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없는 쓰나미’ 지구촌 식량 위기 한국도 덮치나
  • 안은주 기자
  • 호수 42
  • 승인 2008.06.30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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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도 식량위기론이 확산되는 가운데 간척지 개발, GMO 활용을 확대해 식량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그러나 반발하는 주장도 만만치 않아 사회 갈등이 예상된다.
   
ⓒ뉴시스
지난 5월부터 국내 전분당업체들이 GM 옥수수를 수입하자 ‘GM 옥수수 수입 반대 국민연대’가 들고 일어나 불매운동을 벌이고 있다.
세계 곡물 가격이 급등하면서 한국에서도 ‘식량 안보 위기론’이 확산되고 있다. 정부나 전문가는 한국도 식량 안보 위협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며, 대안 찾기에 나섰다. 6월24일, 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연구원이 ‘위협받는 식량안보, 대안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개최한 심포지엄도 대안 찾기의 일환이었다. 식량 안보에 대한 최근 관심사를 반영하듯, 이날 심포지엄에는 학계·기업·정부 전문가 300여 명이 참석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국제 곡물시장의 최근 흐름을 보면, 심상치 않다. 2005년 이후 밀·옥수수·쌀·대두 등 국제 곡물 가격은 거의 두 배로 뛰었다(오른쪽 아래 표 참조). 바이오 에너지용 곡물 수요가 증가하고, 중국·인도 같은 나라들의 경제가 발전하면서 식량 수요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수요는 늘어났지만 지구 온난화에 따른 기상이변이 잦아지면서 곡물 작황은 부진해졌다. 여기에 투기 자본까지 가세해 곡물 가격 상승을 부채질한다. 농림수산식품부 여인홍 팀장은 “특히 2007년부터의 곡물 가격 급등은 수급 불균형보다는 투기 자본의 영향이 더 크게 작용한다는 분석도 있다”라고 말했다. 시카고 선물거래시장의 곡물 월평균 거래량은 2003~2007년 기간 중 증가했다. 밀과 옥수수는 각각 30%, 콩은 15%가량 거래량이 늘었다. 투기 자본이 가세한 때문이라는 것이다.

국제 곡물 가격이 급등하다 보니, 남미와 아프리카, 아시아 20여 국가에서는 식량 가격 상승에 항의하는 시위와 폭동이 잇따라 발생했다. 인도·아르헨티나·중국 등에서는 자국의 식품 가격 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수출세를 부과하고 수출할당제를 실시하는 등 수출 규제를 강화하는 추세다. 이참에 자국의 이익을 확대하기 위해 태국 등 쌀 수출국 사이에서는 ‘쌀 카르텔 설립’과 같은 논의도 진행 중이다.

게다가 세계 곡물 가격은 앞으로도 계속 오를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 대세를 이룬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08~2017년 농업전망 보고서〉에서 주요 곡물 가격은 당분간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이고, 정점에 도달한 뒤 하락세가 천천히 나타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앞으로 10년 동안의 곡물 평균 가격은 지난 10년간 평균보다 높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밀과 옥수수는 명목 가격으로 40~60%, 대두는 60% 이상 높게 유지될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김용택 박사는 “이 보고서는 종전의 보수적인 전망과 달리 상당한 우려를 표명했다. 보수적이었던 국제기구마저 세계 식량 가격이 급등할 가능성이 있으며 나라마다 식량 위기에 대한 압박이 커질 것임을 경고한 것이다”라고 해석했다. 유엔 세계식량계획(WFP) 조셋 시런 사무총장은 현재의 식량 부족은 식량수입국, 개발도상국, 저소득층, 취약 계층에 쓰나미와 같은 심각한 위기를 가져다준다며 ‘소리 없는 쓰나미’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한국은 그동안 곡물 파동에서 비켜서 있었다. 다른 나라에서는 급격한 ‘애그플레이션’(농업 인플레이션)이 일어났지만, 한국은 비교적 안정적이었다. 가장 큰 이유는 주식인 쌀 자급률이 높기 때문이다. 한국은 쌀 자급률이 98%에 달해 국제 쌀값 상승이 국내 쌀값 및 수급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그렇다고 곡물 파동을 ‘강 건너 불구경’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니다. 한국은 해마다 1400만t을 수입하는 세계 5위의 곡물수입국이다.  FAO 통계를 기초로 살펴보면, 인구 4000만명 이상 OECD 국가 가운데 식량자급률이 20%대인 나라는 일본과 한국뿐이다. 선진공업7개국(G7) 중 일본을 빼고는 식량자급률이 100%를 넘지 않는 나라가 없다. 한국의 식량자급률 27%는 그나마 쌀 자급률이 높기 때문이다. 쌀을 빼면 주요 곡물 자급률은 5%에 불과하다. 2006년 기준으로 볼 때 주요 곡물의 자급률은 보리 46%, 밀 0.2%, 옥수수 0.7%, 콩 9.3%로 보리를 제외하고는 거의 수입에 의존하는 처지다(왼쪽 위 표 참조).

미국 등 4개 국가에 의존한 곡물 수입 구조

게다가 수입국도 몇 개 나라로 한정돼 있다. 수입 곡물의 84%는 미국·중국·호주·캐나다에서 들어온다. 중국은 이미 수출 제한을 시행하고 있고, 호주는 가뭄으로 수출 물량이 크게 줄었다. 미국도 갈수록 곡

   
물의 바이오 연료 수요가 늘어나 수출 물량이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이처럼 소수 국가에 곡물 수입 대부분을 의존하는 한국의 경우는 식량 안보주의가 떠오를 경우 타격이 더 클 수밖에 없다. 농촌경제연구원과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밀·옥수수·콩 가격이 동시에 100% 상승하면 국내 소비자물가는 약 0.7% 오른다. 한국도 식량 안보와 애그플레이션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인 것이다.

서울대에서 열린 식량안보 심포지엄에서 제시된 식량 위기 극복 대안은 국내 생산을 늘리고, 적정량의 재고를 비축해 수입을 안정화시키고, 해외 생산기지를 확대하는 것 등을 골자로 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뜨거운 감자’가 될 만한 대안도 불거져 나왔다. 간척지 개발이나 유전자재조합작물(GMO) 활용 등이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김용택 박사는 “한국처럼 경지면적이 좁고 국내 생산비용이 높은 나라에서는 국내 생산 확대에 한계가 있다. 토지 구입비나 임차비가 싸고 인건비가 싼 나라에서 생산하여 이를 현지 판매하거나 수출하고, 일부는 국내로 반입하는 것이 좋다. 해외 농업 개발 방식이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한국농촌공사 나정우 박사는 해외 농업자원 개발은 해당국의 식량 사정이 열악해져 식량 안보를 강화할 경우에는 무용지물이 될 가능성도 있다고 반박했다. 나 박사가 내놓은 대안은 서·남해안 간척사업 등을 재개하는 것을 포함한 국내 농업 생산기반 확대 정책이다. 그는 “식량 공급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는 농경지를 확대하는 서·남해안 간척사업 등을 재개해 국내 농업 생산기반을 더욱 공고히 다져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환경문제에 대한 국민 인식 때문에 간척지 개발을 그만두는 것이 아니라 갯벌을 새로이 평가하고 분석해 친환경적으로 개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청 박선희 박사는 지금 같은 식량 위기 상황에서는 유전자재조합작물이 대안이 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주장을 조심스럽게 내놓았다. 박 박사는 “세계 각국이 앞다투어 GMO를 개발하고, GM 농산물 비중이 높아지는 추세에서 과학적 불확실성을 이유로 GMO를 거부하기보다는 활용하는 방안을 현실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세계적으로 GMO 생산이 증가하는 추세다. 미국의 경우 2007년도 생산된 콩의 91%, 옥수수의 73%가 GMO다. 아르헨티나·브라질·캐나다 등도 GMO 재배 비율을 늘려가고 있다. GMO 비중이 높아지면서 GMO가 아닌 작물의 경우에는 프리미엄이 붙어 20%가량 비싸다.

박선희 박사는 “GMO가 상업화된 지 10여 년이 지났지만 안전성 평가에서 승인된 GMO가 인체에 해를 끼쳤다는 보고는 전세계적으로 없다. 식량 자원의 안정적 확보를 위해서는 GMO 등 다양한 자원의 이용 가능성을 보장할 필요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 곽상수 박사도 “GM 작물은 식량문제뿐 아니라 에너지문제, 환경문제, 보건문제도 해결할 수 있는 대안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라며 “GM 작물은 조만간 우리의 생존에서 ‘선택’이 아니라 ‘필수’로 등장하게 될 것이다”

   
ⓒ연합뉴스
매년 1400만t을 수입하는 세계 5위의 곡물 수입국인 한국도 ‘곡물파동’의 안전지대가 아니다.
라고 주장했다. 식량위기론이 확산되자 정부 관계자들이 먼저 나서서 ‘GMO 활용론’이나 ‘간척개발론’을 조심스럽게 내놓고 있는 것이다.

GMO도 갯벌 훼손도 OK?

그러나 식량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간척지 개발이나 GMO 활용까지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에 반발하는 시각도 적지 않다. 새만금 논쟁에서 보았듯 갯벌을 희생하는 간척사업은 엄청난 사회적 갈등과 진통을 낳을 수밖에 없다. 환경을 훼손하면서 새로운 간척지를 만드는 것보다 도심화가 진행되면서 매년 1만2000ha씩 소실되는 농경지를 지킬 수 있는 정책을 내놓는 편이 낫다는 주장도 있다. 농협경제연구소 전찬익 박사는 “국내 생산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적정 수준의 농지 확보가 중요한데, 적정 농지에 대한 논의 없이 농지 규제 완화가 진행되면 국내 생산기반이 위협받고 투기가 극심해질 가능성이 있다”라고 지적했다.  

GMO에 대한 소비자의 불안이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상황이어서 ‘GMO 활용론’도 만만치 않은 반감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지난봄까지만 해도 한국은 GM 옥수수를 사료용으로만 수입했고, 식품용으로는 들여오지 않았다. 그러나 옥수수 가격 급등을 견디지 못한 국내 전분당업체들이 지난 달부터 GM 옥수수를 들여와 전분당을 제조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324개 소비자·시민단체가 참여한 ‘GM 옥수수 수입반대 국민연대’가 들고 일어나 GM 옥수수 전분당 관련 제품 불매운동을 벌이고 있어 업체들이 곤혹을 치르는 중이다.

그러나 세계적인 식량 위기가 한국의 목줄을 당기는 상황이 와도 정부가 간척지 개발이나 GMO 활용을 밀어붙이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대다수 국민이 반대해도 끝내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한 정부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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