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다발지역이라서 현장 취재를 나간 지역이었다. 10여 년간 초등학교 반경 300m 내에서 발생한 어린이 보행 교통사고가 32건에 달했다. 인도 없는 길 위에서 학생들은 곡예하듯 차와 오토바이를 피해 학교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 사이에 ‘안전 숨구멍’ 같은 길이 하나 있었다. 상가 건물 중간을 가로지르는, 아주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통로를 지나 많은 어린이들이 사고다발지역을 피해 학교까지 안전하게 갈 수 있었다.
알고 보니 그 건물에서 과일가게(전북 전주시 전주로컬푸드)를 운영하는 박주현(왼쪽)·김지연씨 부부가 2013년 건물 설계 단계에서부터 동네 어린이들의 통학 안전을 위해 만들어놓은 길이었다(〈시사IN〉 제734호 ‘어린이 사고 난 자리, 미안하다 말하는 어른들도 있다’ 기사 참조).
2021년 〈시사IN〉 ‘스쿨존 너머’ 기획에 이 이야기가 소개된 이후 이 부부에게 호응이 쏟아졌다. SNS상에서 “과일가게 사장님 돈쭐 내자”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여러 방송 프로그램에서 가게를 찾아갔다. 최근 KBS 뉴스에서 소개된 이후 이들은 더욱 유명 인사가 되었다. 언론, 지자체, 교육청, 정치권에서 연일 ‘통학로 내준 건물주’를 언급하며 찬사를 보냈다.
4월20일 오후, 2년 후에 다시 찾은 과일가게는 여전히 바쁘고 활기찼다.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인터뷰하는 김지연씨 등 뒤로 동네 어린이 수십 명이 책가방을 메고 그 통로를 거쳐 하교하고 있었다. 어린이뿐 아니었다. 유아차에 탄 아기, 배가 부른 임신부, 지팡이 든 할아버지도 이 부부가 만들어놓은 ‘인후초등학교 가는 길’을 이용했다. 그 길 말고는 여전히 주변에 인도 등 보행자를 위한 안전시설이 전무한 상태였다.
쏟아지는 찬사와 칭찬에 얼떨떨하지만 이 부부가 그 길에 부여하는 의미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변함이 없다. “사회를 위해 무슨 큰일 하는 것도 아니고요. 그냥, 동네에서 장사하다 보면 엄마 뱃속에 들어 있던 아이가 아장아장 걷고 어느새 그 아이가 커서 유치원 가방을 메고 다니고, 또 커서 초등학교 들어가고 벌써 고학년이 되고…. 그런 거 보면 너무 신기하고 좋잖아요. 그 아이들 다 커갈 때까지 다치지 않게 안전하게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죠. 그 아이가 나중에 성인이 돼서 아이를 낳고 ‘엄마 어릴 때도 저 과일가게 옆 통로 지나서 다녔단다’ 이렇게 기억하고 얘기할 수 있을 때까지 이 길을 오랫동안 보존하고 싶어요.”
-
길 위 아이들 눈에 블랙박스가 있었다면 [스쿨존 너머]
길 위 아이들 눈에 블랙박스가 있었다면 [스쿨존 너머]
변진경·이명익·김동인 기자, 최한솔 PD
※ 등장하는 아동의 나이는 사고 당시의 만 나이로 표기합니다.횡단보도를 건너다가 죽은 아이가 있다. 동생 손을 잡고 있었다. 1차로는 무사히 건넜다. 2차로로 들어서는 순간 흰색 ...
-
어린이 사고 난 자리, 미안하다 말하는 어른들도 있다 [스쿨존 너머]
어린이 사고 난 자리, 미안하다 말하는 어른들도 있다 [스쿨존 너머]
변진경 기자
어린이 보행 교통사고가 일어난 장소를 취재하며 많은 어른들을 만났다. 그들은 주로 화를 내고 있었다. 사고 이후 자기 집과 가게 앞에 생긴 횡단보도, 어린이보호구역 표지판, 인도 ...
-
출판인들이 마포에서 ‘책소동’ 벌이는 이유 [사람IN]
출판인들이 마포에서 ‘책소동’ 벌이는 이유 [사람IN]
김영화 기자
고립된다는 느낌을 자주 받았다. 프리랜서 창작자들에겐 익숙한 일상이다. 혼자 일하다 보니 업무량 조절부터 정신 건강 관리가 가장 어려웠다. 공황장애 증상도 찾아왔다. 구술생애사 작...
-
아카데미극장은 도시의 미래다 [사람IN]
아카데미극장은 도시의 미래다 [사람IN]
김동인 기자
강원도 원주시 구도심에는 1963년에 문을 연 오래된 극장 건물이 하나 있다. 아카데미극장. 전국에 몇 남지 않은 단관 극장으로 그동안 원주시 문화재생사업의 거점으로 운영되던 곳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