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 엘니뇨는 온다. 한국 기상청뿐만 아니라 세계기상기구(WMO), 유럽중기예보센터(ECMWF) 등 세계 기상관측기구에서 내놓은 ‘기정사실’이다.

관건은 강도다. 강릉이 35.5℃까지 치솟았던 5월 폭염은 ‘슈퍼 엘니뇨’가 올 거라는 추측을 키웠다. 전문가들은 5월 폭염과 엘니뇨를 연관시켜 분석하는 것은 ‘틀린’ 진단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도 올해가 지구 온도 상승을 부채질할 엘니뇨가 시작되는 해라는 사실에는 동의했다.

세계기상기구(WMO)는 기후변화와 엘니뇨의 영향으로 지구 온도가 ‘미지의 영역’으로 넘어갈 것이라고 발표했다. ⓒ시사IN 포토
세계기상기구(WMO)는 기후변화와 엘니뇨의 영향으로 지구 온도가 ‘미지의 영역’으로 넘어갈 것이라고 발표했다. ⓒ시사IN 포토

먼저 엘니뇨와 라니냐가 무엇인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지구 자전으로 인해 적도 부근 태평양에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무역풍이 분다. 이 무역풍 때문에 일반적으로 동태평양 해수면은 서태평양보다 온도가 낮다. 태양에 더 많이 노출되어 해수면 온도가 높은 동태평양 해수가 무역풍 때문에 서쪽으로 움직이면 바다 밑의 차가운 물이 동태평양의 빈자리를 채우기 때문이다. 그런데 무역풍 역시 자연현상인 만큼 주기적으로 바람의 강도가 세지거나 약해지는 변화가 생긴다. 무역풍이 약해지면 동태평양 표면의 따뜻한 바닷물이 평소만큼 서쪽으로 이동하지 않는데, 그 결과 동태평양의 해수 온도가 뜨거워지는 ‘엘니뇨(어린 소년)’ 현상이 생긴다.

엘니뇨는 페루의 어부들이 붙인 이름이다. 2~7년 주기로 크리스마스 전후에 해수 온도가 올라가 물고기가 잘 잡히지 않자 어부들은 그 핑계로 바다에 나가지 않고 크리스마스를 가족과 보냈다. 그래서 이 시기를 ‘어린 소년(아기 예수)’이라고 불렀다. 반대로 무역풍이 강해져 동태평양 해수 온도가 낮아지는 현상은 ‘어린 소녀’라는 뜻의 '라니냐'라고 이름 붙였다. 일반적으로 ‘엘니뇨 감시구역’의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0.5℃ 이상 높은(낮은) 현상이 5개월 이상 지속될 때 그 첫 달을 엘니뇨(라니냐)의 시작으로 본다. 동태평양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1.5℃ 이상 높아질 때는 ‘슈퍼 엘니뇨’라고 부른다(〈그림〉 참조).

엘니뇨와 라니냐 자체는 이상기후가 아닌 지구 열순환에 의한 자연적 현상이다. 하지만 기후위기가 가속화됨에 따라 발생 주기와 강수·기온 패턴이 달라지고 있다. 2020년 발생해 3년간 지속되다 올해 3월에 사라진 라니냐는 21세기 첫 ‘트리플딥’ 라니냐다. 통상 엘니뇨와 라니냐는 1년간 지속되다 사라지지만, 트리플딥 라니냐는 이례적으로 오래 지속되며 동아프리카와 남미에 기록적 가뭄과 파키스탄·오스트레일리아의 홍수, 미국 산불 등을 일으켰다.

그러나 기온 상승이라는 관점에서만 보면, 3년간 이어진 라니냐는 오히려 다행이었다. 라니냐는 동태평양 해수면 온도를 낮춰 기온 상승을 억제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라니냐가 이어진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2015년부터 2022년까지 지구 역사상 가장 따뜻한 8년을 보냈다는 점이다. 이런 추세 가운데 올해, ‘역대급 고온’이라는 도미노 효과를 일으킬 엘니뇨가 시작된다.

WMO는 지난 5월17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몇 달 안에 발생할 엘니뇨는 인간이 유발한 기후변화와 결합돼 지구 온도를 미지의 영역으로 밀어 넣을 것”이라며 “향후 5년 중 적어도 1년, 혹은 5년 전체가 인류 역사상 가장 뜨거운 해로 기록될 확률이 98%다”라고 밝혔다. 일부 전문가들은 올여름, 엘니뇨가 비정상적으로 발달하는 ‘슈퍼 엘니뇨’가 올 수 있다고 경고한다. ‘미지의 영역’으로 들어가고 있는 올해 여름, 한반도 기후에는 어떤 변화가 있을까.

2014년 봄, 강력한 엘니뇨를 예측했지만

한국에서는 통상 엘니뇨가 올 경우 비가 많이 내리고, 남부 지방을 중심으로 기온이 평년보다 낮아진다. 반면 슈퍼 엘니뇨가 올 경우 비가 적게 내리고, 중부 지방을 중심으로 기온이 평년보다 높아진다.

그러나 우진규 기상청 통보관은 엘니뇨가 발생한다는 한 가지 사실이 우리나라의 여름 기후를 좌우하지는 않는다며 “한국의 북서쪽에는 아시아 대륙이 있고, 남동쪽에는 태평양이 있다. 땅과 물을 끼고 있는 위치라 기압계에 영향을 주는 요소가 많다”라고 말했다. 실제 기상청은 기후를 관측할 때 다양한 요인을 함께 확인한다. 이를 ‘기후감시요소’라 부른다. 북쪽 찬 공기의 강약 주기(북극 진동)부터 건조한 공기의 강도를 결정하는 티베트의 눈덮임 면적, 동남아시아 인근 서태평양의 해수 온도와 강수량 등이다.

우 통보관은 “엘니뇨는 동태평양 적도 부근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직접 영향을 받는 국가들은 아메리카 대륙 서안에 위치한 콜롬비아, 페루, 칠레, 에콰도르 같은 나라들”이라며 한국은 이들 국가만큼 엘니뇨의 직접적 영향은 받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일반적인 엘니뇨가 아니라 ‘슈퍼 엘니뇨’가 발생한다면 어떨까. 인공지능을 활용한 엘니뇨 예측 모델을 개발한 함유근 전남대학교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는 올여름 슈퍼 엘니뇨가 올 가능성이 높다고 예측했다. 함 교수팀의 엘니뇨 예측 모델은 2019년 과학 전문 학술지 〈네이처〉에 실렸다. 해당 모델은 딥러닝 기술을 통해 과거의 해수면 패턴을 인공지능이 학습하도록 한 뒤 현재의 해수면 패턴과 비교하며 엘니뇨 발생 가능성을 예측하는 방식이다. 올해 해수 조건으로 인공지능 예측을 해본 결과, 동태평양 해수면 온도가 평년에 비해 무려 2℃가량 오르는 슈퍼 엘니뇨가 올 것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기상청은 엘니뇨를, 인공지능을 활용한 예측 모델은 슈퍼 엘니뇨를 예상하고 있는 현재의 상황에서 한 가지는 확실하다. 날씨 예측의 불확실성이 높아졌다는 점이다. 함유근 교수는 지구 온도 상승이 가속화되면서 자연현상들을 예측하는 일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2014년 봄, 전 세계 기상관측기구에서 강력한 엘니뇨가 출현할 것이라고 예측했지만 정작 엘니뇨는 이듬해 겨울에 나타나 혼란을 줬던 사례가 대표적이다. 그 와중에 이미 슈퍼 엘니뇨가 시작됐다거나 올여름 엘니뇨로 폭염과 폭우가 발생할 거라는 검증되지 않은 추측성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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