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3월 폐교된 서울시 강서구 가양동 염강초등학교의 현재 모습. ⓒ시사IN 박미소
2020년 3월 폐교된 서울시 강서구 가양동 염강초등학교의 현재 모습. ⓒ시사IN 박미소

운동장에 잡풀이 자라나고 있었다. 놀이기구에 녹이 슬었고 교문에는 ‘폐쇄 안내문’이 붙었다. 근처 건물에 들어섰던 문구점은 낡은 간판만 남았다. 어린이 놀이터나 농구장이었던 공간은 지금 어르신 쉼터나 텃밭으로 쓰이고 있다. 폐교된 초등학교와 인근 지역의 이런 모습은 인구 소멸 시대를 사는 한국인에게 그리 생경한 풍경은 아니다. 이 학교가 서울 도심 속에 위치해 있다는 점만 빼면 말이다.

폐교된 서울염강초 너머로 한강과 가양대교가 보인다. ⓒ시사IN 박미소
폐교된 서울염강초 너머로 한강과 가양대교가 보인다. ⓒ시사IN 박미소

서울 강서구 가양3동 서울염강초등학교. 위로는 올림픽대로가 놓여 있고 아래로는 서울지하철 9호선이 지나가며 주변에 아파트 단지와 고층 빌딩이 서 있는 이 학교는 2020년 3월1일 폐교되었다. 폐교 당시 학급 수 12개, 전교생 수 157명이었다.

주변 다른 학교들도 지금 사정이 비슷하다. 바로 옆 서울가양초는 전교생 수가 2008년 855명에서 2023년 207명으로 줄었다. 가양동 공진중학교는 졸업생 47명을 마지막으로 염강초와 같은 시기 함께 폐교되었다. 아랫동네 등촌동 학교들도 학생 수가 급감했다. 등현초(1171명→532명), 등원초(734명→160명), 등명초(394명→105명) 등이 모두 2008~2023년 사이 학생 수 그래프가 내리막길을 그렸다(〈그림 1〉 참조).

〈그림 1〉 2008~2023년 서울시 강서구 일대 초등학교 학생 수의 증가(붉은색)와 감소(푸른색)를 지도 위에 나타냈다. 가양동·등촌동 (오른쪽)과 마곡동(왼쪽)의 대비가 선명하다. ⓒ데이터:교육통계서비스(KESS)·학교 알리미/ 지도 제작:VWL
〈그림 1〉 2008~2023년 서울시 강서구 일대 초등학교 학생 수의 증가(붉은색)와 감소(푸른색)를 지도 위에 나타냈다. 가양동·등촌동 (오른쪽)과 마곡동(왼쪽)의 대비가 선명하다. ⓒ데이터:교육통계서비스(KESS)·학교 알리미/ 지도 제작:VWL

학생 수 감소는 전국 모든 학교에서 나타나는 공통 현상 아닌가? 그렇지 않다. 반대인 곳도 많다. 폐교와 학생 수 감소가 이어지는 가양동·등촌동과 서편으로 바로 닿은 마곡동의 공진초등학교는 학생이 너무 많아서 학교가 미어터질 지경이다. 올해 초 기준 전교생 1937명으로, 강남구 도곡동의 대도초등학교(1986명) 다음으로 서울에서 학생 수가 많은 초등학교다. 공진초는 마곡지구가 조성되던 2014년 서울 가양동에서 마곡동으로 옮겨온 ‘이전 재배치’ 초등학교다. 원래 가양동 공진중학교와 붙어 있었다. 공진초는 이전하고 공진중은 폐교했다.

염강초가 폐교되던 시기 함께 문을 닫은 서울시 가양동 공진중학교의 현재 모습. 옆에 붙어 있던 공진초는 마곡동으로 이전했다. ⓒ시사IN 박미소
염강초가 폐교되던 시기 함께 문을 닫은 서울시 가양동 공진중학교의 현재 모습. 옆에 붙어 있던 공진초는 마곡동으로 이전했다. ⓒ시사IN 박미소

‘평균의 함정’ 속 가려진 학생 수 불균형

공진초는 신도시 유입 학생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옮겨왔지만 수요는 예측보다 더 폭발했다. 해마다 전교생이 100~200명씩 늘어 올해 초 1937명에 이르렀다. 학기 초마다 치열한 방과후·돌봄 추첨 경쟁이 벌어졌고 급식실이 좁아 급식 시간 3부제를 실시했다. 교실이 부족해 일부 학급은 운동장 한쪽에 설치해둔 컨테이너 교실동에서 수업을 받는다. 그것도 모자라 지금 운동장 공간 나머지를 털어 학교 증축 공사 중이다. 매일 2000명 가까운 학생들이 증축 공사장을 피해 좁은 후문과 틈새 길로 학년별 분산 통학을 하고 있다.

서울 마곡동 공진초등학교의 하굣길 모습. 공진초의 운동장 반쪽은 임시 컨테이너 교실, 나머지 반쪽은 학교 증축 공사장이다. ⓒ시사IN 박미소
서울 마곡동 공진초등학교의 하굣길 모습. 공진초의 운동장 반쪽은 임시 컨테이너 교실, 나머지 반쪽은 학교 증축 공사장이다. ⓒ시사IN 박미소

염강초와 공진초는 둘 다 서울시 강서구에 위치해 있다. 도시 학교는 붐비고 시골 학교는 비어간다는 건 옛말이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이라서 생기는 차이도 아니다. 한 지역 같은 동네 안에서도 과소와 과밀이 공존한다. 어떤 학교는 학생이 너무 빠져나가서 어려움을 겪는데, 바로 옆 다른 학교는 학생 수가 너무 많아서 문제가 발생한다. ‘폐교 옆 콩나물시루’라는 역설이다.

이는 전국적 현상이다. 서울 서대문구·송파구·금천구, 경기도 고양시·파주시·김포시·부천시, 충남 천안시·아산시, 부산 강서구·사하구·기장군, 경남 김해시, 전남 순천시·광양시·나주시 등 서울·비서울, 수도권·비수도권을 가리지 않고 지역 내 학생 수 쏠림 현상이 나타난다(〈그림 2~6〉 참조). 신도시, 아니 대(중소)규모 아파트 단지 하나만 생겨도 그곳 학교가 인근 구도심 학교의 학생 수를 죄다 빨아 당긴다.

〈그림 2〉 서울 서대문구 북가좌동·남가좌동 일대 초등학교 학생 수 증감 추이(2008~ 2023년). 전체적으로 내리막길인 가운데 신축 아파트 대단지 내 학교만 학생 수가 증가했다. ⓒ데이터:교육통계서비스(KESS)/ 지도 제작:VWL
〈그림 2〉 서울 서대문구 북가좌동·남가좌동 일대 초등학교 학생 수 증감 추이(2008~ 2023년). 전체적으로 내리막길인 가운데 신축 아파트 대단지 내 학교만 학생 수가 증가했다. ⓒ데이터:교육통계서비스(KESS)/ 지도 제작:VWL
〈그림 3〉 경기도 안산시의 구도심과 신도심 초등학교 학생 수 변화(2008~ 2023년)가 대비된다. ⓒ데이터:교육통계서비스(KESS)·학교 알리미/ 지도 제작:VWL
〈그림 3〉 경기도 안산시의 구도심과 신도심 초등학교 학생 수 변화(2008~ 2023년)가 대비된다. ⓒ데이터:교육통계서비스(KESS)·학교 알리미/ 지도 제작:VWL
〈그림 4〉 충남 천안시 초등학교 학생 수 증감 지도(2008~ 2023년). 서쪽 불당동에 위치한 천안아름초는 전국에서 전교생 수가 가장 많은 초등학교인 반면, 구도심의 학교들은 학생 수가 쭉쭉 빠져나가고 있다. ⓒ데이터:교육통계서비스(KESS)·학교 알리미/ 지도 제작:VWL
〈그림 5〉 부산 강서구의 명지신도시(왼쪽)와 오른쪽 사하구 구도심 학생 수 증감(2008~ 2023년)의 대비가 선명하다. ⓒ데이터:교육통계서비스(KESS)·학교 알리미/ 지도 제작:VWL
〈그림 5〉 부산 강서구의 명지신도시(왼쪽)와 오른쪽 사하구 구도심 학생 수 증감(2008~ 2023년)의 대비가 선명하다. ⓒ데이터:교육통계서비스(KESS)·학교 알리미/ 지도 제작:VWL
〈그림 6〉 전남 순천시 역시 신도심과 구도심 사이 학생 수 변화(2008~ 2023년)의 편차가 심하다. ⓒ데이터:교육통계서비스(KESS)·학교 알리미/ 지도 제작:VWL
〈그림 6〉 전남 순천시 역시 신도심과 구도심 사이 학생 수 변화(2008~ 2023년)의 편차가 심하다. ⓒ데이터:교육통계서비스(KESS)·학교 알리미/ 지도 제작:VWL

평균의 함정에 빠지면 이 현상이 잘 보이지 않는다. 전국 초중고 학생 수는 2008년 761만7796명에서 지난해 527만5054명(-234만2742명)으로 급감했다. ‘학령인구 감소’는 모두가 잘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 마이너스는 공평하게 분산 적용되지 않는다. 지역마다, 학교마다 다르다. ‘-234만2742’는 모든 학교의 일괄적 ‘감소’가 아닌 개별 학교들의 들쭉날쭉한 ‘증감’이 모여 만들어낸 수치다. 2008~2023년 사이 학생 수가 증가한 학교와 감소한 학교를 지도 위에 각각 붉은색과 푸른색 점으로 나타냈을 때, 푸른색(감소) 못지않게 붉은색(증가)도 상당히 많이 보인다(〈그림 7〉 참조).

〈그림 7〉 2008~2023년 개별 초등학교의 학생 수 증가(붉은색)와 감소(푸른색)를 전국 지도 위에 표시했다. 푸른색(감소) 못지않게 붉은색(증가)도 상당히 많이 보인다(회색은 폐교 및 휴교). ⓒ데이터:교육통계서비스(KESS)·학교 알리미/ 지도 제작:VWL

학생 수가 증가한 곳 중 상당수는 과밀·과대 학교가 되었고, 감소한 곳은 대부분 과소 학교가 되거나 폐교되었다. 과밀·과소 둘 다 전국에 두루 퍼져 있다. 지난해 기준 전교생 수 1000명 이상인 과대 초등학교가 전국 599개였다. 특별·광역시(213개교)와 시(303개교) 지역에 많긴 하지만 읍(63개교)과 면(20개교) 지역에도 있다. 전교생 60명 이하의 과소 학교는 전국 1503개였다. 읍(142개교)·면(940개교), 특수(도서)지역(332개교)에 단연 많지만 시(55개교) 지역과 특별·광역시(34개교)에도 적지 않다.

학생 수는 쪼그라든다. 그런데 들쭉날쭉 불균형하게 쪼그라들고 있다. 대도시든 중소도시든 농어촌이든 한 지역 안에서도 쏠리는 학교만 쏠리고 빠지는 학교만 빠진다. 이런 지역 내 학생 수 양극화 속에서 양쪽 학생들 모두 교육의 질 하락을 경험하고 있다.

“급식실도 부족하고 체육 수업도 못한다”

5월10일 국회에서 열린 ‘경기도 과밀학급 실태와 해결 방안’ 토론회장에서는 과밀·과대 학교 학생들이 겪는 어려움들이 구체적으로 성토되었다. 전체 77학급, 2110명이 재학하는 다산한강초(경기 남양주시) 이상호 교장은 “생활지도나 학생 맞춤형 개별지도, 학생·학부모 상담, 공간이 필요한 모둠 활동 같은 수업에 모두 굉장한 어려움이 있다. 영양 교사 한 명이 2000명의 급식을 책임지고 보건교사는 그나마 2명이 배치되어도 한 사람이 1000명을 감당한다. 너무 힘들어서 교사들도 신규만 온다. 교장 교감들도 안 오려 한다”라고 말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한 교지 안에서 통합 운영되는 경기도 김포시 향산초중학교는 최근 학급당 과밀을 막으려 학급 수를 늘렸지만 대신 특별활동실과 교무실 등이 축소되었다. 식당과 체육관 공간도 턱없이 모자라 학생들이 편하게 밥을 먹지도, 체육 수업을 받지도 못한다. 조영주 향산초 운영위원장은 “체육 수업을 교실에서 하거나 주차장 옆 현관에서 한다. 급식도 3회전을 돌려왔는데, 노동강도가 너무 세니 급식실 종사자들이 집단 퇴사를 해서 파행을 겪었다. 모든 급식 종사자들이 회피하는 학교라고 하더라”고 말했다.

학교의 과밀·과대는 학생들의 진로·진학 문제, 사교육 과잉과도 연결된다. 경기도 파주 운정고등학교의 피영로 교장은 “학생 수가 급증한 후 학업중단 중도이탈 수가 다른 해보다 많이 늘었다. 또한 인문계 고등학교에서는 평가가 굉장히 중요한데 과밀·과대 학교다 보니 발달이나 성취 기준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고 단순 점수로 서열화하는 문제가 나타난다. 생기부 기재도 부실해질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해 대학 진학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불만을 학부모들이 많이 제기한다. 학교가 이런 역할을 못하다 보니 학원이나 컨설팅 업체로 빠져나가는 학생 수가 점점 늘어서 사교육 의존도가 커지는 것도 또 다른 문제점이다”라고 말했다.

충남 천안시도 학교 학생 수 과밀·과대 문제가 심각한 지역 중 한 곳이다. 천안시 불당동에 위치한 천안아름초는 올해 전교생 2278명으로, 전국 초등학교 중 1위를 기록했다. 인근 천안환서초, 천안불무초도 2000명을 넘는 과대 학교다. 3월20일 충남도의회는 ‘과밀학교 교육여건 개선을 위한 연구모임’을 발족했다. 연구모임 대표를 맡은 구형서 충남도의원은 “많은 사람들이 과밀·과대 학교에 대해 어려움은 있겠지만 불행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여러 교육 기회와 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시도 교육청에서 AI 소프트웨어 교육 같은 특별 사업을 만들어도 과밀·과대 학교에서는 유휴 공간이 없고 교직원들이 기존 업무에 치여서 신청 자체를 하지 못한다. 급식실이 부족해 매일 점심을 오후 2시가 다 되어서야 먹는 학년도 있다”라고 말했다.

2021년 11월23일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과밀학급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학부모 기자회견이 열렸다. ⓒ연합뉴스
2021년 11월23일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과밀학급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학부모 기자회견이 열렸다. ⓒ연합뉴스

그런가 하면 과밀·과대 학교 바로 옆에는 과소·폐교 위기 학교들도 함께 놓여 있다. 전교생 2278명의 천안아름초와 같은 천안 서북구에 위치한 천안와촌초는 전교생 수가 244명이다. 올해 신입생 수가 천안아름초는 333명, 천안와촌초는 33명이다. 바로 옆 천안중앙초는 학생 수가 전체 55명이다. 올해 1학년에 4명이 입학했다. ‘과밀’ 바로 옆에 공존하는 ‘소멸’의 모습이다. 축소되고 사라지는 구도심을 떠나 소멸 위험이 없(어 보이)는 안온하고 (아직까지는) 활기찬 ‘학군지’로 모두가 옮겨가는 것이다. 과밀지가 좋아서라기보다 소멸지가 두려워서 쫓기듯 쏠려가는 것에 가깝다.

천안와촌초·중앙초 같은 ‘신도심 옆 구(원)도심’ 학교의 쇠퇴는 최근 들어 전국적으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권순형 한국교육개발원 교육정책네트워크센터 연구위원은 ‘우리나라 소규모 학교 특성 변화와 추이 분석(2022. 10)’에서 소규모 학교의 유형을 크게 ①도심공동화로 소규모화가 진행된 ‘구(원)도심 소규모 학교’ ②도서 지역이나 산간벽지 등에 위치한 ‘고립형 소규모 학교’ ③농어촌의 읍면 지역에 위치한 ‘농어촌형 소규모 학교'로 나누고 2012~2020년 사이 학생 수 증감 추이를 살폈다. ②유형과 ③유형은 비교적 완만한 학생 수 감소 추이를 보인 반면 ①유형은 41.53%라는 급격한 감소율을 나타냈다. 특히 최근으로 올수록 그래프 기울기가 더 커졌다. 도서·산간 지역, 농어촌에서 시작된 학생 소멸 현상이 이제는 도시 중심부에서 가속화되는 것이다.

학교 내 밀도가 낮으니 학생들은 행복하지 않을까? 학생 수가 적으면 적은 대로 또 문제가 발생한다. 경기 지역 한 원도심 내 초등학교에 다니는 수림이(가명·11)는 요즘 학교 친구들이 자꾸 전학을 가서 마음이 허전하다. 대부분 멀리는 아니고 옆 동네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선 신규 학교로 옮겨간다고 들었다. 학교 친구들이 적어지니 쉬는 시간 단체 놀이를 하기도 힘들어졌고 방과후학교 개설 과목 수도 저학년보다 확 줄어들었다. “이사 갈 형편이 안 되는 애들만 남는 것 같은” 기분에 상대적 박탈감도 느낀다.

작은 학교라고 교육예산이 적게 드는 것도 아니다. 학생 수가 아무리 적어도 모든 학생이 교육 기본권을 지니기 때문에 그들에게 필요한 운동장(체육관), 급식실, 보건실, 도서관, 돌봄교실, 특별활동실과 그 공간을 운영할 최소한의 인력이 필요하다. 학생 수가 많든 적든 건물과 기자재도 비슷하게 낡아가니 주기적으로 개보수하고 교체해야 한다. 소규모 학교는 학교에 필요한 사업 입찰 공모를 낼 때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부산 지역 학교 행정실 공무원은 “예를 들어 급식 계약을 맺을 때도 큰 학교는 금액이 크니 입찰 들어오는 업체가 많지만 작은 학교는 사업 금액이 너무 적어서 신청하는 곳이 없다. 결국 다른 선택지 없이 같은 지역 큰 학교가 계약하면 얹혀서 같이 계약하는 방식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라고 말했다.

학령인구 소멸 시대, 학교 ‘다운사이징’이 시대의 과제로 언급되는 일이 잦다. 하지만 한 지역 안에서 학교별로 학생 수 규모가 양극화되는 현재의 문제는 단순하고 일괄적인 축소 정책으로 대응될 만한 것이 아니다. 지역 교육청들마다 통폐합·과소 학교 문제와 과밀·과대 학교 문제를 동시에 다뤄야 하는 고난이도 복합 방정식을 앞에 두고 있다. 각 교육청은 모듈러 교실을 짓고 통학구역을 재배치하며 도심형 분교 같은 새로운 학교 모델을 만드는 등 궁여지책을 내고 있다.

하지만 한쪽의 문제를 해결할라치면 다른 쪽에서 부작용이 튀어나온다. 인기가 많은 학교의 과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학교를 증축하고 신설하면 인기 없는 학교들엔 학생들이 더 빠진다. 원도심 학교 폐교를 막고 신도심 학생 수요를 흡수하고자 원도심 학교를 신도심으로 이전 재배치하는 방법도 자주 쓰지만, 이러면 구도심의 지역 소멸이 가속화한다. ‘안 옮기면 학교 소멸, 옮기면 지역 소멸’의 딜레마에 놓인다. 이전하는 학교를 따라 이사 가기 힘든 원도심의 저소득·조손·다문화 가정 학생들에게는 사실상 학교가 폐교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이 아이들의 교육 기본권을 내버려둘 순 없는 노릇이다. 이렇게 자꾸 지역 내 과대-과소 학교 학생들 간 이해관계가 서로 부딪치는 상황이 벌어진다.

2019년 12월31일, 폐교를 앞둔 강원도 한 초등학교의 마지막 졸업생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2019년 12월31일, 폐교를 앞둔 강원도 한 초등학교의 마지막 졸업생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학령인구 줄어드니 교육예산도 줄인다?

이런 ‘제로섬’ 이해상충이 벌어지는 데에는 초중등 교육 투자에 인색한 중앙정부의 기조도 한몫을 한다. “전체 학생 수가 줄기 때문에” 교사 정원도 늘릴 수 없고, 학교도 더 이상 신축할 수 없으며, 정 하나 짓고 싶으면 학생 수 적은 학교 하나를 없애거나 옮기면 된다는 교육부·행정안전부·기획재정부의 ‘평균의 논리’ 앞에서 각 지역 교육청과 학교들은 운신의 폭이 좁다.

특히 윤석열 정부 들어 가장 ‘아까운 돈’ 취급을 받는 게 지방교육재정교부금(교육교부금)이다. 교육교부금은 내국세의 일정 비율을 따로 떼어 중앙정부에서 시도 교육청에 내려보내는 돈이다. 2020~2021년 세금이 많이 걷힌 시기 교부금도 많아지자 정부·여당은 시도 교육청이 너무 방만하게 교육예산을 쓴다며, 유·초·중·고 학령인구가 줄어드는 만큼 교부금도 줄이거나 다른 부문에 쓸 수 있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편하자고 계속 주장하고 있다(〈시사IN〉 제774호 ‘유·초·중·고 교육비 대학에 나눠 쓰자고?’ 기사 참조). 이 방향대로 지역에 배분되는 교육재정이 ‘긴축’되면 지금 과밀·과대 학교와 과소·통폐합 학교 학생들이 겪는 어려움이 해결될 길은 더욱 요원해진다.

이선호 한국교육개발원 선임연구위원은 “교육재정을 논할 때 가장 큰 오류가 평균으로 회귀해서 이야기한다는 점이다. 한 지역 안에서도 과밀과 과소가 공존하는 상황에서 단순히 전체 학생 수 감소를 교육재정 긴축으로 연결하면 안 된다. 각각의 학생들이 어떤 지원이 얼마나 필요한지를 미래 투자 관점에서 살펴야 한다”라고 말했다.

폐교된 서울 염강초 교문 앞에 붙은 폐쇄 안내문. 머지않아 도심 속 다른 학교들도 비슷한 운명을 걸을 것이다. ⓒ시사IN 박미소
폐교된 서울 염강초 교문 앞에 붙은 폐쇄 안내문. 머지않아 도심 속 다른 학교들도 비슷한 운명을 걸을 것이다. ⓒ시사IN 박미소

‘나쁜 의미에서’ 지금의 문제 중 어떤 것들은 해결이 될 것이다. 한 지역 교육청에서 학생 배치 업무를 맡고 있는 관계자는 “지금 과밀·과대 문제가 심각해 학교 신규 개설 민원이 많이 들어오는 지역들도 3~4년 뒤를 추계해보면 학령인구가 급감해 과밀·과대 문제가 저절로 해결되는 곳들이 많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저출생 흐름에 갑자기 반전이 일어나지 않는 한 현재 미어터지는 과밀·과대 학교들 상당수도 언젠가는 학생 수 꼭짓점을 찍고 내려오는 날이 올 것이다. 한국교육개발원 추산에 따르면, 올해 약 258만명인 초등학생 수는 2029년 약 171만명으로 약 34% 감소할 예정이다. 지역별로 ‘메가’ 학교 한 개씩만 살아남고 전국 대부분의 학교가 기사 서두에서 묘사한 염강초의 풍경을 닮아가는 상상도 지금의 인구통계상 무리가 아니다.

어차피 그렇게 될 것이니 지금 당장의 문제 해결은 포기해야 할까? 현재 봉착한 과밀·과대·과소·폐교 사이 복잡한 고차 함수 문제는 조만간 저절로 사라질 테니 지금 당장 괜한 곳에 힘과 돈을 쓸 필요가 없는 것일까? 다가올 재앙에 대비해 현재의 지출을 줄이는 방향이, 교육의 미래에도 맞는 전략일까? 인구 소멸 시대에 떠오르는 또 하나의 잿빛 질문이다.

※ 각 연도별·학교별 학생 수는 교육통계서비스(KESS)와 학교알리미에 공개된 데이터를 사용했으며, 도시 데이터 분석·시각화 전문업체 브이더블유엘(VWL)의 김승범 소장이 학생 수 증감 분석과 시각화 지도 제작 등에 도움을 주었습니다. student.sisain.co.kr에 접속하면 전국 개별 초등학교들의 학생 수 증감 현황을 인터랙티브 지도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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