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인 2007년 9월, 당시 대선 주자들의 신뢰도를 묻는 〈시사IN〉 여론조사에서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후보는 신뢰도와 불신도 모두 1위를 했다. 가장 유력한 후보가 지지 진영의 신뢰와 반대 진영의 불신을 한 몸에 받는 것은 자연스럽다. 하지만 2년 후인 지금은 본격적 대결 국면이 아닌 탓일까. 차기 대통령에 가장 근접했다고 평가되는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는 신뢰도에서 압도적 1위를 하면서도 불신도 순위에서는 한 자릿수 응답률에 그치며 4위를 기록했다. 팬층이 두껍다는 사실이야 공인돼 있었지만, 거부층마저 생각보다 공고하지 않다는 점이 확인된 셈이다. 〈시사IN〉과 미디어리서치가 각 당 대표와 예비 대선 주자를 대상으로 다시 실행한 같은 조사의 결과다.
 

신뢰도는 독보적이고 불신도는 낮은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위).

‘이명박 반사효과’에다 ‘이회창 세탁효과’까지

전체 응답자의 38%가 가장 신뢰하는 정치인으로 박 전 대표를 뽑았다. 2위보다 4배 이상 많은 수치다. 박 전 대표를 제외한 후보는 모두 한 자릿수 응답률에 머물렀다. 미디어법 강행 처리를 둘러싼 갈지자 행보 이후 지지율 하락을 예측하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이번 조사에서도 박 전 대표는 모든 연령대와 모든 직업군, 호남을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30% 이상의 고른 신뢰를 얻으며 건재를 과시했다. 

더 흥미로운 것은 불신도 조사 결과다. 2007년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후보는 대통합민주신당(현 민주당) 지지자의 28.9%, 민주노동당 지지자의 37.8%가 가장 못 믿는 대선 주자로 지목했다. 이념 성향에 따라 호불호가 뚜렷이 갈렸다.

하지만 이번 조사에서 민주당 지지층 중 박 전 대표를 가장 불신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11.8%에 그쳤다.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15.9%)보다 낮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지지층에서도 이회창 총재에 대한 불신이 오히려 더 높게 나왔다. 이른바 진보·개혁층 유권자 사이에서도 박 전 대표에 대한 거부감이 뚜렷하지 않다는 얘기다. 이회창 총재가 남북 문제 등 몇몇 이슈에서 이명박 정부보다 더한 보수색을 드러낸 탓으로 풀이된다.

물론 박 전 대표가 한나라당 대선 후보로 본격 떠오른다면 반대 여론 역시 박 전 대표를 타깃으로 집결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현 시점에서만 보면 박 전 대표는 보수층에서 ‘이명박 반사효과’를 누릴 뿐만 아니라 진보·개혁층에서 ‘이회창 세탁효과’까지 동시에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총재가 박 전 대표의 보수색을 세탁해주면서 진보·개혁층의 거부감을 나눠 지는 모양새다. 이 총재는 불신도 조사에서 전체 2위에 올랐다.

2년 전 조사와 비교해보면 친노 진영의 성적표가 눈에 띈다. 무엇보다도, 공고했던 ‘친노 거부층’이 허물어지다시피 했다. ‘안티’를 몰고 다녔던 이해찬 전 총리는 친노 진영의 좌장으로 공인받으며 불신도 조사에서 극적인 변화를 보였다. 2년 전, 야권의 가장 유력한 후보가 아니면서도 10.2%로 불신도에서 전체 2위를 기록했던 이 전 총리는 이번 조사에서 0.1%만을 기록했다. 현역 정치인이 아니어서 관심에서 멀어졌다는 점을 고려한다 해도 의미 있는 변화다.  

 

 

 

‘친노 거부층’ 극적으로 허물어졌다

친노 중에서도 특히 유시민 전 장관은 ‘환골탈태’했다. 신뢰도 순위에서는 2년 전 7위에서 올해 2위로 올라섰고, 불신도 순위에서도 3위에서 7위로 네 계단 내려앉았다. 8.2%의 응답자가 가장 신뢰하는 정치인으로 유 전 장관을 꼽았다. 2년 전에 비해 세 배 이상 높아졌다(2007년 2.4%). 반면 전체 응답자의 4%가 유 전 장관을 가장 불신한다고 답했는데, 이는 2007년 9.9%의 절반도 안 되는 수치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야권의 유력 대선 주자로 급부상한 흐름을 이어가는 추세다.

지난 4월 재선거에서 국회로 돌아온 정동영 의원(무소속)은 우울한 성적표를 받았다. 후보군 중 유일하게 두 자릿수 응답을 받으며 가장 불신하는 정치인으로 꼽혔다(10.8%). 가장 신뢰한다는 응답은 4.1%에 그쳤다(6위). 한나라당 지지자의 17.5%, 자유선진당 지지자의 18.7%, 친박연대 지지자의 16.7%가 정 의원을 가장 못 믿는다고 답했다. 보수층이 ‘몰표’를 준 셈이다. 지난 대선의 ‘적장’이었던 기억이 여전하다고 풀이된다. 정 의원이 현재는 민주당 지도부와 갈등하고 있기는 하지만, 민주당 지지자는 10.2%가 정 의원을 가장 신뢰했고 2.9%가 가장 불신한다고 답해 별다른 반감을 보이지 않았다.

정치적 체급이 커질수록 거부층 역시 많아지기 마련이어서, 신뢰도와 불신도는 나란히 가는 경향이 있다. 이번 조사에서도 신뢰도 상위 5인과 불신도 상위 5인은 3명이 겹친다. 신뢰도와 불신도 차이가 유난히 큰 정치인들은 그래서 더욱 눈에 띈다. 신뢰도는 높은데 불신도 순위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이로는 창조한국당 문국현 대표와 한명숙 전 총리가 있다. 문 대표는 신뢰도 5.2%(4위), 불신도 1.2%(14위)를 기록했다. 신뢰도 2순위까지 꼽아보게 한 중복 응답 기준으로 보면 각각 11.0%, 3.5%다. 한 전 총리는 중복 응답 기준으로 신뢰도 7.6%, 불신도 1.0%였다.

반대로 신뢰도에 비해 불신도가 눈에 띄게 높은 이도 있다. 민노당 강기갑 대표, 이재오 한나라당 전 최고위원이 그렇다. 강 대표는 한나라당 지지자가 정동영 의원 다음으로 믿지 못하는 인물로 꼽혔다(한나라당 지지자의 14.3%). 강성 투쟁 이미지가 보수층의 심기를 자극한 결과로 보인다. 이재오 전 최고위원은 친박연대 지지자의 9.2%가 못 믿겠다고 했다. 또 다른 ‘박근혜 효과’인 셈이다.

한편 2012년 대통령감으로 누가 적합하다고 생각하는지 묻는 적합도 조사에서도 박근혜 전 대표의 독주는 이어졌다. 박근혜(38.6%), 유시민(9.2%), 이회창(7.2%), 정동영(6.4%), 오세훈(6.1%), 정몽준(6.0%), 손학규(3.8%), 김문수(2.6%) 순으로 나타났다.

 

 

기자명 천관율 기자 다른기사 보기 yu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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