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았다 싶었다. 올해 초부터 언론에 등장하기 시작한 엔데믹이란 단어를 보고 안도의 한숨은 쉰 게 나만은 아닐 것이다. 공연 한 번, 페스티벌 한 번 여는 게 죄처럼 느껴지던 시절이 꿈만 같았다. 공연과 삶이 얽힌 기획자, 아티스트, 관객 모두 알 수 없는 죄책감에 시달린 기간이 짧지 않았다. 짧게는 몇 주 길게는 몇 달씩 준비한 공연 날짜가 상황에 따라 몇 번이 미뤄지다가 결국 취소되는 허탈감에도, 공연 못 본다고 죽는 것도 아닌데 좀 참으면 안 되느냐는 속 편한 소리에도 익숙해지기 시작한 즈음이었다. 정말 살았다 싶었다.
호사다마라고 하던가. 반가움도 잠시, 오랜만에 재회한 오프라인 공연을 둘러싼 잡음이 들려오기 시작한 건 겨우 돌린 한숨이 한 바퀴를 돌기도 전이었다. 케이팝 신을 둘러싼 목소리가 가장 먼저 터져 나왔다.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는 관객 가운데 여러모로 케이팝 팬덤보다 열정적인 이들을 찾기란 좀처럼 쉽지 않다. 언제 세계 곳곳을 자유롭게 방문하게 될까, 언제 오프라인으로 직접 공연을 볼 수 있을까, 언제 다시 애정을 담은 함성을 지를 수 있을까. 가수와 팬들이 간절히 바라온 시간이 드디어 눈앞에 펼쳐진 셈이었다. 오래 묵힌 간절함만큼 공연에 대한 수요도 폭발했다. 남은 건 그렇게 바라 마지않던 꽃길뿐인 것만 같았다.
핑크빛 꿈이 깨지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우선은 경제적 이유가 컸다. 오랜만에 열리는 오프라인 공연 가격을 확인한 팬들이 일제히 불만을 토로했다. 몇 년 사이 가격이 올라도 너무 올랐다는 것이다. 코로나 전 12만원 전후로 형성되어 있던 케이팝 공연 가격대는 최근 15만원대로 올랐다. 팬데믹 기간 부쩍 인기가 오른 몇몇 보이 그룹의 경우 최상위석인 VIP석을 19만8000원에 판매하며 본격적인 ‘아이돌 콘서트 20만원 시대’를 열었다. SNS를 통해 수만 회 공유된, ‘공연을 양일 보면 월세’라는 한 팬의 한탄은 자조 섞인 농담이자 뼈 아픈 현실 반영이었다.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은 위태로운 분위기에 기름을 부은 건 ‘다이내믹 프라이싱(dynamic pricing)’이었다. 지난달 초 열린 하이브의 콘퍼런스 콜에서 처음 정식으로 언급된 이 단어는 정해진 가격 없이 제품이나 서비스 금액을 수요와 공급 비율에 맞춰 유동적으로 바꾸는 전략을 뜻한다. 경제학 원론에 등장할 만큼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개념으로 24시간 실시간 가격변동이 이루어지는 아마존이나 우버 같은 기업이 성공 사례로 자주 언급된다. 성수기에 비싸지는 비행기표, 이른 아침 가격이 내려가는 조조영화 티켓 가격 등이 비슷한 논리를 바탕으로 한다.
얼핏 보면 상당히 합리적인 가격 제안 방식 같지만, 케이팝 산업이 돌아가는 기본 구조를 아는 이라면 마음 편히 환영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케이팝은 이미 ‘제한된 공급’의 가치를 다른 어떤 비즈니스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해 극한의 이윤을 추구하고 있는 산업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가 팬 사인회다. 회당 적게는 10명에서 많게는 100명까지 당첨자를 뽑는 팬 사인회의 경우, 앨범을 많이 살수록 당첨 확률이 높아지는 ‘기계 추첨’이 대세다. 운에 따라 적은 장수를 사도 당첨될 수 있는 ‘랜덤 손 추첨’은 이제 시장에서 거의 사라졌다는 게 정설이다.
추첨 방식부터 가격까지 불투명해
기형적인 건 추첨 방식에서 가격까지 그 어떤 것도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응모자들은 일반적으로 팬들 사이 알음알음 퍼진 ‘정보’를 조합해 앨범 장수를 ‘추측’해 당첨 가능성을 높인다. 이러한 상황을 악용해 당첨될 수 있는 앨범 장수와 금액에 대한 정보를 유료 판매했다는 일부 음반사 직원을 둘러싼 의혹이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다. 일종의 '어둠의 다이내믹 프라이싱'인 셈이다. 음반 과다 소비의 주역으로 자주 지적되는 포토 카드를 비롯한 랜덤 부속품도 마찬가지다. 부속품에 따라 음반 가격이 달라지는 건 아니지만, 해당 부속품을 소유하기 위해 나올 때까지 계속 음반을 구매해야 하는 행위를 두고 팬들은 흔히 도박을 뜻하는 ‘강원랜드’나 ‘카드깡’에서 파생된 ‘앨범깡’에 비유한다. 인기 있는 부속품의 숫자를 적게 책정해 추가 구매를 조장한다는 의혹도 꾸준히 제기되는 실정이다.
엔데믹과 함께 유독 뜨겁게 불붙은 케이팝 공연 티켓값 이슈는 결국 케이팝을 둘러싼 이러한 구태에 대한 불신이 꾸준히 누적된 결과다. 기획·제작사 측이 항변하는 코로나 시기 동안 부쩍 오른 인건비나 물가상승 폭에 대한 건 팬들도 모르는 바 아니다. 다만 지금까지 아티스트에 대한 사랑을 담보로 너무 많은 것을 희생할 수밖에 없도록 조장된 상황 속에서 오랫동안 기다려온 오프라인 공연 입장권마저 금전적인 부담을 추가로 져야만 하게 된 팬들의 입장을 생각해보면, 이들의 분노가 그리 갑작스럽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유독 케이팝 공연과 관련해 자주 제기되는 불합리한 정황에 대한 스트레스도 새록새록 떠오른다. 공연 입장 시 지나친 몸수색이나 입장 확인 절차, 단지 공연 질서를 지킨다고 하기엔 너무 거친 경호팀의 언행이나 물리적 제재 등은 기본이다. 가수의 인기가 높아질수록 활개를 치는 부정 티켓 구매나 장당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암표 거래는 물론 입장 시 본인 확인을 수월하게 하기 위한 아이디 옮기기, 속칭 ‘입뺀(입장 거부)’을 당한 경우 우회적으로 돕는 불법 입장 도우미까지 각양각색의 ‘창조경제’가 형성되었고 이를 제재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모든 화살을 자유시장경제로 돌리기엔 부작용이 너무 커졌다. 티켓값 논란은 이런 상황의 개선을 위한 최소한의 횃불이다. 케이팝을 사랑해 공연을 찾은 관객들이 티켓 구매에서 공연장 퇴장까지 쾌적하게 즐길 수 있는 그날까지, 한번 붙은 불꽃은 쉽게 꺼지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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