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혹은 친지 내에서 주로 이루어지는 ‘무급 가사노동’을 금액으로 환산했을 때, 한국 여성들의 생애 ‘흑자(국민시간이전계정으로 계산)’ 기간이 무려 54년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남성들의 ‘흑자’ 기간은 16년에 그쳤고 그 규모도 훨씬 적었다. 국민시간이전계정에서 ‘흑자’란, 해당 구성원이 다른 가족 구성원에게 베푼(생산) 무급 가사노동(돌봄, 청소, 세탁, 음식 조리 등)이, 다른 구성원들로부터 제공받은(소비) 가사노동보다 많다는 의미다. ‘적자’는, 제공받은 가사노동이 베푼 가사노동 보다 많은 경우다.
가사노동 부담이 가장 큰 연령은 38세
6월27일, 통계청은 자체 개발한 ‘국민시간이전계정(NTTA)’ 통계로 2019년 현재 무급 가사노동이 연령별로 ‘어떻게’ ‘얼마나’ 생산-소비-이전되었는지 분석한 결과(〈무급 가사노동 평가액의 세대 간 배분 심층분석〉)를 발표했다. 가족 내에서 이뤄지는 가사노동은 시민들의 복지 및 경제활동의 근간을 이루지만 돈으로 사고파는 시장 거래가 아니다. 시장 거래가 아니므로 GDP에 집계되지도 않는다. 지난 몇 년 동안, 특히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면서 무급 가사노동의 중요성이 학술적으로나 정책적으로나 새삼 강조되어 왔다. 통계청이 가사노동을 분석하기 위한 국민시간이전계정을 공식 통계기관으론 세계 최초로 작성한 이유다.
2019년 기준으로 가사노동의 ‘생애주기적자(가사노동 소비에서 생산을 뺀 수치)’를 금액으로 환산하면, 유년층(0~14세)은 131조6000억원의 적자를 ‘누린’ 것으로 나타났다. 가사노동을 집중적으로 소비하지만(돌봄을 받는다는 의미) 생산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영유아가 다른 영유아를 돌보거나 음식을 조리하는 일은 거의 없다. 노동연령층(15~64세)은 128조1000억원 흑자(가사노동 소비 281조9000억원에서 생산 410조원을 뺀 수치), 노년층(65세 이상)도 3조5000억원 흑자(77조4000억원 소비, 80조9000억원 생산)로 나타났다. 통계청은 가사노동과 같은 내용으로 노동하는 직종(음식 관련 업종, 환경미화, 교육 관련직 등)의 시장임금을 적용해서, 가사노동을 금액 단위로 평가했다.
유년층의 가사노동 적자(131조6000억원)는 노동연령층과 노년층의 흑자를 합한 수치(128조1000억원+3조5000억원)와 같다. 후자들의 가사노동 평가액이 유년층으로 이전되었다는 의미다.
1인당 생애주기적자는 0세가 3638만원으로 가장 높았다. 이후 점차 줄어들다가 26세에 흑자로 전환된다. 1인당 가사노동 흑자 폭은 자녀 양육 등으로 바쁜 38세에 생애 최대인 1026만원에 도달했다가 점차 감소해 75세엔 다시 적자로 진입하게 된다.
성별로 본 생애주기적자
그러나 1인당이 아니라 성별로 보면 생애주기적자의 실상이 크게 다르게 느껴진다. 남녀 모두 가사노동 생산 규모가 30대 후반에 최대치에 도달한 뒤 점차 줄다가 노년기에 소폭 증가하는 패턴은 같다. 노년기의 증가는 손자녀의 돌봄을 맡는 경우가 많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남성의 가사노동은 31세에 흑자로 진입해서 16년 뒤인 47세에 적자로 바뀐다. 여성은 남성보다 6년 빠른 25세에 이미 흑자로 들어가지만 적자로 진입하는 시기는 54년 뒤인 84세로 나타났다. 남성 측의 취업(GDP로 계산되는) 비율이 여성보다 높기 때문이겠지만, 노년층에서도 여성이 무급 가사노동에 훨씬 많이 종사한다는 의미다. 남녀 모두 38세에 가사노동 최대 흑자를 기록했는데, 남성은 259만원, 여성은 1848만원이었다.
성별 생애주기적자로 보면, 남성은 가사노동 생산 보다 소비가 많아 91조6000억원 적자였다. 이는 여성의 가사노동 흑자 규모가 91조6000억원이라는 것과 같은 말이다. 이 규모의 가사노동이 여성으로부터 남성에게 이전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통계청은 보도자료에 이 분석 보고서가 “인구구조 변화에 대응하여 가사노동의 연령별 분포를 세부적으로 파악하기 위한” 것으로 “‘정부의 재정지출’, ‘육아 지원정책’ 등 저출산·고령화 대비 정책 수립의 근거자료로 유용하게 활용될 것을 기대한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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