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공영방송사 PTS의 러우야쥔(49·가운데)·정중훙(48·왼쪽) 기자와 양첸하오 한국 주재 프리랜서 기자(33)가 서울의 한 어린이보호구역 도로 위에 섰다. ⓒ시사IN 이명익
대만 공영방송사 PTS의 러우야쥔(49·가운데)·정중훙(48·왼쪽) 기자와 양첸하오 한국 주재 프리랜서 기자(33)가 서울의 한 어린이보호구역 도로 위에 섰다. ⓒ시사IN 이명익

타이완에는 ‘보행자 지옥(行人地獄)’이라는 신조어가 있다. 보행자가 횡단보도나 인도 없는 도로 위에서 차량에 치여 죽거나 다치는 일들이 끊임없이 일어나자 생긴 말이다. CNN 등 외신이 이 문제를 다루면서 더 유명해졌다. 스위스 외교부는 자국민에게 안내하는 각국 여행 정보 가운데 타이완의 ‘교통 및 인프라’ 섹션에 이런 평가를 써놓았다. “출퇴근 시간 많은 운전자들의 예측 불가능하고 무모한 행동으로 인해 사고 위험이 상당합니다.” 지난해 타이완에서 교통사고로 인해 보행자 394명이 사망하고 1만6000명이 부상을 입었다.

타이완 공영방송사 PTS의 러우야쥔(49·가운데)·정중훙(48·왼쪽) 기자와 양첸하오 한국 주재 프리랜서 기자(33)는 타이완의 도로 안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획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 취재처는 한국, 주제는 ‘타이완과 한국의 도로 안전 설계’이다. 7월1일부터 일주일간 한국의 어린이보호구역, 보행자보호구역 등을 현장 취재하고 택시기사, 보행자 시민, 저널리스트, 공무원, 교통정책 전문가 등을 만나 인터뷰했다. 한국의 보행자 보호 정책, 안전시설, 시민의식 등을 살펴보고 타이완이 배울 점을 찾는 게 이 취재팀의 목표다.

최근에도 타이완 남부 지역에서 어머니와 유아차를 탄 다섯 살 딸이 횡단보도를 건너다 신호위반 차에 치여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한국과 비슷하게, 이런 사고가 벌어질 때마다 분노의 여론이 끓어오르지만 좀체 개선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큰 사고를 일으켜도 가해 운전자의 처벌이 약하고 예방을 위한 단속과 시설 투자도 미미하다.

처벌 강화 목소리는 높지만 타이완에는 아직 가해 운전자를 강하게 처벌할 근거 법률이 없다. ‘과실치사법’에 의해 5년 이하 징역, 2000만원 이하 벌금 정도가 최대치다. 취재팀은 타이완과 여러 상황이 비슷하지만 최근 빠르게 교통사고 사망자 수가 감소하고 있는 한국의 변화에 주목했다. 실효성 있는 법률과 안전시설 업그레이드, 운전자와 보행자의 안전교육 강화가 추진된 덕에 한국이 타이완보다 한층 선진화된 교통안전 문화를 만들어나가고 있다고 봤다. 러우야쥔 기자는 특히 “민식이법이나 5030 정책과 같은 속도제한 입법화를 타이완에서도 당장 도입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라고 말했다.

제도개선보다 더 중요한 게 인식 변화다. 러우야쥔 기자는 “타이완에서는 보행자가 ‘도로의 노예화’ 되었다는 말을 한다. 보행자만 ‘내가 조심해야지, (자동차에) 양보해야지’라고 생각하는 자동차 우선주의가 만연하다. 이런 관념을 바꾸는 게 어렵지만 가장 필요하기도 하다”라고 말했다. 이 모든 문제의식과 해결 대안을 담은 보도는 오는 8월 말 타이완 PTS 방송의 〈독립 특파원 IN-NEWS〉 프로그램으로 방송될 예정이다.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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