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16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서울국제도서전에 참석한 최의택 소설가. 이벤트 응모에 어려움이 있었다. ⓒ최의택 소설가 제공

내가 속한 한국과학소설작가연대의 작가들이 멍석을 깔아준 덕분에 처음으로 서울국제도서전에 가게 됐지만, 사실 천안에서 서울로 가는 동안에도, 차에서 내려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올라갈 때까지도 나는 의심을 떨치지 못했다. 선천성 근이영양증으로 인해 평생을 휠체어 위에서 생활하고, 그나마도 체력이 떨어져 학업을 포기하고 집에서만 지내며 글을 쓰는 내가 도서전에 가다니. 과연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도서전이 열린 코엑스 1층 로비는 사람들로 붐볐다. 도서전에 입장하기 위해서는 데스크에서 티켓을 팔찌로 교환해야 했다. 그 앞에 길게 이어진 줄을 보니 벌써부터 진이 빠지는 기분이었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세워놓은 라인 가드가 ㄹ자로 사람들을 유도하고 있었다. 그 덕분에 ‘사람’들은 효율적으로 줄을 설 수 있었다. 국제도서전에서 호기롭게 외친 ‘비인간’, 그중에서도 장애인인 나는 그들의 대열에 합류할 수 없었다. 전동 휠체어를 타고는 라인 가드가 규정한 좁고 각진 길을 나아가기 어려웠다. 물론 라인 가드는 손쉽게 해체가 가능하고, 실제로 직원분이 내가 데스크 앞으로 갈 수 있도록 라인 가드를 치워주었다. 다만, 그 과정에서 줄이 막히고 통과가 지연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 때문에 누군가가 불평을 늘어놓지는 않았지만 나로 인해 정체 중인 상황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팔찌를 착용하고 입구로 가는 동안 나는 마스크 안에서 입을 헤벌리고 가쁜 숨을 쉬었다. 차를 타고 두 시간씩 움직이는 게 힘들기도 했지만 데스크 앞에서의 몇 분이 부담되기는 더했다. 그래서 멍하니 들어선 전시홀을 보고 깜짝 놀랐다. 드넓은 천장에서 쏟아지는 환한 조명으로 반짝이는 부스들의 향연, 그 틈을 메우는 수많은 사람들. 나는 걸신들린 듯 주변 광경을 눈에 담기 바빴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생각보다 괜찮네?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훌륭했다.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그래서 일종의 오기를 가지고 휠체어를 가로막는 무언가를 찾아 헤맨 끝에 나는 다시 한번 라인 가드를 마주했다.

올 상반기 극장을 뜨겁게 달군 〈슬램덩크〉는 도서전마저 후끈하게 불을 지폈다. 사실 나는 〈슬램덩크〉 세대는 아니지만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에는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슬램덩크〉 부스 주변에 라인 가드가 둘러싸여 있었다. 처음에는 미술관에서 하듯 부스 벽에 그려진 인물들이나 부스 자체를 보호하려는 목적인 줄 알았다. 하지만 라인 가드 안으로 사람들이 줄지어 서서 뭔가를 하고 있었다. 나의 관심은 그 선을 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설령 누군가의 도움으로 선을 넘었더라도 휠체어를 탄 나의 눈높이로는 그 너머의 뭔가를 보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서울국제도서전에 참석한 최의택 소설가가 잠시 빈 공간을 찾아 쉬고 있다. ⓒ최의택 소설가 제공

타인의 도움만이 방법일까?

그러한 측면에서 따져보면 부스의 상당 부분이 내 눈높이에 맞지 않았다. 한 부스는 한쪽에 컴퓨터들을 진열해 걸어 다니는 사람들이 지나가다 바로 조작할 수 있게 했는데, 휠체어 사용자뿐 아니라 키가 작은 사람, 구체적으로는 아이나 왜소증인 사람들은 접근하기 어려워 보였다. 또, 많은 부스에서 이벤트 응모를 받기 위해 아크릴 상자 같은 것들을 설치했지만 역시나 비장애인 성인 눈높이에 맞춰져 있었다. 이벤트에 당첨되면 희소성 있는 굿즈를 경품으로 받을 수 있는데, 눈높이에 따라 경품을 탈 가능성마저 제한되는 상황에 무력감부터 들었다. 물론 하고자 마음만 먹으면 부스 직원이 친절하게 도와줄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익숙하지 않거나 싫을 경우에는? 정말 타인의 도움만이 방법일까?

한참을 돌아다니던 나는 엉덩이가 배기는 것을 견디며 쉴 곳을 찾아 헤맸다. 욕창 방지용 쿠션을 쓰고 있음에도 엉덩이의 통증을 없앨 수는 없는 탓에 시시때때로 휠체어 등받이를 젖히고 누워서 쉬어야 했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통로에서 휴식을 취할 수도 없었다. 나 스스로도 심리적인 저항이 있었고, 사람들의 동선에도 방해가 될 테니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 헤매도 도서전 내에는 최소한의 사생활을 보호할 장소가 없었다. 결국 비교적 사람이 적은 B홀의 구석 공간에서 휴식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천장을 올려다보며 생각했다. 나는 둘째치고, 수유실 같은 건 없나? 적어도 내가 다녔던 동선, 내 눈높이에서는 보지 못했다. 그뿐만이 아니라 장애인용 화장실도 보지 못했다. 화장실이 있기는 했지만 그 안이 어떤지는 알 수 없었다. 좁고 각진 내부를 확인할 엄두도 못 냈다. 코엑스 건물 어딘가에 장애인용 화장실이 있겠지만(희망 사항이다), 화장실이란 게 급한 일을 처리하는 곳이고 더더군다나 나 같은 사람은 그 과정에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탓에 화장실이 가까운 곳에 없다는 것은 거의 공포에 가까웠다.

한편, 그동안 이보다 훨씬 못한 곳들을 겪어온 나로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건 아닐까? 어쨌건 휠체어를 타고도 입장할 수 있고, 돌아다닐 수 있고, 구경할 수 있고, 책도 살 수 있다. 그 정도면 된 것 아닐까?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23 서울국제도서전. ⓒ연합뉴스

결과적으로 내가 도서전에서 한 일이라고는 부스 사이를 오가며 구경하고 책을 몇 권 산 정도였다. 집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이다. 코엑스 옆에 살아서 동네 산책하듯 갈 수 있는 게 아니라면 굳이 책을 구경하고 사러 거기까지 갈 필요는 없지 않나. 도서전만이 제공하는 경험은 그런 것이 아니라 전적인 참여가 아닐까? 내가 알지 못했던 여러 출판사의 부스를 구경하고, 출판사에서 공들여 준비한 이벤트에 참여해 굿즈를 받고, 책을 만든 편집자와 마케터들과 책 이야기를 하며 책을 구매하고, 작가를 대면하는 것. 도서전에서만 가능한 경험 대부분은 여전히 접근성이 떨어졌다. 그 간극을 다수의 배려와 소수의 뻔뻔함에 전적으로 의지해야만 할까?

지친 몸을 이끌고 다시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부모님이 화장실에 간 동안 나는 복도를 빙글빙글 돌다가 유리문으로 비치는 내 모습을 보고 멈춰 섰다. 나 스스로도 소설집의 제목을 통해 ‘비인간’임을 자처했지만, 이번 서울국제도서전이 외쳤듯 “인간을 넘어” 추구하고자 한 ‘논휴먼(NONHUMAN)’이 다소 멀게 느껴졌다. 다시 말하지만 서울국제도서전은 표면적으로 접근성이 좋았다. 살면서 시설이 아닌 곳에서 이토록 다양하고 많은 장애인을 본 건 처음이었다. 그러나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사소한 점들로 인해 누군가는 배제되었다. 간접적인 방식의 배제도 배제는 배제다. ‘비인간’으로서 “인간을 넘어 (결국 다시) 인간으로” 회귀하지 않기를, 혹은 그저 도서전이라는 콘텐츠를 소비하는 소비자이자 도서전에 참여하는 작가로서 조금 더 세세한 부분이 개선되기를 바란다.

기자명 최의택 (소설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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