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8일 폭우로 침수돼 숨진 가족이 살던 반지하 방 창문의 모습.ⓒ시사IN 신선영

전날 기록적인 폭우가 내린 8월9일 아침, 서울 관악구 신림동(신사동) 일대는 마비됐다. 대로변 상가 상인들은 테이블과 의자를 밖으로 꺼내고 진흙을 씻어냈다. 골목 안 다가구·다세대 주택에 사는 주민들은 집 밖으로 자잘한 가재도구들을 끄집어내고 있었다. 우산도 우비도 포기한 사람들 위로 비가 계속 쏟아졌다.

아무 살림살이도 건지지 못한 사람들도 있었다. 반지하 주택에 살던 주민들이었다. 반지하 방에는 이날 오전까지도 물이 차 있었다. 양수기에 호스를 연결해 1층으로 물을 퍼내고 있는 집은 그나마 수습이 빠른 편이었다. 8월9일 오전 11시40분, 노란 점퍼를 입은 윤석열 대통령이 방문한 ○○빌라 반지하도 마찬가지였다. 전날 밤 갑자기 집 안으로 쏟아져 들어온 빗물을 미처 피하지 못한 일가족 3명이 이곳에서 목숨을 잃었다. 반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12칸 중 7칸이 여전히 흙탕물에 잠겨 보이지 않았다.

빌라 주민들과 지하에 가득 차 있는 흙탕물을 번갈아 바라보던 윤 대통령이 “근데 어떻게 여기 계신 분들 미리 대피가 안 됐나 모르겠네”라고 말했다. 옆에 서 있던 오세훈 서울시장이 “어젯밤 10시 전후에 아주 집중적으로, (누적 강수량이) 한 400㎜가 (쏟아져서) 아마 수압 때문에 문이 안 열려서…”라고 대답했다. 도착한 지 10분도 안 되어 윤 대통령이 떠나자 모여 있던 주민들이 웅성거렸다. “다시 오는 거야? 이게 전부야?” “지하에 물이라도 좀 빼주라고 하지.”

○○빌라 반지하층에는 두 가구가 거주하고 있었다. 사망사고가 난 B1호는 북서쪽으로 난 건물 출입구 옆에 창문이 나 있었다. 밖에서 봤을 때 창문은 성인 정강이 높이에 불과했고 창살 모양의 방범창이 설치돼 있었다. 옆집 B2호는 반대편 남동쪽 방향으로 창문이 나 있었다.

B2호에 살던 전예성씨(52)는 8월8일 저녁 8시30분에 일터로 출근하던 중이었다. “딸들한테 전화가 왔어요. 빗물이 집으로 들어오고 있다고 하기에 ‘배수로에 낙엽이 쌓여서 막혔나 보다’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어요.” 전씨는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상황은 심각했다. 현관은 이미 수압 때문에 열리지 않았다. 창문으로 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딸 셋은 집안에 있었다. “눈앞에서 우리 애들 다 죽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니까 참…. 어떻게 했는지 몰라요. 무슨 힘이었는지 모르겠는데 맨손으로 방범창을 뜯긴 뜯었어요.”

창문으로 세 딸을 구한 전씨는 옆집 B1호 창문 앞으로 달려갔다. 안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상황이지만 일단 방범창을 뜯어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2층에 사는 남성 주민도 그를 도왔다. “근데 이미 늦었더라고요. 정말 순식간에 물이 찼어요.” 전씨는 조금이라도 시간이 더 있었다면 옆집도 구할 수 있었을 거라며 안타까워했다. “물난리도 물난리지만 방범창이 참 무섭다는 걸 이번에 처음 알았어요.” 반지하가 아니라면 이 정도로 촘촘하고 튼튼한 방범창을 설치할 이유는 없었다.

뜯기지 않는 방범창 앞에서 주민들이 발을 동동 구르는 사이 물은 계속 불어났다. B1호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홍 아무개씨(47)와 그녀의 딸(13), 발달장애인인 홍씨의 언니(48)가 결국 숨진 채로 발견됐다. 병원에 입원 중이던 홍씨 자매의 어머니(74)는 화를 피했다.

같은 날 서울 동작구 상도3동에서도 반지하에 살던 50대 발달장애 여성이 반려묘와 반려견을 구하기 위해 집으로 되돌아갔다가 빠져나오지 못하고 숨졌다. 1m 남짓한 좁은 길을 사이에 두고 다세대·다가구 주택 네 채가 마주보고 있는 골목이었다. 네 건물 모두 반지하 주택이 있었다. 사망사고가 난 집의 옆 건물 반지하에 거주하던 이 아무개씨(87) 역시 3층에 살던 주민이 밖에서 창문을 깨준 덕분에 간신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하수처리 시스템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폭우가 쏟아질 때 가장 먼저 피해를 보는 곳은 지하다. 반지하는 창문 일부가 지상을 향해 나 있기는 하지만, 물이 차면 수압으로 인해 문이나 창문이 콘크리트 벽처럼 막혀버리기 때문에 사실상 빠져나갈 통로가 없다. 서울시는 이 사실을 이미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2010년 9월 기습적인 폭우로 지하주택 약 1만8000가구가 물에 잠긴 바 있기 때문이다.

“맨손으로 방범창 뜯어서 살았다”

경제적으로 취약한 계층이 자연재해로 인해 더 큰 피해를 당한다는 사실이 입증되자 2012년 침수가 우려되는 지역에 반지하 주택을 새로 지을 수 없도록 건축법이 개정됐다. 서울시는 ‘침수 취약 가구 돌봄 서비스’를 제공했다. 침수됐던 가구 거주민과 공무원을 일대일로 매칭해 위급 상황에 연락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고, 미리 물막이판이나 펌프 시설 등을 설치해 피해를 예방하자는 게 취지였다. 이 서비스는 해마다 규모가 축소되긴 했으나 현재까지 서울시내 각 구청 치수과에서 맡아 시행하는 사업 중 하나다.

한 주민이 침수된 반지하 주택의 복구 작업을 하고 있다.ⓒ시사IN 신선영

하지만 이런 대책이 마련된 이후에도 현실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지난 10년간 반지하 주택은 서울시에서만 4만 호 이상 새로 지어졌다. 침수 취약 가구 돌봄 서비스에도 허점이 있었다. 이번에 사고가 난 건물 모두 해당 서비스 대상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가까스로 가족을 구한 전예성씨는 이 건물 반지하가 과거에도 한 번 물에 잠겼다고 들었지만, 침수 취약 가구 돌봄 서비스라는 제도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관악구청 언론팀 관계자는 “2010년에 침수됐던 가구를 대상으로 했는데, 그 이후로 이사를 오고 가면서 해당 서비스에서 제외된 가구들이 있는 걸로 알고 있다. 현실적으로 이사 오는 가구주를 찾아다니면서 서비스에 가입하라고 권유하기도 어렵고, 가구주도 번거로워하는 경향이 있다”라고 해명했다. 결국 당사자가 적극적으로 알아보고 신청하지 않는 이상 효과를 발휘하기 어려운 제도였다.

다시 큰 물난리를 겪게 된 서울시가 8월10일 내놓은 대책은 10여 년 전과 비슷하다. 이번에는 침수 우려 지역과는 상관없이 반지하 주택을 짓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내용이 발표됐다. 이미 지어진 반지하 건축물은 10~20년 유예기간을 주고 순차적으로 없애나가기로 했다. 하지만 주거 취약계층이 반지하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사회·경제적 이유를 간과한 대책이라는 비판이 뒤따랐다. 8월10일 진흙 묻은 걸레를 물에 헹구던 전예성씨는 이렇게 말했다. “예전에도 반지하에서 사람 못 지내게 한다고 하지 않았어요? 내가 그 이후로 여기 계약한 건데. 여기가 정리될 때까지 당분간 머물 집을 찾아봤는데 다들 너무 비싸요. 이 건물보다 훨씬 낡은 투룸인데 보증금 1000만원에 월 70만원을 달라고 하더라고.”

기자명 나경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did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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