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2008년에 금융위기만 있었던 게 아니다. 그즈음 세계적 식량위기가 있었다. 기상이변, 중국발 수요 증가 등으로 곡물 가격이 급등했다. 미국과 유럽연합이 바이오 연료를 지원하겠다고 결정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바이오 연료 생산에 옥수수 등이 쓰인다).
곡물 가격이 오른 정도로 끝난 게 아니다. 2007년 아프리카의 부르키나파소, 카메룬, 세네갈, 모리타니, 코트디부아르, 이집트, 모로코 등에서 동시다발으로 폭동이 일어났다. 2008년에는 볼리비아, 예멘, 우즈베키스탄,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스리랑카 등에서 폭동이 이어졌다. 모두 식량 가격이 폭등해서 벌어진 일이다. 예컨대 2007년 12월에 멕시코에서는 ‘토르티야 시위’가 있었다. 토르티야는 옥수수를 반죽해 만든 둥글고 납작한 형태의 빵이다. 이렇게 멕시코는 옥수수를 주식으로 삼는데, 옥수수가 바이오 연료의 원료로 각광받으면서 문제가 생겼다. 초국적 곡물 메이저 기업들이 바이오에너지 산업에 진출했고, 이는 곡물가 폭등으로 이어졌다. 옥수수 가격이 크게 오르자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연일 시위를 벌였다. 결국 멕시코 정부는 가격 상한선까지 설정해야 했다.
금융위기에는 민감한데, 식량위기에는 둔감하다. 글로벌 금융위기 시기에 그런 일이 있었나. 기억이 흐릿할 수도 있다. 이유를 꼽자면, 쌀이 주식이기 때문이다. 국내 곡물 자급률이 20% 수준에 불과하지만 쌀 자급률이 90%를 넘기 때문에 세계적 식량위기를 ‘장바구니 물가 상승’ 정도로 체감하고 넘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또 식량이 모자라면 수입하면 되지 않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식량위기 조짐이 보이면 나라마다 수출을 제한한다.
이번 호 커버스토리로 양곡관리법을 둘러싼 ‘쌀 정치’ 문제를 다루었다. 농업 문제에 관심이 많은 이오성 기자는 ‘정치재’ ‘시장재’라는 개념으로 양곡관리법 정국을 풀이했다. 이 기자는 ‘국내 정치사에서 이렇게 노골적으로 농민을 홀대하는 정부·여당은 없었다’고 말한다. 김다은 기자는 ‘농민단체들도 양곡관리법 개정을 반대한다’는 일각의 주장을 파고들었다.
정치는 한정된 자원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를 조정하는 게 본령이다. 이견이 있으면 대화와 타협을 통해 갈등을 조정한다. 그런데 정부는 국회에서 양곡관리법 논의가 시작된 지 1년이 넘도록 해법을 제시하지 않았다. 그 결과가 윤석열 대통령의 1호 거부권이다. 이런 ‘쌀 정치’, 정말 ‘밥값’은 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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