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조남진

사실 ‘직업으로서의 정치’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직군은 국회 보좌진이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곧잘 재현되는 보좌진의 모습은 음험한 전략가이거나 ‘의원 갑질’의 희생자이지만, 보통의 현실은 정치라는 직업 영역의 생활인에 가깝다.

보좌진은 국회의원의 핵심 동료다. 정무와 정책이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두 영역을 넘나들며, 중앙정치와 지역 현안을 동시에 챙겨야 한다. 4급 보좌관부터 9급 비서관까지 총 9명이 한 의원실에 근무한다. 국회의원이 300명이니 보좌진 2700명이 국정감사부터 수행, 행정 등 각기 다른 형태의 정치 업무를 맡고 있다.

그래서 “노조랑 비슷한” 보좌진협의회가 생기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한국의 거대 양당(더불어민주당·국민의힘) 보좌진협의회가 주목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난 7월6일 치러진 국민의힘 보좌진협의회(국보협) 회장 선거는 '역대급'으로 치열했다. 모두 다섯 명이 출마했다. 김병욱 의원실(포항 남구·울릉군)의 김민정 보좌관(44)이 33대 국보협 회장으로 당선됐다.

김 보좌관은 최초 타이틀로도 많은 주목을 받았다. 그는 한국 보수정당 최초 보좌진협의회 여성 회장이다. “3년 전 앞서 도전했던 여자 선배 보좌관 덕분에 출마를 결심할 수 있었다. 이번에 내가 도전해서 당선되면 감사한 일이고, 안 되더라도 다음에 다른 여성 보좌진이 다시 나오는 발판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뛰어들었다.”

상사인 김병욱 의원도 보좌관 출신이다. 김 의원은 ‘출마하는 거면 무조건 이겨야 한다’며 지원사격을 해줬다. 김 보좌관은 선거운동 기간 2주 동안 각 의원실을 4회씩 찾았다. 선거 막판에는 10층 건물인 국회 의원회관을 층마다 뺑뺑 돌아, 하루 걸음 수가 2만 보에 가까웠다. 그 덕분에 지금은 복도를 지나다, 엘리베이터를 타다 먼저 인사하는 동료 보좌진들이 생겼다. 당선으로 화제가 된 김 보좌관에게 먼저 말을 건네는 의원도 있다.

그는 이러한 관심을 잘 활용하고 싶다고 했다. “이번 선거로 국보협이 주목받았는데, 사람들이 보좌진 자체에 대한 관심을 더 주고 위상도 더 알아줬으면 좋겠다. 이를 통해 보좌진의 처우와 직업에 대한 존중도 더 늘었으면 한다. 보좌진은 정치적 훈련을 받고 업력을 쌓는 사람이다.” 김 보좌관의 공약은 △연가 제도 현실화 △수행·행정 보좌진위원회 신설 △당내 인재영입위 및 공심위 활동 참여 보장 등이다.

그는 2004년 손봉숙 의원실에서 입법보조원으로 시작했다. 이후 이두아·이학재·윤주경 의원실을 거치며 비서관, 보좌관 등을 지냈다. 신문을 직접 우편함에서 가져와 가위로 오려 스크랩하고, ‘정론관(현재 소통관으로 이름이 바뀐 국회 기자실)’ 앞자리에 보도자료를 두려고 경쟁하던 시절부터 "업력을 쌓아 올린" 셈이다. 지금은 또 다른 ‘국회의 역사’를 만드는 일의 맨 앞에 섰다.

기자명 김은지 기자 다른기사 보기 smi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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