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동하는 스마트폰 화면을 보고, 눈을 껌뻑였다. 이름과 소속, 취재 취지를 밝히고, 서면질의서를 보내고 싶다는 의사를 문자메시지로 보낸 직후였다. 서울남부지방검찰청 공보 담당 A 검사는 내게 이렇게 답장을 보내왔다.

“혹시 취재 목적이 검사 논문의 부실함, 문제점 등을 지적하는 취지이신가요? 제 입장에서 협조를 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나요.”

세금 수천만 원을 들여 써낸 논문을 언급하자, 오히려 ‘취재에 협조해야만 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하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동안 여러 공공기관의 공보 담당자와 소통을 해봤지만, 이런 태도는 처음이었다. 언론사 기자가 공보 담당 검사한테 서면질의서를 전달하는 상식적인 과정을 마치 몰상식한 일처럼 치부하는 느낌이 들었다.

“표절이 의심되는 논문”이라고 차분히 설명했다. A 검사는 이번엔 이렇게 되물었다.

“학위논문이 아닌데, (국외훈련 연구논문의) 표절 여부를 심사하는가요?”

협조를 ‘딜(deal)’하는 공보 검사와 소통이 잘 되기가 만무했다. 세금을 썼더라도, 표절을 했더라도 문제가 안 될 수 있다는 태도를 보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법 정의를 실현하는 검찰이지만 본인들의 문제에선 잘못을 느끼지 않을 수 있다는 것. 눈을 가리고, 귀를 막은 거대 권력과 정면으로 마주하는 기분이었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지난해 12월13일부터 ‘표절 검사의 공짜 유학’ 기획을 진행하고 있다. 국민 세금으로 ‘공짜 유학’을 다녀와서는 표절로 의심되는 연구논문을 작성한 검사들을 고발하는 기획이다.

법무부는 외국의 선진 법을 배우고자 검사들을 대상으로 ‘국외훈련’ 제도를 운영한다. 국외훈련 기간에는 세금으로 국외훈련비가 지원된다. 체재비(항공료, 의료보험료, 생활준비금 등 포함)와 학자금이 주된 지원금이다. 최근 7년간 검사 497명에게 지원된 세금은 303억원. 검사 한 명당 평균 6100만원을 지원받았다. 같은 기간 검사에게 급여와 직무성과금도 지급된다. 이때 국외훈련을 떠난 검사들의 성과를 유일하게 확인할 수 있는 결과물이 바로 ‘연구논문’이다.

셜록은 지난해 9월 국회의원 ‘표절 용역보고서’ 문제를 취재했을 때, 비슷한 제도를 알아보다 힌트를 얻었다. 공무원들은 세금을 지원받아 국외훈련을 다녀올 수 있었다. 그리고 결과물로 보고서를 제출해야 했다. 공무원인 검찰에도 적용되는 훈련이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 역시 검사 시절 1년6개월 동안 미국으로 국외훈련을 다녀왔다.

법무연수원은 심사를 거친 ‘국외훈련 검사 연구논문’ 원본을 자체 홈페이지에 공개한다. 셜록은 공개된 논문 중 2019년부터 2021년 사이 발행된 84건을 조사했다. 이 중에서 부정·부실이 의심되는 논문 다섯 건을 확인했다. 셜록은 표절 의심 논문을 쓴 검사들의 실명을 공개적으로 기사에서 밝히고, 그들이 쓴 연구논문과 국외훈련비를 일일이 분석했다(왼쪽 표 참조).

박○○ 검사가 쓴 연구논문의 표절률은 93%에 달했다. 표절로 의심되는 연구논문 5건 중 표절률 1위다. 김○○ 검사는 같은 대학으로 국외훈련을 다녀온 선배 검사의 논문을 베낀 걸로 보였다. 연구논문 총 61쪽 중 26쪽에서 표절 정황이 발견됐다. 진○○ 전 검사는 세금을 들여 다녀온 국외훈련 ‘스펙’을 이직한 로펌 홈페이지에 홍보해놓았다. 그의 프로필 ‘주요 저서 및 논문’ 난에는 표절로 의심되는 연구논문이 쓰여 있다. 최○○ 전 검사는 국외훈련 복귀 이후 약 1년 만에 대형 로펌 변호사로 이직했다. 최 전 검사가 표절한 것으로 보이는 저작물은 본인의 석사학위 논문이다. 표절률은 86%에 이른다.

부정까지는 아니지만, ‘부실 논문’ 비판을 피할 수 없는 사례도 있다. 오○○ 검사는 과거 학술대회에서 자신이 작성한 발표문을 연구논문에 ‘재활용’했다. 하지만 연구논문 그 어디에도 출처를 밝히지 않았다. 연구 윤리를 엄격하게 적용하면, 이 또한 ‘자기표절’에 해당한다.

셜록이 직접 확인한 부정·부실 논문 다섯 건에 사용된 혈세만 총 1억9040만원에 달한다. 기초생활수급자, 독거노인 등 취약계층에게 연탄 쿠폰 약 9만5200장을 지원할 수 있는 금액이다(산업통상자원부 지원 기준 연탄 쿠폰 2000원).

환수된 검사 국외훈련비는 0원

표절 논문에 대한 훈련비 ‘환수’ 규정은 이미 존재한다. 공무원 인재개발법 시행령 제39조(국외훈련비의 지급)에 따르면, 다른 연구보고서와 논문 등을 표절한 것으로 밝혀질 경우 지급받은 훈련비의 100분의 20을 환수할 수 있다. 하지만 지난 12년 동안 표절 논문을 썼다는 이유로 환수된 검사 국외훈련비는 ‘0원’이다.

이렇게 아무도 모르게 어물쩍 넘어갈 뻔한 표절 검사들의 행태는 셜록의 취재로 세상에 드러났다. 동시에 작은 변화들도 시작됐다. ‘혈세의 주인’인 국민들이 가장 먼저 반응했다. 포털사이트에서 셜록 기사를 찾아볼 수 없어서인지, 인터넷 커뮤니티와 소셜미디어 중심으로 반응이 나왔다. 특히 셜록 공식 ‘페이스북’ 계정에 올린 게시물에는 기사를 응원하는 댓글이 이어졌다. 더 이상 혼자만의 외로운 싸움이 아니었다.

표절 의혹이 있는 검사들의 국외훈련 논문에 대해 법무부와 법무연수원, 대검찰청은 책임을 미루고 있다.ⓒ시사IN 신선영

한 누리꾼은 표절 검사들의 실명을 밝힌 이 보도를 응원하며 아래와 같은 댓글을 남기기도 했다. “보도 자체도 응원하지만, 실명을 공개하는 방식도 강하게 지지합니다. 이 사건의 맥락에서 검사 개개인은 마땅히 이름이 공개되어야 할 공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왜 종종 언론이 이런 보도에서 ‘헌재 파견 중인 A 검사’라고만 보도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셜록이 이 문제를 보도한 지 한 달 가까이 됐지만, 그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 표절 검사들 모두 어떤 징계도 받지 않았다. 국외훈련비도 환수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들 중에는 현재 검사 옷을 벗고, 대형 로펌으로 이직한 사람도 있다.

책임 기관들도 문제를 외면하고 있다. 국외훈련 담당 기관인 법무부와 법무연수원은 변명을, 감찰 심의 권한이 있는 대검찰청은 방치를, 검사 소속 검찰청은 모르쇠를 택했다. 서로에게 책임을 미루는 ‘은폐의 삼각 무한루프’만 반복되고 있다.

솔루션 저널리즘을 지향하는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이번에도 가만히 있지 않고자 한다. 국민권익위원회에 표절 검사들을 공직자 부패행위 대상으로 신고할 것이다. 뜻을 같이하는 시민단체와 함께 검사 국외훈련 제도에 대한 공익감사 청구를 감사원에 제기할지도 검토할 예정이다.

※더 자세한 내용은 진실탐사그룹 ‘셜록(neosherlock.com/archives/project/)’의 ‘표절 검사의 공짜 유학’ 연재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기자명 김보경 (진실탐사그룹 ‘셜록’ 기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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