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17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국제게임전시회 지스타(G-STAR) 2022’의 모습. ⓒ연합뉴스
지난해 11월17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국제게임전시회 지스타(G-STAR) 2022’의 모습. ⓒ연합뉴스

‘돈 버는 게임’ P2E(play to earn)는 달콤한 말이었다. ‘게임(play)’으로 ‘돈 벌기(earn)’라는 기치는 게이머뿐만 아니라 투자자도 홀렸다. 업계 관계자들은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0~2021년께 P2E 유행이 절정이었다고 말한다. “모두가 P2E를 추진한다고 말했고, 그렇게 회사 주가를 올렸다.” 팬데믹이 잦아들고 거품이 꺼진 뒤 P2E는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이번에는 곱지 않은 시선을 받는다. 로비 의혹이다.

계기는 김남국 의원(무소속)의 가상자산 보유 논란이었다. 김 의원이 암호화폐 ‘위믹스’를 보유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위믹스 발행사인 게임 기업 위메이드가 주목받게 됐다. 가상자산 투자 전문가들은 대체로 ‘위메이드가 발행한 코인이어서 신뢰도가 높다고 판단해 돈을 넣었다’는 김남국 의원의 해명이 아귀가 맞는다고 본다. ‘내부정보 없이 도저히 투자할 수 없었던 잡코인’이라고 보지 않는다는 의미다. 〈미르 4〉라는 히트 게임을 낸 위메이드가 실제로 유망한 기업이었다고 이들은 말한다(〈시사IN〉 제819호 ‘김남국의 8억원 베팅, “이 투자는 이상하다”’ 기사 참조).

‘돈 버는 게임’ 〈미르 4〉의 시스템을 축약하면 이렇다. 플레이어는 게임 내에서 주요 자원인 ‘흑철’을 ‘채광’할 수 있고, 이걸 암호화폐인 ‘드레이코’로 교환한다. 드레이코를 또 다른 가상화폐인 위믹스로 바꾼다. 위믹스는 가상화폐 거래소(빗썸 등)에서 현금화할 수 있다. 〈미르 4〉는 NFT(대체 불가능 토큰) 기술을 이용한 게임 캐릭터 거래도 지원한다. 교환에 쓰이는 화폐가 위믹스다. 위메이드는 거래수수료를 챙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게임산업법)에 따라 이 게임의 핵심 요소인 ‘돈 버는 콘텐츠’가 금지되어 있다. 그래서 위메이드는 한국 게이머들이 이용하는 ‘한국 버전’과 한국 이외 게이머들이 이용하는 ‘글로벌 버전’을 따로 출시했다. 막상 한국에서 P2E를 이용하려면, ‘글로벌 버전’에 접속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VPN(가상 사설망) 따위 ‘우회로’를 써야 한다. 한국게임학회장인 위정현 중앙대 교수(경영학)는 김남국 의원의 코인 투자 논란 초기부터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위메이드와 몇몇 의원들이 P2E 국내 도입이라는 같은 목적을 지닌 이익공동체’라고 주장해왔다. 위메이드가 P2E 합법화를 위해 국회를 흔들어왔고, 몇몇 의원들이 여기 ‘포섭’돼 법안을 냈다는 것이다. 위메이드와 의원들은 사실무근이라며 반발한다.

국회 사무처는 5월25일 여야 합의에 따라 위메이드 관계자들의 국회 출입 기록을 공개했다. 위메이드 관계자가 가장 많이 방문한 곳은 윤창현 의원실과 허은아 의원실(이상 국민의힘)이었다. 허 의원은 지난해 9월 ‘메타버스 산업진흥법안’을 냈다. 허은아 의원 보좌관이었던 김 아무개씨는 위메이드 관계자가 방문할 당시 의원실에서 일하고 있었고, 이후 2020년 11월에는 한 가상자산 거래소 전략부문 대표로 취업했다.

6월6일 허은아 의원은 SNS에 “해당 보좌관의 취업 사실은 오늘 알았고, 법안 발의 과정에 그 보좌관이 개입할 여지는 없었다”라고 썼다. 허 의원은 해당 보도를 한 언론사를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했다. 발의한 법안의 내용을 두고도 ‘P2E 합법화’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5월26일 SNS에 이렇게 썼다. “법안은 메타버스와 게임산업의 차별화를 주목적으로 한다. (…) P2E는 아예 입법 대상으로 고려하지도 않았다.” 그는 자신이 ‘P2E 합법화’를 했다는 민주당 비판을 두고 “왜 P2E를 명문화한 법안(디지털자산거래법안)에 대해서는 아무 말 못하나”라고 말했다.

철 지난 P2E, 게이머는 시큰둥

P2E는 갑자기 ‘미운 오리 새끼’가 됐다. 김남국 의원이 위믹스를 보유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기 이전에는 P2E를 예찬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이 건을 ‘코인 게이트’라 부르는 매체들도 불과 수년 전에는 P2E를 금지하는 법이 ‘갈라파고스 규제’라고 비판했다. 세계적으로 P2E 게임이 히트하는 와중에 한국만 법에 막혀 기업이 기를 못 편다는 주장이었다. 그런데 게임산업의 미래를 P2E에서 찾는 이들은 ‘게임’보다 ‘산업’에 방점을 찍었다. 반면 실제 게임을 깊이 즐기는 이들 대다수는 P2E 게임을 부정적으로 봤다.

P2E 열풍이 꺼지기 전인 지난해 1월, 게임 전문 매체 〈디스이즈게임〉은 게임 이용자 6324명에게 설문조사를 했다. P2E가 ‘긍정적’이라는 응답은 약 23%, ‘부정적’이라는 응답은 약 60%였다. 부정적인 이유를 두고는 가장 많은 이들이(약 58%) “게임이 아니라 노동이나 투기에 가깝다”는 선택지를 골랐다. 기사를 쓴 〈디스이즈게임〉 김재석 기자는 P2E를 긍정적으로 보지 않지만, 이런 배경에서 ‘국회 P2E 로비’ 가능성은 낮게 본다. 그가 보기에 P2E 게임은, 법만 하나 바꾸면 이용자가 물밀듯 들어올 뜨거운 아이템이 아니다. “한국은 게임사가 무작정 P2E를 도입한다고 게임이 잘되는 판이 아니다. 〈로스트아크〉 〈메이플스토리〉 같은 인기 게임은 그냥 재미있어서 많은 사람이 붙고, 외부 거래소를 통한 매매도 이뤄진다. NFT를 이용한 P2E 게임은 누가 돈을 쓰는지도 불명확하고, 사기 사건도 여럿 일어났다. P2E는 ‘섹시한’ 단어가 아니게 됐다.”

실제로 〈미르 4〉는 이전의 위세를 찾기 어렵다. 한때 130만명에 달했던 동시접속자 수는 20만명대로 줄어들었고, 후속작인 〈미르 m〉 역시 전작의 화제성에 미치지 못한다. 2021년 말에는 암호화폐로 교환되는 자원 흑철이 ‘복사’되는 오류가 일어났다. 게임 내에서 일종의 위조지폐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올해 초에는 위메이드가 암호화폐 시장에서 위믹스를 대량 매도한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되기도 했다. 한때 개당 3만원 이상으로 치솟았던 위믹스의 가치는 수직으로 추락했다. 지난해 11월에는 유통량 신뢰도 문제가 터져 디지털자산거래소공동협의체가 위믹스 상장폐지 결정을 내렸다.

P2E를 ‘흘러간 이슈’로 보는 게임업계 관계자들은 위정현 교수가 과하게 선을 넘었다고 본다. 그러나 위 교수는 생각을 바꾸지 않는다. P2E가 전 세계에서 히트하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그 역시 “게임사의 선동”이라고 말한다. 그는 ‘돈 버는 게임’ 자체에 대해서도 비판적이지만, P2E 게임이 ‘재미’까지 갖추는 상황을 더욱 우려한다. 사행성 P2E 게임이다. 예컨대 일정 확률로 높은 보상을 얻을 수 있는 ‘확률형 아이템’이 P2E 게임에서 구현된다면? 1만원을 투자해 10만원을 환전할 수도, 100원을 환전하게 될 수도 있다면? 이것은 온라인 도박판이다. 위정현 교수는 〈시사IN〉과의 통화에서 “한편으로는 확률형 아이템으로 게이머의 피를, 다른 한편으론 코인을 발행해서 투자자의 피를 빨아먹는 게임사가 출현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여야 의원들은 P2E를 허용하자고 주장했다. 김규철 게임물관리위원장에게 “언제까지 P2E 게임을 사행성 때문에 막을 것인가” “기업에서 속이 터진다. 사행성만 주장하면 안 된다” 따위 발언을 했다. 이 자리에서 ‘신성장 동력’이라고 불린 P2E는 8개월이 지난 뒤 정치권에서 주홍글씨가 됐다.

중앙대 위정현 교수는 확률형 아이템과 P2E 게임의 결합을 우려한다. ⓒ시사IN 포토

 

기자명 이상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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