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로이드 모바일 기기 제조업체들은 구글과의 계약에 따라 ‘구글 검색’을 제품에 사전 설치해야 한다. ⓒ시사IN 조남진

스마트폰과 태블릿 등 삼성전자의 모바일 기기 새 상품을 처음 켜면, 홈 화면의 중간 지점에 옆으로 누운 직사각형 형태의 긴 창을 보게 된다. ‘구글 검색(Google Search)’이라는 앱이다. 유저는 이 앱을 내려받은 적이 없다. 삼성전자 측이 해당 기기에 미리 장착해놓은 앱이다. ‘구글 검색’은 삼성 모바일 기기의 ‘기본 검색엔진’이다.

챗지피티가 센세이션을 일으킨 지난해 11월 이후, 삼성전자가 자사 기기의 기본 검색엔진을 ‘구글 검색’에서 마이크로소프트(MS)의 ‘새 빙(Bing)’으로 바꿀지도 모른다(혹은 바꾸면 좋겠다)는 소문이 떠돌고 있었다. 챗지피티를 출시한 오픈AI는 MS의 사실상 자회사다. 지난 2월 MS는 별 볼 일 없던 자사의 검색엔진(빙)에 챗봇 기능을 결합하며 ‘인터넷 검색의 새로운 날’을 선언했다. 삼성 갤럭시의 기본 검색엔진이 ‘새 빙’으로 바뀔 경우, 유저들은 챗봇과 일대일 대화를 통해 원하는 검색 결과를 더욱 쉽게 얻을 수 있을 터였다. 삼성 갤럭시의 인공지능 비서인 빅스비의 기능도 크게 향상될 수 있을 것이다. 삼성의 ‘새 빙’ 채택은, 구글이 90% 이상을 점유 중인 글로벌 검색 시장의 지형도를 뒤엎을 잠재력을 지닌 것으로 보였다.

지난 4월16일, 〈뉴욕타임스〉는 “삼성전자가 모바일 기기의 기본 검색엔진을 ‘구글 검색’에서 MS의 빙으로 바꿀 것을 고려 중이라는 소식을 접한 구글 직원들이 큰 충격을 받았다”라고 보도했다. 이른바 ‘삼성전자-구글 결별’설이다. 그러나 이 신문은 당사자인 삼성전자와 MS로부터 사실 확인을 받지 못했다. 5월 중순 현재, 결별설은 아직 소문일 뿐이다.

소문이지만 개연성 있는 소문이다. 합리적 맥락이 있다. 삼성전자와 구글은 ‘적대적 친구’이기 때문이다. 해외 언론들은 이 거대 초국적 기업들의 관계를 ‘frenemies’라고 표현한다. 친구(friend)와 적(enemy)의 합성어다.

친구들은 사귀며 협력한다. 삼성전자가 기기 부문의 글로벌 강자라면 구글은 소프트웨어(앱)에서 그렇다. 이 협력엔 시너지가 존재한다. 삼성은 구글의 앱으로 갤럭시 시리즈의 활용성을 높인다. 구글은 삼성의 기기로 자사의 서비스를 유저들에게 제공하며 수수료와 광고수익을 얻는다. 연간 30억 달러 정도다. 매년 수억 대(지난해 2억6100만 대)의 갤럭시 시리즈가 출하된다. 그만큼의 구글 서비스가 유저들에게 제공된다. 이에 얹힌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가 글로벌 시장을 지배하는 이유다.

친구들은 가까울수록 서로에게 더욱 의존하게 된다. 때때로 깊은 의존도는 적대성으로 이어진다. 더 의존할수록 더 지배받기 쉽게 되기 때문이다. 안드로이드 OS는 구글 소유다. 흔히 ‘안드로이드는 무료’라고 하지만 겉으로만 그렇다. 안드로이드를 OS로 사용하는 기기 제조업체는 ‘구글 검색’을 기본 검색엔진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 플레이스토어(앱 중개 플랫폼), 구글 지도, G메일 등 모바일 기기의 온전한 활용에 꼭 필요한 서비스들을 사용할 수 있다. 삼성이 자사 기기에 거의 (반)강제적으로 구글의 앱을 장착해야 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기회비용이 있다. 더 우월하고 더 다양한 서비스를 얹어 더 많은 기기를 팔 수 있는 기회가 박탈되는 셈이다. 의존하는 만큼 지배받는다.

삼성은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2010년의 ‘바다(Bada)’, 2012년의 ‘타이젠(Tizen)’ 등 모바일 OS의 자체적 개발이 그것이다. 이 시도가 성공했다면 삼성은 좀 더 자유로워졌을 것이다. 그러나 삼성의 자유가 의미하는 것은 구글의 지배력 훼손이다. 구글은 2012년, 모토로라(미국 휴대전화 업체)를 인수했다. 삼성을 겨냥한 조치였다. 구글은 모토로라를 통해 갤럭시를 위협할 수 있었다. 모토로라 휴대전화가 갤럭시보다 더 우월한 OS 환경을 누리게 하는 것은 구글에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삼성이 사실상 백기를 들면서, 구글은 좀 더 많은 구글 앱들을 갤럭시에 ‘기본 옵션’으로 얹을 수 있게 된다. 소기의 목표를 달성한 구글은 2014년 모토로라를 중국 레노버에 매각했다.

구글의 ‘마기 프로젝트’

그렇다고 해서 삼성이 구글의 지배에 순응해버린 것은 아니다. 인공지능 비서 부문에서 빅스비, 앱 중개 플랫폼에서는 ‘갤럭시 스토어’ 등 자체 개발 소프트웨어로 구글에 대한 도전을 이어갔다. 큰 성공은 거두지 못했다. 이와 함께 MS와 협력 관계를 맺었다. 갤럭시의 백업용 서비스는 ‘구글 드라이브’가 아니라 MS의 원드라이브다. 삼성 모바일 기기들은 ‘Link to Windows’를 통해 MS 윈도10이 OS인 PC로 연결된다. 삼성과 MS가 공동개발한 기능이다. 삼성은 ‘너 말고도 같이 놀 친구가 있어’라는 신호를 구글에 보내왔던 것이다.

지난 5월10일 열린 개발자 콘퍼런스에서 알파벳(구글의 모기업) 순다르 피차이 CEO가 연설하고 있다.ⓒAP Photo
지난 5월10일 열린 개발자 콘퍼런스에서 알파벳(구글의 모기업) 순다르 피차이 CEO가 연설하고 있다.ⓒAP Photo

삼성이 구글에 순응하지 않은 이유는 소프트웨어에 대한 욕망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모바일 기기는 한번 팔고 나면 그만이다. 그러나 구글처럼 소프트웨어를 판다면 두고두고 유저들에 대한 통제력을 유지하면서 수익을 낼 수 있다. 물론 구글은 ‘친구’가 자신의 영역에 침투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챗지피티와 ‘새 빙’이 출현했다. 삼성으로서는 새로운 트렌드를 타려는 충동을 느끼는 것이 당연하다. 망설이다간 기기 부문의 최대 라이벌인 애플이 먼저 치고 나갈지도 모른다. 구글과 애플의 계약은 올해 말까지다. 이런 맥락에서 ‘삼성-구글 결별설’은 상당한 설득력을 확보하고 있다.

그러나 삼성과 MS의 밀월이 실현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이유는 대략 두 가지다.

첫째, 삼성은 구글과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배포 계약(Mobile Application Distribution Agreement·MADA)’을 맺고 있다. MADA에 따르면, 안드로이드 OS를 탑재한 기기 제조업체는 반드시 ‘구글 검색’을 사전 설치해야 한다. MADA를 거부하면 플레이스토어, 지메일, 구글 지도 등 구글 앱까지 사용할 수 없게 된다. 이는 삼성도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다.

둘째, 구글도 ‘마기(Magi) 프로젝트’라는 이름하에 생성형 인공지능 기술에 기반한 새로운 검색엔진을 개발 중이다. 새 빙과 마찬가지로 일대일 대화 형식으로 검색을 진행할 수 있는 데다, 다른 회사와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의 ‘개인화된 검색 경험(personalized experience)’을 목표로 하고 있다. 구글 검색창에 어떤 단어나 문장을 입력했을 때 유저가 무엇을 알고 싶어 하는지 구체적으로 추정해서 맞춤형 답변을 내놓을 수 있다는 의미다. 또한 이미지와 동영상 등 다양한 콘텐츠를 이해하고 다양한 형식의 검색 결과를 내놓을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구글은 시제품을 5월 중에 미국에서 최대 100만명에게 공개한 뒤 연말까지 3000만명으로 늘려갈 계획이다. 구글이 새 빙에 못지 않은 검색엔진 개발에 성공한다면 삼성이 말을 갈아탈 필요 역시 그만큼 줄어들게 될 것이다.

기자명 이종태 기자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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