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7일 2023 〈시사IN〉 인공지능 콘퍼런스 참석자들이 장병탁 서울대 AI연구원장의 강연을 듣고 있다. ⓒ시사IN 조남진
8월7일 2023 〈시사IN〉 인공지능 콘퍼런스 참석자들이 장병탁 서울대 AI연구원장의 강연을 듣고 있다. ⓒ시사IN 조남진

올해로 6회째인 ‘2023 〈시사IN〉 인공지능 콘퍼런스(SAIC 2023)’가 8월7일 성황리에 열렸다. 이번 콘퍼런스 주제는 ‘챗지피티 이후의 세계 그리고 직업’이다. 지난해 공개된 오픈AI의 챗지피티 서비스를 중심으로 각 분야 전문가가 강연에 나섰다. 콘퍼런스는 서울 중구 페럼타워 페럼홀에서 열렸다. 참석자들이 강연장을 가득 채웠다.

첫 강연자는 장병탁 서울대학교 컴퓨터공학부 교수였다. 장 교수는 서울대 AI연구원 원장이다. 장병탁 교수는 인공지능이 도달할 다음 단계로 ‘체화’를 지목했다. 인공지능 기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다. 장 교수에 따르면, 지금의 인공지능(AI)은 “사람이 잘 못하는 것은 쉽게 하지만, 사람이 쉽게 하는 것은 잘하지 못한다”. 예컨대 복잡한 정보를 처리해야 하는 서류 작업에는 능한데, 이 서류를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가져다주는 단순 작업에는 어려움을 겪는다. 체화된 인공지능(embodied AI) 개발을 추구하게 된 배경이다.

신체를 가진 인공지능은 단순히 물리력이 필요한 작업만 처리하기 위한 게 아니다. 인공지능의 신뢰도를 높이고 궁극적으로는 ‘지혜’를 발휘하게 만드는 게 목표다. 사람은 적은 양의 데이터만 있어도 스스로 학습하는데 인공지능은 큰 데이터가 필요하다. 장병탁 교수는 경험 방식의 차이라고 설명했다. “지성은 경험에서 나온다. 인공지능이 습득하는 경험은 간접적이다. 인간이 전수해주는 지식뿐만 아니라 스스로 경험을 쌓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신체를 갖추고 세상을 탐구하도록 해야 한다.”

다음으로 연단에 오른 이는 고광범 한국마이크로소프트 게이밍&디지털네이티브 사업부문장(부사장)이다. 그는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인 빌 게이츠의 말을 인용했다. “빌 게이츠가 살면서 큰 충격을 두 번 받았다고 한다. GUI(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의 구동 방식이다)가 처음 나왔을 때가 첫 번째고, 두 번째가 다름 아닌 챗지피티다.” 실제 마이크로소프트는 챗지피티 개발사 오픈AI에 여러 차례 거액을 투자했다.

고 부사장은 챗지피티의 기능을 크게 글 생성, 코드 생성, 이미지 생성으로 나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이 기술을 자사 제품에도 폭넓게 적용하고 있다. 가령 스프레드시트 프로그램인 마이크로소프트 엑셀에서 자료를 분석하고 그래프로 변환하는 등의 작업을 ‘자연어’로 명령할 수 있다. 엑셀에 전문 지식이 없더라도 질문만 입력하면 기능 대부분을 활용할 수 있다.

인공지능이 산업에 상용화되면 몇몇 직업은 입지가 위협받을 수 있다고 고광범 부사장은 말했다. 유능한 인력과 그렇지 않은 인력의 격차가 커질 것이라고 그는 내다본다. 챗지피티 이후 생산성이란 무엇인가? “좋은 질문을 하는 능력”이라고 고 부사장은 말했다. 양질의 결과를 얻기 위해 정확하고 올바른 질문을 던지는 이가 살아남는다는 것이다. 이미 해외 서점가에는 ‘질문 능력’을 다룬 책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세 번째 강연자는 김진우 라이너(LINER) 창업자 겸 대표였다. 라이너는 2015년 출범한 온라인 검색 서비스로, 웹 문서에 밑줄을 치고 저장하는 등의 기능이 있다. 라이너에는 챗지피티가 기반한 인공지능 모델 GPT-3.5와 GPT-4가 적용되어 있다(〈시사IN〉 제828호 “자기 탐색할 시간 더 많이 줘야 한다” 기사 참조).

이광용 네이버 AI랩 정책전략 책임리더, 김재인 경희대 비교문화연구소 교수, 이숙이 〈시사IN〉 대표, 장병탁 서울대학교 AI연구원장, 고광범 한국마이크로소프트 부사장(왼쪽부터). ⓒ시사IN 조남진

좋은 질문·진위 검증은 인간의 몫

김진우 대표는 챗지피티가 낳을 직업의 변화를 두고 ‘초개인화’를 언급했다. 김 대표가 말하는 초개인화는 사회적 자원의 재분배다. 기술 발전으로 30명이 하던 일을 5명이 하게 되면 나머지 25명의 일은 사라진다. 김진우 대표는 이 25명이 맡을 “새로운 직업을 늘려가면 손실 없이 개인적·사회적 생산량을 늘릴 수 있다”라고 말했다. 기술의 도움을 받아 개인이 가장 자신다운 일을 하면서도 높은 생산성을 유지하는 사회가, 김 대표가 말하는 직업 초개인화의 미래다.

김진우 대표는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오토노머스 에이전트(autonomous agent, 자율 에이전트)’가 주목받는다고 말했다. 오토노머스 에이전트는 “사람이 해야 할 일을 대신 판단해 수행하는 소프트웨어”다. 이 기술이 상용화되면 진정한 의미에서의 ‘개인을 위한 AI 시대’가 시작될 것이라고 김 대표는 말했다.

다음 강연자로는 이광용 네이버 정책전략 책임리더가 나섰다. ‘생성 AI 시대, 미래 인재상’이 강연 주제였다. 이광용 책임리더는 행정고시 출신 공무원으로 15년여 일한 뒤에 네이버로 이직했다. 그는 “가장 보수적인 조직에서 가장 자유로운 조직으로 옮긴 셈”이라고 이력을 자평했다.

이광용 책임리더는 챗지피티와 같은 ‘초거대 AI’를 ‘대학생 또는 대학원생’에 빗댔다. 이 책임리더의 말이다. “과거의 AI는 ‘과업 중심’이었다. 법률이나 의료 AI를 만들기 위해 법·의학 데이터로 학습시키는 식이다. 이 방식을 쓴 ‘전문 AI’는 다른 분야로 뻗어나가기가 어렵다. 초거대 AI는 특정 분야의 지식이 아니라 합리적 판단 능력을 강화하는 쪽으로 발전하고 있다. 사회 전 분야에 확장성이 높다.” 이광용 책임리더는 인공지능이 인간 업무 다수를 대체한 뒤에도 AI 발전과 직결된 분야는 앞으로도 더 유망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AI의 기본 토양인 컴퓨터 과학, 데이터를 분류하는 통계학, 학습 모델을 연구하는 소프트웨어, 연산과 관련된 반도체 등을 예시로 들었다.

마지막 강연자는 김재인 경희대 비교문화연구소 교수였다. 철학자인 김 교수는 AI 기술이 발전하더라도 사회가 필요로 하는 해답 전부를 제시해줄 수는 없다고 말했다. 오류와 ‘환각’ 때문이다. 김재인 교수는 “챗지피티를 비롯한 초거대 언어 인공지능 모델의 핵심 기능은 ‘말이 되는 문장을 만드는 것’일 뿐, 진실성을 담보하지는 못한다는 게 입증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AI의 오류를 검증하는 것은 인간의 몫이라는 게 김 교수의 말이다. 검증 도구로 그는 인문학을 들었다.

김재인 교수는 ‘확장된 문해력’을 갖추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우선 진위와 가치를 읽어내는 능력이 필요하다. ‘생각하는 힘, 생각의 근육’이다. 관계 맺는 능력도 인간만의 영역이다. AI는 주체가 아닌 도구이며, 인간이 이를 활용하기 위해서는 소통이 필요하다. 상호 연결성도 유지해야 한다. 동시대인과 기억을 공유하고, 후세에 전수해온 과정이 AI 시대에도 유효하다는 것이다.

콘퍼런스는 총 4시간 가까이 이어졌는데 먼저 자리를 뜨는 청중은 많지 않았다. 각 연사가 준비한 강연을 마치면 객석에서는 ‘가치관이 획일화된 한국 사회에서 더 많은 직업이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까?’ ‘학교 시험에서 챗지피티를 악용했을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등 다양하고 까다로운 질문을 던졌다. 열띤 박수를 끝으로 SAIC 2023은 막을 내렸다.

기자명 이상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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