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그림
우케쓰 지음, 김은모 옮김, 북다 펴냄

“당신을 용서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당신을 사랑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아내와 곧 태어날 아이에 대한 기대로 가득한 블로그. 그러나 행복은 오래가지 못한다. 아이를 낳는 도중 아내가 사망하고, 몇 년이 흘러 아내가 남긴 그림들의 진실을 깨달은 남편은 감당할 수 없는 충격에 빠진다. 우연히 블로그를 발견한 오컬트 동아리원들은 이 그림들에 숨은 무시무시한 비밀을 파헤치게 된다.
전작 〈이상한 집〉으로 단숨에 일본 장르문학계 스타로 떠오른 우케쓰의 두 번째 작품이다. 문장 읽기를 멀리하는 세태를 의식한 듯 이미지들을 통해 줄거리를 전개해나가며 주요 단서를 도표로까지 정리해준다. ‘너무 친절하잖아. 독자를 바보로 여기나’라는 불쾌감이 들긴 했지만, 몰입감과 ‘보면서 읽는’ 재미가 압도적인 작품.

그렇게 인생은 이야기가 된다
제임스 R. 해거티 지음, 정유선 옮김, 인플루엔셜 펴냄

“언젠가 당신 인생의 이야기가 글로 쓰이는 날이 올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의 부고 전문기자로 일하는 저자는 지난 7년간 800여 명의 부고 기사를 썼다. 부고를 잘 쓰기 위해 저자가 강조하는 질문은 세 가지다. 인생에서 무엇을 이루고자 했는가, 그 이유는 무엇인가, 목표를 이루었는가. 대중적으로 유명한 이들만 다루지 않는다. 유명했어야 하는 사람, 거의 알려지지 않은 사람까지. 누군가의 인생을 한 편의 ‘이야기’를 가졌던 사람으로 탄생시키기 위해 저자는 매일 2~3시간씩 전 세계 사망 기사를 찾아 읽는다. “누구든 책 한 권만큼의 이야깃거리를 품고 있다.” 암울한 시기마다 그는 왜 부고 기사를 펼쳐볼 것을 권할까. 부고 기사가 미국에서는 왜 그토록 중요한 저널리즘의 작업인지 깨닫게 된다.

악인의 서사
듀나 외 8인 지음, 돌고래 펴냄

“‘악인에게 서사를 주지 말라’는 트위터 사람들을 함정에 빠뜨리기 딱 좋은 문장이다.”

악인에게 서사를 주지 말라는 말이 많은 이의 공감을 얻는다. 선정적 범죄 보도가 매혹과 연민의 시선으로 악을 비호하고 합리화한다는 비판이 제기되면서다. 하지만 언론보도를 넘어, 창작의 영역으로 오면 다소 복잡한 문제가 된다. 악당 탄생을 다룬 영화 〈조커〉를 둘러싼 윤리적 논란만 봐도 그렇다. 악의 부재는 선을 재현하는 방식일 수 있는가? ‘악’은 과연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재미있고 ‘선’은 피상적이기만 할까? 평론가와 문화 연구자, 번역가 등 아홉 명이 창작 서사에서 악을 재현하는 문제에 관해 입체적 고민을 나눈다. 불매와 분서갱유의 구실로 고착되기 전에 '악인의 서사'에 대해 차근히 숙고해볼 필요가 있다.

신의 역사
카렌 암스트롱 지음, 배국원·유지황 옮김, 교양인 펴냄

“우리는 ‘신’이라는 단어가 오늘날 우리에게 과연 어떤 의미인지 결정해야 할 것이다.”

열일곱 살에 수녀원에 들어간 저자는 7년 만에 세상으로 다시 돌아온다. 기도에 몰두했지만 그 어디에서도 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종교학자로서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를 연구하며 새로운 발견을 하게 된다. “만약 세 종교의 탁월한 유일신론자들로부터, 높은 곳에서 내려오는 신을 기다리는 대신 나 자신을 위해 신에 대한 감각을 의식적으로 창조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더라면 많은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 것이다.” 그 아쉬움의 결과가 이 책이다. 첫 장인 ‘신의 기원’부터 시작해 ‘신의 죽음’ ‘신의 미래’까지 망라했다. 그만큼 책이 두껍지만 읽기 어렵지는 않다.

이탈리아로 가는 길
조귀동 지음, 생각의힘 펴냄

“포퓰리즘 정치의 약속의 땅, 한국과 이탈리아.”

한국은 모방하며 성장했다. 일본과 미국의 길을 따랐고, 최근에는 독일이나 스웨덴도 흔히 대안적 모방 대상으로 떠오른다. 그리하여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는 자화자찬이 등장할 무렵, 저자는 ‘어떤 선진국을 말하는 거냐’고 반문한다. 막상 우리가 가는 길은 이탈리아를 닮았다. 초저출생, 지역 불균형, 제조업 쇠퇴, 이민자에 대한 갈등, 가부장적 질서, 그리고 구조적 개혁을 합의하지 못하는 포퓰리즘 정치 환경까지. 책에서 이탈리아에 대한 내용은 많지 않다. 한국 정치가 2010년대 이후 어떻게 포퓰리즘에 의존해갔으며, 평범한 하위 중산층의 열망을 모으지 못했는지 분석한다.

장애시민 불복종
변재원 지음, 창비 펴냄

"함께하자는 말이 지나온 내 삶에 너무 큰 위로가 되었다."

'시민 불복종'이라는 단어 앞에 '장애'가 붙으니 생소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오랫동안 장애시민 불복종 운동을 보고, 느끼고, 체험하고 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에서 장애인 권리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휠체어를 타고 지하철에 타는 모습, 저상버스가 아닌 광역버스를 온몸으로 가로막는 모습, 대통령실과 가까운 서울 삼각지역 승강장에 모여 머리카락을 깎는 모습 등. 장애 당사자이자 인권활동가, 소수자 정책 연구자인 저자는 자신이 전장연에서 정책국장으로 활동하며 느끼고 생각한 점들을 정리했다. "착한 장애인은 자기 삶을 바꾸지만 나쁜 장애인은 세상을 바꾼다."

기자명 시사IN 편집국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