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 프론테라
김희순 지음, 앨피 펴냄

“세계화는 우리들 사이에 놓인 장벽을 허물어뜨리지 못했다.”

책 제목은 스페인어로 ‘국경’이라는 의미다. 장벽과 철조망 따위로 가로막힌 3100여㎞ 경계.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선은 국지적 경계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이 책은 지리적으로 형성된 국경선을 두고 미국과 멕시코라는 두 세계가 조우한 역사를 풀어내며 최근 팬데믹 국면까지 논란이 된 두 나라 간의 갈등 양상을 설명한다. 우리에게는 너무 먼, 아무 관련 없는 일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국경을 무대로 한 미국과 멕시코의 공생과 긴장 관계, 그리고 그 경계를 넘나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우리가 겪을 또 다른 미래를 생각해보게 한다. 넷플릭스 〈나르코스〉 시리즈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더욱더 읽어볼 만한 책이다.

하하호호 기획법
오구니 시로 지음, 김윤경 옮김, RHK 펴냄

“상황에 따라서 ‘답’은 모습을 바꿔가지만 ‘질문’은 보편적인 것이 많습니다.”

대부분의 분야에서 우리는 프로이기보다는 아마추어다. 아마추어가 꼭 나쁜가? 어디든 전문가보다는 초심자가 압도적으로 많은데? 그걸 ‘대중’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새로운 관점도 그 속에 씨앗을 품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NHK 연출가 출신인 저자는 자신이 해야 할 일에 앞서 ‘잘 모른다’는 것을 먼저 인정하는 사람이다. 그렇게 만든 마음의 여백 안에서 타인과 손잡는 방법을 궁리한다. 치매 노인이 홀 서빙을 하는 레스토랑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은 그의 대표 프로젝트 중 하나이다. 많은 사람들의 참여와 호응을 이끌어내는 기획은 ‘햇볕정책’과 ‘재미’의 조합이라는 영업 비밀을 풀어내는 책.

박물관 소풍: 아무 때나 가볍게
김서울 지음, 마티 펴냄

“내가 박물관을 즐기는 방식은 조금 느긋하다.”

박물관은 쾌적하다. “사계절 내내 일정한 온도에 습도에 조도를 유지한다. (중략) 그리고 무엇보다 음악이 없다. 식당에서도, 길거리에서도, 심지어 공원에서도 음악이 나오는 한국에서 말이다.” 저자가 박물관을 좋아하는 이유를 알고 나면 요즘처럼 무더운 날씨에 이보다 더 매력적인 공간이 있을까 싶다. 책에는 국립중앙박물관은 물론 경주·광주·대구·익산·제주·중앙·진주·춘천, 그리고 서울역사박물관까지 총 열 곳이 소개돼 있다. 작품 사진도 적재적소에 배치돼 있어서 읽을 맛이 난다. “전통 회화와 보존처리를 전공했고 최근에는 대학원에서 박물관 정책을 공부하고” 있는 저자는 알찬 가이드가 되어준다.

건널목의 유령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박춘상 옮김, 황금가지 펴냄

“언론인이라는 인종은 타인의 불행을 세상에 끄집어내서 밥벌이를 한다.”

꼭 여름이 아니라도 '괴담'은 대중문화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장르에 속한다. 일본 장르문학계에서도 '페이지터너'로 통하는 다카노 가즈아키가 긴 공백기를 깨고 11년 만에 낸 장편소설이 '심령 서스펜스'란 점은 대단히 의미심장하다. 1994년 말의 도쿄를 배경으로 심령 특집 기획을 맡게 된 월간지 '계약기자'가 열차 건널목을 촬영한 사진에 찍힌 유령의 신원을 추리해나가는 과정을 촘촘한 필치로 그렸다. 작가는 1962년 터진 ‘미카와시마 열차 사고’에서 소설의 영감을 얻었는데, 이 사고의 희생자 160명 중 단 한 사람의 신원만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았다고 한다. 추리소설이지만, 유령이 등장한다.

둔촌주공아파트, 대단지의 생애
이인규 지음, 마티 펴냄

"왜 이렇게까지 거대한 문제가 만들어진 것인가?"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아파트 주변에 늘 저자가 있었다. 그곳에서 나고 자란 그는 재건축으로 사라지는 아파트를 기록하려고 '안녕, 둔촌주공아파트'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대학원에서는 '둔촌주공아파트 단지 생애사 연구' 논문을 썼다. 단군 이래 최대 단지라 불리던 둔촌주공은 '단군 이래 최대 재건축사업'의 대상이 되었다. 2019년 철거된 후에는 시공사와 재건축조합의 갈등으로 공사를 멈췄다. 우여곡절 끝에 재개됐으나 레고랜드 사태로 유동성 위기의 불똥을 맞았다. 분양 직전 이어진 각종 부동산 규제완화를 두고 '둔촌주공 살리기'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 대단지 아파트의 탄생과 재탄생에 한국 사회의 특수성이 요약되어 있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북한이 온다
정욱식 지음, 서해문집 펴냄

“새로운 북한은 대북정책을 원점에서부터 재검토해야 한다는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

2020년 〈노동신문〉은 ‘남조선면’을 없앴다. 7월 초 담화에서 김여정 조선노동당 중앙위 부부장은 ‘남조선’이 아닌 ‘대한민국’으로 칭하기 시작했다. 전략적 차원에서 북한이 크게 달라졌다는 분석이 쏟아진다. 그에 비해 국내 대북정책은 ‘과거의 북한’에 머물러 있다. 여전히 북한의 식량난과 경제난만을 강조하거나, 핵 개발을 협상 카드로 삼아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노린다는 분석이 대표적이다. 저자는 새로운 북한이 온다고 강조한다. 안보는 핵으로, 경제는 자력갱생으로, 외교는 중국과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반도 게임의 법칙도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남북·북미 관계의 변화를 깊이 있게 파고들었다.

기자명 시사IN 편집국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