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빌라왕 사건’으로 불린 악성 임대인 김대성 전세사기 피해자 일부가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게 됐다. 이번에 전세보증금을 돌려받게 된 480여명은 그동안 전세보증금반환보증에 가입했음에도 대위변제가 기약 없이 미뤄지던 이들이다. 대위변제란 다른 사람이 채무자 대신 채무를 변제하고 채권을 가져가는 것을 말한다.
이들은 지난해 10월 임대인 김대성이 사망하면서 상속인을 찾지 못해 대위변제를 받을 수 없었지만, 지난 5월26일 김대성의 상속재산 관리인이 선임된 사실이 〈시사IN〉 취재 결과 뒤늦게 확인되었다.
〈시사IN〉 취재 결과,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보증금반환보증에 가입한 김대성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6월 초 HUG에서 “상속재산 관리인이 지정됐으니 대위변제 절차를 진행할 수 있다”는 취지의 연락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임대인 김대성이 사망한지 약 8개월만이다.
이들은 전세반환금보증보험에 가입돼 있음에도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처지였다. HUG로부터 전세보증금을 반환(대위변제)받기 위해서는 임대인에게 계약 해지를 통보하고, 임차권 등기를 마쳐야 한다. 두 절차를 밟기 위해서는 통보 대상인 임대인이 필요한데, 지난해 10월 김대성이 사망함에 따라 통보받을 당사자가 사라져 모든 절차가 중단된 상태였다.
임대인이 사망한 경우, 임차인은 임대인의 자산을 상속받는 상속인을 찾아 남은 절차를 진행해야 한다. 문제는 김대성의 재산을 상속하려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었다. 김대성에게는 수천억 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전세보증금 반환 의무가 있었고, 체납 세금 규모도 62억원을 넘을 것으로 추정되었다. 김대성의 직계 가족인 부모는 지난 3월 상속을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후순위 상속인을 찾는 과정에서도 어려움을 겪으며 피해는 기한 없이 이어졌다. 계약 해지를 통보하지 못해 묵시적으로 계약이 연장되며 피해자들은 전세대출 이자를 갚느라 생활고를 호소했다(〈시사IN〉 제819호 ‘김대성 전세 사기 피해자들의 고통, 언제 끝날지 모른다’ 참조).
다행히 지난 5월26일 의정부지방법원이 상속재산 관리인을 선임함에 따라 긴 기다림이 해결될 길이 열렸다. 민법 제1023조에 따르면 이해관계인은 상속 재산 보존에 필요한 처분을 청구할 수 있다. HUG는 이 조항을 이용해 법원에 상속재산 관리인 선임을 요청했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여 6월1일부로 상속재산 관리인 효력이 발생했다.
법원의 상속 재산 관리인 선임으로 인해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게 된 피해자는 480여 명으로 추산된다. 사전심사제도로 대위변제 심사는 이미 마쳤기에, 계약해지 통보와 임차권 등기만 완료되면 전세보증금을 받을 수 있다. 한 피해자는 〈시사IN〉과의 통화에서 “임차권 등기까지 마치려면 몇 달은 더 걸리겠지만, 드디어 끝이 보여서 다행이다”라고 말했다.
다만 이번 상속 재산 관리인 선임으로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는 피해자는 전세보증금반환보증에 가입한 이들로 한정된다. 법원에서 명령한 상속 재산 관리인의 업무 범위가 대위변제를 받을 수 있는 이들의 ‘계약해지 통보’와 ‘임차권등기 통보’에 한정됐기 때문이다. 전세보증금반환보증에 가입하지 않은 나머지 피해자들은 여전히 상속인을 직접 찾아야 하는 과제가 남았다.
남은 피해자들이 어떤 법적 조치를 취할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김대성 피해자들을 돕고 있는 김대진 변호사(법무법인 융평)는 〈시사IN〉과의 통화에서 “민법 제1023조를 활용한 상속 재산 관리인은 임대인 파산 등의 절차를 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피해를 최대한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지 김대성 전세사기 피해대책위와 논의 중이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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