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정치권의 신뢰도는 또다시 바닥을 기었다. 〈시사IN〉이 전국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이명박 대통령과 7개 원내 정당의 신뢰도를 ‘0점(가장 불신)~10점(가장 신뢰) 척도’로 물은 결과다. 모든 설문 대상이 중간값인 5점조차 넘기지 못했다. 행정부보다 입법부를, 민주당보다 한나라당을 더욱 믿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명박 대통령은 8개 설문 대상 중 가장 높은  신뢰도 4.31점을 기록했다. 함께 조사한 어느 원내 정당보다 높다. 이 대통령이 역대 전·현직 대통령 신뢰도 조사(오른쪽 상자 기사)에서는 한 자릿수 지지에 그쳤다는 데 비춰보면 역설적인 결과다. 유권자는 정치권 전반을 신뢰하지 않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정부보다 국회를 더 불신한다는 사실을 이번 조사는 보여준다.
 

대통령에게 국회가 졌다. 7개 원내 정당은 중간도 못 간 대통령의 신뢰도보다 낮았다. 위는 지난 7월22일 미디어법 강행 처리 당시의 국회.

“MB보다 국회를 더 못 믿겠다”

신뢰도 조사에서도 이 대통령을 바라보는 세대별 간극은 뚜렷했다. 분기점은 40대와 50대 사이다. 이 대통령의 신뢰도 점수로 20대는 3.40점, 30대는 3.58점, 40대는 4.11점을 매겼다. 모두 평균 점수 아래다. 반면 50대는 5.02점, 60세 이상은 5.81점으로 믿음을 실어줬다. 지역별로는 대구·경북(5.13점), 직업별로는 가정주부(5.02점), 교육 수준별로는 중졸 이하(5.46점)에서 신뢰도가 높았다. 반면 광주·전남·전북(3.08점), 학생(3.53점), 대학 재학 이상(4.00점) 층의 신뢰도는 낮게 나왔다.

7개 원내 정당의 신뢰도 조사에서는 주목할 만한 역전이 일어났다. 정당 지지율에서 한나라당의 3분의 2 수준에 머문 민주당이 신뢰도 조사에서는 한나라당을 근소한 차이로 제친 것이다. 민주당은 신뢰도 점수 3.80점을 얻어 한나라당(3.69점)보다 앞섰다. 비록 4점대를 밑돌기는 하지만, 7개 원내 정당 중에서는 가장 높은 점수다. 두 당에 대한 응답자들의 정당 지지율은 민주당 22.7%, 한나라당 34.1%였다.

민주당은 연령별로는 20·30·40대에서, 직업별로는 가정주부와 무직·기타 직업을 제외한 모든 직업군에서, 교육 수준별로는 대학 재학 이상 층에서 한나라당보다 높은 신뢰를 받았다. 지지 정당별로 보면, 한나라당과 자유선진당을 제외한 5개 정당 지지자가 민주당의 손을 들어줬다. 지지율과 신뢰도가 연동하는 경향이 컸던 이번 조사에서 민주당의 ‘역전’은 눈에 띈다. 조사 시점 열흘 전인 7월22일에 있었던 미디어법 강행처리 등 한나라당의 잇단 ‘일방통행’이 신뢰도 역전을 불러왔다는 해석이 우선 가능하다.

하지만 결과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민주당의 선전은 아직 한계가 뚜렷하다. 전체 응답자의 3분의 1이 넘는 36.4%가 민주당의 신뢰도에 중간값인 ‘5점’을 매겼다. “믿지도 불신하지도 않는다”라는 얘기다. 적극적 신뢰보다는 겨우 관망세로 돌아선 것이거나, 심하게는 ‘무관심’의 결과일 수도 있다.

 

 

 

TK의 민주당 신뢰도가 왜 이리 높지?

실제로 한나라당의 텃밭인 대구·경북에서 민주당 신뢰도는 오히려 평균보다도 높은 4.07점을 기록했고, 이 지역 응답자의 41.4%는 민주당에게 ‘5점’을 줘 신뢰도 점수를 끌어올렸다. ‘5점’ 응답률이 전국에서 가장 높다. “이번 조사에서 나타난 ‘역전’으로 미뤄보아 민주당이 신뢰를 회복하고 있다”라고 잘라 말하기가 주저되는 이유다.

반면 한나라당은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렸다. 신뢰도 ‘6점’ 이상을 매긴 응답도, ‘4점’ 이하를 준 응답도 민주당에 비해 높았다. 강력한 거부 층이 두껍게 형성되었다는 해석과, 좋든 나쁘든 어쨌거나 관심을 가장 많이 받는 정당이라는 해석이 모두 가능해 보인다.

요구받는 신뢰 수준이 상대적으로 높은 진보·개혁 성향 군소 3당은 이번 조사에서 죽을 쑤었다. 민주노동당·진보신당·창조한국당은 나란히 신뢰도 5·6·7위를 기록했다. 해당 정당 지지자 외에는 대다수 응답자가 세 당을 믿지 못했다.

흥미로운 차이도 있었다. 창조한국당 지지자는 52.7%가 지지 정당을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해 7개 정당 중 지지와 신뢰 간에 가장 큰 괴리를 보여줬다. 반면 진보신당 지지자는 9.7%만이 지지 정당을 믿지 않는다고 답해 가장 괴리가 적었다.

 

 

기자명 천관율 기자 다른기사 보기 yu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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