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세계 녹색당 총회 기간에 열린 녹색당 전당대회에 당원 300여 명이 참석했다.ⓒ녹색당 제공

창당 11년 만에 처음 열린 녹색당 전당대회는 레게 음악과 함께 시작됐다. 녹색 옷과 액세서리를 걸친 사람들이 연주에 맞춰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 녹색 깃발이 곳곳에서 휘날렸다. 전당대회가 열린 6월10일, 회의장 밖에서도 전 세계 녹색당원이 모인 축제가 이어졌다. 아시아에서 최초로 열린 ‘2023 세계 녹색당 총회’다. 인천 송도에서 6월8일부터 나흘간 이어진 총회에는 80여 개국에서 온 녹색당 소속 정치인과 활동가·시민 약 700명이 참석했다. 2017년 4차 총회가 영국 리버풀에서 열린 이후 6년 만이었다.

이번 총회 행사 중 하나로 지난 5월 선거에서 지방의원 481명을 당선시킨 영국 녹색당의 간담회가 열렸다. 한국과 같은 소선거구제 선거제도에서 두 배 이상 의원 수를 늘린 성공 사례였다. 이들은 주민들과 직접 만나지 않으면 녹색당은 그저 ‘나무를 껴안는 사람들’로 생각될 뿐이라며 단 한 명이라도 당선시키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고 했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중단시키기 위해 국제사회에 연대를 요청하고 있는 일본 녹색당도 현장을 찾았다. 6월11일 폐막식에는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강행하려는 일본 정부를 규탄하며 전 세계 녹색당이 ‘한국 선언’을 채택했다.

2012년 창당한 한국 녹색당은 국내에서 기후위기 의제를 가장 먼저 선점한 정당이다.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가 발생한 지 1년이 지나며 당시 이명박 정부의 원전 정책을 반대하는 여론이 커지던 때였다. 녹색당은 농민·성소수자·청소년·동물 등 기존 정치에서 소외된 존재들을 대변하며 대안 정치를 내세웠다. 창당을 주도한 하승수 당시 공동운영위원장은 녹색당을 ‘시민들을 위한 새로운 답’이라고 설명했다. “(선거라는) 답안지에 내 마음에 드는 답이 없으면 결국 차악을 택하게 된다. 그게 한국 사회 안에서 수십 년간 반복됐다. 그럼 답안지에 우리가 원하는 새로운 답을 직접 집어넣자, 우리가 정당을 만들자, 그렇게 녹색당이 시작됐다.”

녹색당은 한국에서 가장 오랫동안 당명을 바꾸지 않은 정당이다. 여성 당원 비율이 54%에 이르고 2030 세대가 가장 많은 젊은 정당이기도 하다. 2014년 헌법소원을 통해 득표율 2%에 미달할 경우 정당 등록이 취소되는 정당법을 고치도록 만들었다. 2016년 비례대표 후보의 기탁금을 1500만원에서 500만원으로 낮추도록 공직선거법을 바꾸게 한 정당이기도 하다. 동시에 12년 동안 광역·기초 의원을 단 한 명도 내지 못한 정당이자 세 번의 총선에서 당 지지율이 1%를 넘지 못한 정당이기도 하다.

녹색당은 소수 정당으로 살아남기 위해 경직된 정당법·선거법과 싸우면서 동시에 지역 현장에서 주민들을 만났다. 2016년 3월, 경남 밀양에서 송전탑 반대운동을 벌이던 주민 28명이 단체로 녹색당에 입당했다. “이번 총선에서는 수년간 투쟁 현장을 함께 지켜준 녹색당을 밀어주겠다.” '시골 할매, 할배'들이 입당한 이유였다. 그사이 ‘지구 온난화’라는 단어가 ‘기후위기’로 바뀌었다. 녹색당에게는 시민의 열망을 ‘원내 진입’이라는 성과로 증명하는 일만 남은 것 같았다. 그러나 올해 열한 살이 된 녹색당은 그 어느 때보다 절박하게 존재 이유를 증명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녹색으로 바위 치기’는 아직도 유효할까? 전현직 당직자들에게 물었다.

11년간 이어진 ‘녹색으로 바위 치기’

2020년 제21대 총선에서 녹색당은 정당 지지율 0.21%를 기록했다. 2012년 창당 한 달 만에 치른 제19대 총선 때의 0.48%에 비해 반토막이 난 셈이다. 10여 년 동안 등락은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처음보다 못한 성적표를 받아든 것이다.

현실 정치의 플레이어로 뛰고자 하는 열망이 당내에 없었던 것도 아니다. 2014년 7월 지방선거 평가 토론회에서 “마지막 연습을 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정치 아마추어들의 예행연습은 끝났으니 이제 실전에서 뛰겠다는 각오였다. 2016년 총선 전략을 논의하며 하승수 당시 공동운영위원장은 “작은 정당이지만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꾸겠다는 열망을 가지고 있다면 권력의지를 가져야 한다”라고 말했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는 고은영 제주도지사 후보, 신지예 서울시장 후보가 녹색 바람을 일으키는 듯했다. 하지만 그 기세가 다음 선거까지 이어지지는 못했다.

오히려 악재가 연이어 터졌다. 2020년 3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된 21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더불어민주당(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선거연합정당’ 참여를 놓고 당내 논란이 커졌다. 전 당원 투표 결과 74% 찬성으로 연합정당 참여가 확정됐으나, 윤호중 민주당 사무총장의 “이념 문제라든가 성소수자 문제라든가 불필요한 소모적 논쟁을 일으킬 수 있는 정당과 연합은 어렵다” “비례대표 후보 추천에 있어선 엄밀하게 협의해봐야 할 사안이라고 생각한다” 같은 말들이 당내 갈등을 촉발했다. 위성정당 들러리가 되면서까지 원내에 진입하는 것이 녹색당의 지향에 부합하느냐를 두고 반발이 커졌다. 결국 연합정당 참여를 거부하고 독자 노선으로 선거를 치르기로 했지만 한 달여의 시간 동안 지도부는 해체되고 베테랑 당원들이 탈당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녹색당에는 내홍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인지도를 키워가던 정치인들은 당을 떠났다. 당원이 큰 폭으로 줄어들지는 않았지만(녹색당 당원이 가장 많았을 때는 2020년 1만850명이었고 현재는 9405명이다), 일정 기간 당비를 내며 당권을 행사하는 ‘당권자’ 수가 2019년 7215명에서 현재 4514명으로 크게 줄었다. 예산도, 열정도 바닥이 있다는 것을 배운 당원들이 많았다. 정치적 효능감을 느낄 수 없는 선거가 이어졌다.

녹색당이 자체적으로 만든 ‘21대 국회의원 선거 평가보고서’ ‘22대 지방선거 선거 평가 자료집’에는 이런 말들이 나온다. “운영상 한계로 정책 대변인실을 두지 않았으며 당내 갈등 및 선거연합 등 첨예한 현안에 대해 본부장단이 언론 대응함.” “지방선거의 특성상 지역 내 인지도가 중요한데, 꾸준히 지역 활동에 참여해온 후보가 많지 않음.” “생태라는 단어가 너무 오염되었고 도시 재생도 무엇이 재생인지 알 수 없다. 평화, 사랑처럼 아름다운 언어들만으로 되나, 고민이 든다.”

2022년 4월, 6·1 지방선거를 앞두고 녹색당 대표단이 ‘녹색당 기후철도’ 행사를 위해 제주를 찾았다. ⓒ연합뉴스

2018년과 2022년 지방선거에서 두 차례 안동시의원으로 출마한 허승규 녹색당 부대표는 녹색당의 ‘풀뿌리 민주주의’가 ‘뿔뿔이 민주주의’가 되지 않았는지 점검해야 한다고 말한다. “당내 자원이 너무 느슨하게 흩어져 있는 구조다. 녹색당의 문화이기도 한데 ‘중앙’과 ‘리더십’에 대한 거부감이 있다. 처음엔 당대표가 없었다. 대신 ‘공동운영위원장’이라는 이름의 직책이 있었다. 대의원도 전면 추첨제였다. ‘가장 보통의 민주주의’를 구현한다는 명분과 장점이 있지만 당직 활동에는 시간과 정보가 필요하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모여 올해 4월, 창당 11년이 지난 지금에 맞게 의사결정 구조를 보완하는 당헌 개정이 이루어졌다. 기동성 있는 당 운영과 실무 부담을 줄이기 위한 당무위원회 구성 변경, 부대표직 신설, 혼합형 대의원 제도 등이 도입됐다.

허 부대표는 보수적 성향이 강한 안동에서 시의원 선거를 두 번 치렀다. 첫 출마한 2018년, 득표율 16.54%를 기록하며 4위로 낙선했으나 곧바로 다음 선거를 준비했다. ‘버스 타기 좋은 안동’ 같은 범시민 활동을 하며 인지도를 쌓아갔다. 지역의 효도잔치에도 참석하고 동창회도 나가고 경로당도 찾았다. “효도잔치는 나 같은 사람도 심호흡하고 간다. 어렵다. 하지만 정치인이니까 감당하는 거다. 이런 것도 안 하면 정당이 아니라 동아리다. 기후위기로 지구가 망가져가고 있는데 더 욕심내고 과감해져야 한다. 그게 우리 정당의 소명이다.” 허승규 후보는 2022년 6·1 지방선거에서 18% 득표율을 올리며 3위로 낙선했다. 민주당 후보는 득표율 11.75%로 허승규 후보 득표율보다 낮았다.

“‘미래는 녹색’이라는 안일함을 거부하자”

한국 녹색당은 창당 이후 이제 10년 남짓한 시간이 흘렀다. 영국 녹색당은 20년, 독일 녹색당은 40년 걸려 실질적인 정치 세력화를 이뤘다. 조급하더라도 녹색당의 목표를 잃지 않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한재각 전 공동정책위원장은 ‘원내 진입 1석의 의미’를 되묻는다.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대중적 힘을 갖는데 정말 당장의 1석이 목표가 되어도 되나? 중장기 목표를 재설정하며 사회운동적 성격과 제도 권력 사이의 새로운 노선을 모색하지 않고 1석이면 모든 게 해결될 것처럼 생각하는 분위기는 오히려 선거 이후 허무함만 남길 수 있다.”

김혜미 부대표는 ‘1석’의 의미를 다르게 해석한다. “당을 알리는 캠페인보다 이제는 의원을 당선시키는 데 집중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녹색당 의원 한 명이 제도 권력을 쥐었을 때 지역사회를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 가능성을 보여줘야 한다. 신뢰를 심어주는 1석은 더 많은 의석을 모을 수 있다.”

변화에 대한 열망은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총선을 300여 일 앞둔 녹색당 전당대회에서 김순애 제주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은 무대에 올라 이렇게 말했다. “(같은 당에서 활동을 하며) 마음이 맞는다고 해도 항상 같은 마음일 수 없고, 그 사이사이 상처와 실패가 반복된다. 내 주변 사람들은 녹색당 활동을 하는 나에게 녹색당은 잘 버티기만 하면 언젠가 선택받는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미래는 녹색이 대세’라는 낭만적이고 막연한 생각 속에 갇혀서 현재 우리가 해야 할 적극적 행동과 실천을 하지 않는다면 절대 녹색 정치는 오지 않는다.”

제주는 녹색당 내에서도 지역 의제와 밀착해 가장 역동적으로 풀뿌리 운동을 하는 곳이다. 과거 제주 당원 중에는 “녹색당이 원내 진입하면 탈당하겠다”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 ‘반정당의 정당’으로서의 기치를 포기할 수 없다는 의미였다. 그런 제주에서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총선까지 앞으로 남은 300일. 사투의 시간이 남았다.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