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섭 대통령실 국정기획수석이 6월4일 비영리 민간단체 보조금 감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관섭 대통령실 국정기획수석이 6월4일 비영리 민간단체 보조금 감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도덕적 해이, 혈세 누수, 혈세 낭비….” 대통령실이 6월4일 발표한 ‘민간단체 보조금 감사 결과’에 등장하는 표현이다. 대통령실은 이날 최근 3년간 1만2000여 개 비영리 민간단체에 지급된 보조금 6조8000억원에 대한 일제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 가운데 총 1865건, 약 314억원이 부정 사용된 것으로 확인됐다. 금액 비율로 따지면 0.46%다.

314억원이 결코 작은 액수는 아니다. 비영리 민간단체가 정부·지자체 사업 보조금을 부정하게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는 공감대는 정치권과 언론, 시민사회 모두 동의하는 대원칙이다. 그러나 이날 대통령실의 발표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번 감사와 후속 조치에 정치적 노림수가 있지 않은지 의구심이 남는다. 발표 내용에서 해소되지 않는 궁금증도 많다. 대통령실과 정부가 지칭하는 ‘민간단체’란 어떤 범주를 의미하는 것인가, 대체 누가 얼마나 부정한 방법으로 나랏돈을 빼돌렸다는 말일까.

이번 감사는 1년 전부터 정부·여당이 추진해온 정치적 행보의 연장선으로 봐야 한다. 우선 6월13일, 국무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남긴 말부터 살펴보자. “(비영리 민간단체 보조금 감사 결과는) 납세자에 대한 사기 행위이고, 미래세대에 대한 착취다. 부정과 부패의 이권 카르텔은 반드시 부숴야 한다.” 여기서 말한 ‘이권 카르텔’은 국민의힘 입당 직후인 2021년 8월2일부터 본격적으로 규정되기 시작했다. 당시 윤 대통령은 초선 공부모임에 참석해 “이를테면 시민단체라든지, 공공사업에 발주라든지, 이런 것을 통해 지지층 집권 연장을 위해 물불 안 가리는 세력을 단단히 구축해놨다”라는 말을 남겼다.

‘이권 카르텔’과 시민단체를 연결 짓는 시도는 공약 사항으로도 이어졌다. 후보 시절이던 지난해 2월28일, 당시 논란이 된 ‘한 줄 공약’으로 ‘시민단체 불법이익 전액환수’를 발표했다. 다음 날인 3월1일에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정치권력은 시민단체를 세금으로 지원하고, 시민단체는 권력을 지지하는 부패 카르텔”이라는 말을 남겼다.

그런데 당시와 지금은 사용하는 용어가 다르다. 그때는 시민단체이고 지금은 민간단체다. 사정이 있다.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대통령직 인수위 시절부터 정권에 비판적인 시민단체를 겨냥했다. 처음에는 국세청을 동원할 생각이었다. 지난해 4월12일 인수위 브리핑에서 차승훈 부대변인은 “국세청이 시민단체의 회계 부정을 들여다보겠다고 보고했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국세청으로부터 받은 답변 자료에 따르면, 국세청은 ‘공익법인 중에서 시민단체만을 별도로 구분해 관리하고 있지 않다’고 답했다. 인수위에 보고했다는 ‘시민사회 때리기’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는 얘기다.

2022년 2월28일,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 시절 발표한 한 줄 공약. 시민단체를 직접 겨냥했다. ⓒ 윤석열 대통령 페이스북 캡처
2022년 3월1일 윤석열 당시 대선후보의 페이스북. 시민단체를 콕 집어 이권 카르텔이라 지칭한다. ⓒ윤석열 대통령 페이스북 캡처

이후 대통령이 사용하는 ‘용어’가 바뀐다. 지난해 12월27일 국무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노동조합의 회계 투명성을 강조하며 이런 말을 덧붙였다. “국가보조금으로 지원하는 민간단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국민의 혈세가 그들만의 이권 카르텔에 쓰인다면 국민 여러분께서 용납하지 않을 것.” ‘카르텔’이라는 말이 다시 등장했는데 이번에는 그 대상이 ‘민간단체’로 바뀌었다. 이 발언 직후 올해 1월부터 4월까지 29개 부처의 비영리 민간단체 보조금 사업 일제 감사가 이뤄졌다. 6월4일에 대통령실이 발표한 내용은 이 4개월 동안의 감사 결과다.

시민단체와 비영리 민간단체는 엄연히 구분되는 용어다. 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의미의 시민단체와 달리, 비영리 민간단체는 관련 법(비영리민간단체지원법)에 따라 일정 법적 요건을 만족하고 지자체나 부처에 등록된 단체를 뜻한다. 시민단체 중에는 독립성을 지키기 위해 정부의 사업 보조금 지원을 거부하는 곳도 있다. 반대로 비영리 민간단체 중에는 국제라이온스협회354-D(강남)지구, 탈북여성자립지원회, 서울시요트협회, 해병대전우회 지역연합회, 새마을운동 지역지회처럼 각종 협회, 사단법인, 봉사회 등도 포함되어 있다.

행정안전부 관리정보시스템(NPAS)에 따르면, 현재 등록 유지 중인 비영리단체는 전국 1만4699곳으로 집계된다. 이 가운데 1만2000여 곳을 각 부처 공무원을 동원해 '탈탈 털어 나온' 결과가 이번 부정 사용 감사 결과 발표다. 여기에는 지역아동센터를 위탁 운영하는 예산처럼 복지성 예산도 상당 부분 포함되어 있다.

그렇다면 적발된 부정·비리 1865건 가운데 얼마나 많은 단체가 정권에 비판적인 곳일까. 윤석열 대통령이 ‘카르텔’이라 지칭한 조건, 즉 특정한 정치적 입장을 주장하는 단체들은 전체 적발 건수 중에 얼마나 차지하고 있을까? 답은 ‘알 수 없다’이다. 대통령실도, 각 부처나 지자체도 이번 감사에서 부정이 적발된 단체 리스트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그저 대통령실이 선별한 예시(총 42건)만 가지고 정치적 해석이 뒤따를 뿐이다. 대통령실은 가장 대표적인 보조금 유용 사례로 한 통일운동 단체를 예시로 꼽으며 이 단체가 “묻혀진 민족의 영웅들을 발굴한다는 명목으로 6260만원을 받아 ‘윤석열 정권 취임 100일 국정 난맥 진단과 처방’ 같은 정치적 강의를 했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보다 더 황당한 사례가 있는지, 보수단체를 표방하는 비영리 민간단체의 비리·부정이 있는지는 현재로서 확인하기가 어렵다.

대통령이 엄포를 놓고, 정부가 감사를 벌이면, 여당이 정치적으로 전선을 확장한다. 국민의힘은 ‘시민단체 선진화 특별위원회(위원장 하태경 의원)’를 만들어 “갈등을 조장하고 부정하게 활동하는 시민단체를 솎아내는 일(6월13일 〈이데일리〉 인터뷰)”을 추진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구태여 민간단체라는 말을 쓰지 않고 정부에 비판적인 시민단체를 정조준한다. 정부가 비리·부정이 발생한 비영리 민간단체를 선별적으로 발표하고, 여권은 시민단체를 정치적으로 몰아붙이는 데 이를 근거로 삼는다.

서울시가 국민의힘에 단체명 구두 전달

일부 특정 정보는 여권만 접근이 가능한 경우도 있다. 하태경 의원은 6월9일 국회에서 사단법인 마을, 사단법인 서울사회적경제네트워크,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를 콕 집어 “권력유착형 시민단체 3대 카르텔”이라고 지칭했다. 서울시가 벌인 감사에서 부정이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이에 전장연은 6월13일 “전장연은 비영리 민간단체로도 등록되지 않은 임의단체다. 애초에 서울시 사업 보조금 공모를 신청할 자격 조건에도 해당되지 않는다”라며 하태경 의원을 경찰에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시사IN〉 확인 결과, 서울시 홈페이지 ‘감사계획 및 결과’ 게시판에도 전장연과 유관한 감사 내용을 발견하지 못했다.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6월9일 전장연에 대해 “권력유착형 시민단체 3대 카르텔”이라고 주장했다. 전장연은 하 의원의 말이 사실이 아니라며 경찰에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6월9일 전장연에 대해 “권력유착형 시민단체 3대 카르텔”이라고 주장했다. 전장연은 하 의원의 말이 사실이 아니라며 경찰에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하태경 의원이 주장한 단체 중 나머지 두 곳은 특정감사 결과보고서가 서울시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상태다. 그런데 공개된 자료로는 이 단체의 이름을 따로 알기가 어렵다. 특정 단체 이름을 모두 ‘사단법인 A, 사단법인 갑’과 같은 형태로 기술하고 있어서다. 6월15일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서울시가 6월9일 국민의힘에 제공한 감사 결과를 제출 거부했다. 서울시가 시민단체 탄압 목적으로 여당에게만 정보를 선택적으로 제공한다”라는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특정 단체명이나 단체별 관련 금액 등이 기재된 정보, 즉 하태경 의원이 발표한 정보를 팩트 체크할 근거를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장혜영 의원실 관계자는 “서울시에서는 하태경 의원의 단체명 언급에 대해 ‘구두로 (단체명을) 설명했고 자료로 제공하진 않았다’고 답하더라. 구두로 발표한 거라도 자료를 달라니 거부했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김동인 기자 다른기사 보기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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