왔다.

지난해 1기 국가물관리위원회 임기가 종료된 이후에는 대외 발언을 삼갔다. 하지만 현 정부에서 “가뭄 대책에도, 홍수 대책에도 ‘4대강’을 만능 해결책처럼 거론하는 것을 보고 괭이나 호미라도 들고 나서야겠기에 목소리를 내게 됐다”. 염형철 대표는 이제 한국 사회가 정치적 망령인 4대강을 넘어서야 한다고 말한다. ‘통합적 물관리’라는 기본 원칙을 통해 기후위기 시대에 필요한 물 정책을 설계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시민사회와 정부를 향한 당부이기도 했다.

4대강은 여전히 논쟁의 대상이다.

지나치게 정치화됐다. 사업이 완료된 지 1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현실과 동떨어진 논란만 계속되고 있다. 정치 과잉의 폐해는 시민들이 정확한 사실관계를 살피고 판단을 하기보다 경로의존성에 따라 자기 진영의 말만 듣게 된다는 거다. 이제 ‘4대강 프레임’을 뛰어넘어 우리에게 필요한 물 정책이 무엇인지를 논의해야 한다. 이번 홍수의 피해 원인과 대책도 ‘4대강 사업을 했기 때문이냐 아니냐’로 가면 안 되었다. 환경단체에서도 조금 더 대승적인 전략을 펼쳤어야 했다.

어떻게?

좀 더 현장 지향적이어야 한다. 7월15일 미호강이 범람해 오송지하차도 침수가 발생했다. 이틀 후 〈조선일보〉에서 미호강이 4대강 사업에 포함돼 정비됐지만 환경단체 반발로 60년간 준설 작업을 하지 못했다는 보도를 냈다. 갑자기 홍수 원인을 진단하고 피해 대책을 세우는 데 4대강 프레임이 씌워져버렸다. 반박이 나온 건 사고 닷새 뒤인 7월20일 〈한겨레〉를 통해서였다. 〈조선일보〉에서 언급한 2021년 미호강 정비사업과 관련해 당시 환경단체가 강 준설을 반대하지 않았으며 충북 담당 공무원 역시 환경단체의 민원은 없었다고 전하는 내용이었다. 시민사회가 오송 사고 직후 발 빠르게 현장으로 달려가서 묵묵히 사태의 원인을 분석했다면 보수 진영의 ‘4대강 반대 탓’을 조금이라도 미리 차단할 수 있지 않았을까.

7월16일 미호천 제방 유실로 침수된 충북 청주시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 인근 미호천교 아래 임시 제방이 무너진 모습. ⓒ시사IN 박미소
7월16일 미호천 제방 유실로 침수된 충북 청주시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 인근 미호천교 아래 임시 제방이 무너진 모습. ⓒ시사IN 박미소

그럼 오송지하차도 침수 사고의 원인이 뭔가?

오송지하차도 침수는 미호강이 범람해서 벌어진 사건이다. 참사 주요 원인은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행복청)이 미호천교 연장 공사를 하면서 허가 없이 자연제방을 헐었던 것이다. 환경부가 아니라 행복청에 큰 책임이 있는 거다.

7월20일, 마침 감사원에서 전 정권의 금강·영산강 보 해체 결정이 잘못된 경제성 분석 결과 등을 근거로 했다는 5차 감사보고서를 발표했다. 정부와 여권의 4대강 공세가 강해진 계기였다.

감사원의 감사보고서 발표 시기가 우연이라고 보지 않는다. 2021년 3월 이재오 전 국회의원이 대표를 맡고 있는 ‘4대강국민연합’에서 국가물관리위원회와 환경부를 상대로 금강·영산강 보 해체 결정이 부당하다며 감사를 요청했다. 감사원이 이제야 그 결과를 발표한 거다. 타이밍을 쟀다. 눈여겨볼 건 환경부의 반응이다. 감사원에서 당일 14시 이후 감사보고서 내용을 보도해달라고 하자, 환경부는 딱 오후 2시에 보도자료를 배포하며 ‘감사원 감사 결과를 존중한다’ ‘세종보·공주보 등의 운영을 정상화하겠다’ ‘4대강 보를 보답게 활용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감사원의 발표도, 환경부의 대응도 결국 윤석열 대통령의 철학 없는 물 정책을 따르는 거라고 본다.

물 정책에 철학이 없다?

윤석열 대통령의 물 정책은 철학도 방향도 없다. 그게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대통령이 물 정책을 주도하고 있는데, 그 근거가 과학적이거나 체계적이지 않다. 예를 들어, 7월18일 충남 공주시 탄천면의 홍수 피해 지역을 찾은 윤 대통령은 배수펌프장과 하천정비가 필요하다는 주민의 말에 맥락 없이 ‘준설’을 하겠다고 답한다. 8월1일 비공개 국무회의에서는 환경부 장관에게 “치수의 제1번은 하천 준설”이라고 말했다. 근거가 없다. 오히려 전문가들은 세계적으로 조명받는 치수 방법으로 ‘자연기반해법’을 말한다. 수목을 복원하고 하천의 생태계를 회복해 치수안전성을 높이는 방법이다. 그 외에도 치수 대책은 그 지역의, 하천의 특성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 발언과 지시 내용들을 살펴보면 대통령이 매우 즉흥적이고 진지하지 않다는 것이 드러난다.

이를테면?

‘환경부도 수출·기술 부서다. 돈 벌어라’ ‘준설해라’ ‘군대를 동원해라’ ‘4대강 보를 활용해라’ ‘대심도 터널 같은 걸 설치해라’ ‘과하다 싶을 만큼 (피해 보전에) 재정을 써라’ 등 주무 부처와 충분한 논의를 거치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지시 사항이 많다. 그리고 혼내고 평론한다. 이번 미호천 범람 등은 환경부의 과실이 아님에도 대통령이 7월18일 국무회의 비공개 자리에서 “물관리를 제대로 못하면 (해당 업무를) 다시 국토부로 넘기라”고 환경부 장관을 질타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대통령이 환경부가 할 일을 앞장서 엉뚱하게 지시하고 있으니 부처에서는 본업무를 제대로 할 수 있는 역량이나, 정부의 환경정책 방향에 대해 제언하거나 외부의 비판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는 DNA가 남아 있지 않게 되는 거다.

어쨌건 물관리가 일원화되면서 하천 관련 업무도 환경부로 이관됐으니, 환경부 역시 책임이 있는 거 아닌가?

이번 오송지하차도 침수에 대해 말하자면, 이후 홍수 대책을 수립하는 데에는 환경부가 책임져야 할 것들이 생길 수 있다고 본다. 7월20일, 환경부 산하 금강유역환경청에서 미호강 최상류 및 상류권역의 제방을 보강하고 하천을 준설하겠다고 발표했다. 대통령이 홍수 현장 등에서 ‘준설’을 언급한 이후 일이다. 그런데 정비 구간이 사고가 난 지하차도와 직선거리로 약 20㎞나 떨어진 곳이다. 대통령이 준설을 지시하니까 엉뚱한 곳에서 정비를 하는 것이다.

환경부가 4대강 사업 띄우기에 앞장서고 있다는 건가.

사례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지난 3월31일 전남 순천을 방문한 대통령이 “방치된 4대강 보를 최대한 활용하라”고 하자 한화진 환경부 장관이 4대강 현장을 잇달아 찾았다. 그러곤 4대강 본류의 16개 보를 물그릇으로 활용하겠다는 내용의 ‘광주·전남 지역 중장기 가뭄 대책’을 준비하며 행보를 맞췄다. 5월에는 4대강 보를 적극 활용하는 데 국민 77%가 찬성한다는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환경부가 의뢰해 진행한 이 조사는 조사 시작 때 4대강 보의 필요성을 설명하는 등 사실상 유도질문을 했다. 왜 이렇게까지 하겠나? 그간 국가물관리기본계획 등을 수립하며 4대강 재자연화 같은 큰 그림들은 이미 만들어진 상태다. 그런데 대통령이 마치 어디서 영감을 얻은 것처럼 공청회도 하지 않고, 과학적 논쟁도 하지 않고 전혀 다른 방향의 지시를 하는데도 환경부가 거기에 맞춰 춤추고 있다. 이건 과학이 아니고 주술이다.

2018년 1월 낙동강 현풍양수장 취수구가 수위가 낮아진 물 위로 드러나 있다.ⓒ연합뉴스
2018년 1월 낙동강 현풍양수장 취수구가 수위가 낮아진 물 위로 드러나 있다.ⓒ연합뉴스

현 정부의 바람대로 4대강 보를 활용할 수 있을까?

이명박 정부가 아주 꼼꼼하고 치밀한 점이 있는데, 4대강 사업을 역진 불가능하게 설계했다는 점이다. 보로 강을 막아두면 수위가 올라가는데, 보로부터 물을 뽑아가는 빨대 역할을 하는 취수구를 그 높아진 수위에 맞게 설계해놨다. 그래서 보를 개방해서 수위가 낮아지면 물을 뽑아갈 수 없다. 농업용수·상수원 등으로 물을 쓸 수가 없으니 물이 부족해진다. 그래서 보를 해체하는 일이 어려워진 것이다. 그렇다고 윤석열 정부가 원하는 것처럼 보를 이용해 물을 공급하는 일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보에서 물을 공급하면 수위가 낮아지는데 그럼 또 취수구가 물을 빨아들이지 못하는 똑같은 상황이 벌어진다. 16개 보의 취수대를 연장하는 사업에 수천억 원이 든다. 당장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4대강이지만, 여전히 정쟁의 한가운데서 시민들을 현혹한다.

그럼 4대강 보를 어찌해야 하나?

자연성 회복의 측면에서는 보를 해체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이다. 하지만 당장 보를 어떻게 할 수는 없다. 그러니 이제 양쪽 모두 4대강 보를 넘어서자고 제안하고 싶다. 4대강은 한국 물 정책의 전부가 아니다. 대신 수질·수생태, 이수·치수 등을 고려한 통합적인 물 정책을 진지하게 논의해야 한다.

물 관리 정책은 구체적으로 어떠해야 하나?

과거에는 물과 관련한 기초 시설이 적었기 때문에 댐 하나 세우고, 제방 하나 세우면 효과가 눈에 띄게 나왔다. 하지만 이제 필요한 인프라는 다 구축됐다. 보여주기식 시설을 더 설치할 게 아니라 각 현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맞춤형 대책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영남 지역 1200만 주민들의 식수원인 낙동강은 수질 문제가 심각하다. 수질 개선이 가장 시급한 사안이다. 한편 영산강은 영산강 유역에 필요한 물 대부분을 섬진강이나 탐진강에서 가져오는 것이 큰 문제다. 물 공급 체계를 고쳐 물의 자급률을 높여야 한다. 이렇게 구체적인 문제에 집중하면 정치적 논란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소수의 선지자가 도깨비방망이 같은 해결책을 내놓을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누가 그런 게 있다고 말하면 그건 사기다. 특히 그걸 대통령이 하려고 하면 안 된다. 지역마다, 다양한 주체들마다 역할이 있다.

시민들이 할 만한 일은 없을까?

환경을 훼손해서 얻는 이득은 구체적이고 직접적이지만, 환경을 어렵게 보존해서 얻는 혜택은 광범위해서 잘 느껴지지 않는다. 이 불일치가 환경운동의 어려움이다. 그래서 내가 몸담고 있는 사회적협동조합 ‘한강’에서는 시민들이 자연과 맺는 관계를 확장시키는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세금을 통해 ‘자연보호’를 국가에 위탁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낸 조합비로 주변의 강을 정비하고 동식물을 만나며 생태감수성을 높이는 거다. 자연을 훼손한 것에 대한, 그 가치를 부정한 것에 대한 저항이나 반감이 우리 시민들 안에 존재한다고 믿는다. 이명박 대통령이 역대 대통령 중 가장 인기가 없었는데, 그 이유 중 하나가 4대강 사업이다. 한국 시민들의 생태에 대한 이해도는 매우 높다. 무엇이 진짜 환경을 위한 일이고, 강을 위한 일인지 알 것이다. 결국 시간문제다.

사회적협동조합 '한강'의 여의샛강 수달 모니터링 활동 사진. 수달의 배설물과 놀이 흔적들을 찾고 강의 생태계를 이해하는 프로그램이다. ⓒ염형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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