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2022년 11월 캄보디아 프놈펜 한 호텔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악수하며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2022년 11월 캄보디아 프놈펜 한 호텔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악수하며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좋아 빠르게 가.” 지난 대선이 한참 지나고서야 이 말의 출처를 알았다.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 시절 촬영한 ‘공약 쇼츠’에서 나온 말이다. 뭐가 좋고, 뭐가 빠르게 가? 온라인에서 자주 접했는데도, 뭔가 어감이 어색했다.

정부가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문제 해법을 내놓았다. 말도 어려운 ‘제3자 변제’ 방안이다. 한마디로 국내 기업 단독으로 조달한 재원으로 배상금을 지급한다는 내용이다. 정부안은 2018년 10월·11월 일본제철·미쓰비시중공업 강제동원 피해 배상 확정판결의 취지를 무시한 조처다. ‘굴욕·굴종’이라는 말이 뒤따랐다. 정부안에 어안이 벙벙한 사이, 3월 도쿄 한·일 정상회담-4월 워싱턴 한·미 정상회담-5월 히로시마 한·미·일 정상회의 일정이 예정되어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미·중이 전략경쟁을 하는 가운데 ‘한·미·일 vs 북·중·러’의 대결 구도로 빠르게 진입하는 모양새다. 이렇게 해도 되나 싶을 정도의 ‘속도전’이고, 앞뒤 없는 ‘과속 외교’다.

두고두고 화근이 될 정부안

일본의 피고 기업은 돈 내놓을 의향이 없어 보인다. 일본의 피고 기업 이사회에서 배임이라는 반발이 나왔다는 소리도 들린다. 포스코·한국도로공사·KT 등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혜택을 본 16개 한국 기업이 재원 마련에 참여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그런데 말이다. 일본 전범기업을 상대로 한국 대법원 판결을 받은 피해자는 15명이다. 정부가 공식 인정한 강제동원 피해자 21만8639명 중 극히 일부다. 현재 소송 67건이 법원에 계류 중이다. 1000명이 넘는 피해자들이 법원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대법원이 2018년 판결을 번복하지 않는 한 승소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 한국 기업은 얼마의 돈을 내야 하나? 대법원의 판결 취지를 무시한 정부의 조처로 기부금을 내야 한다는데, 이는 ‘배임’ 아닌가? 이번 조치로 일본 기업을 상대로 싸웠던 피해자들이 정부안을 놓고 싸워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정부안은 문제의 해결이 아니다. 두고두고 화근이 되리라.

외교부와 전직 보수 외교 원로들도 ‘속도 조절’을 권유했는데, 윤석열 대통령이 세게 밀어붙였다고 전해졌다. 앞으로 한·일 관계 현안도 이런 식으로 처리하는 건 아닐까 우려된다. 예를 들어 후쿠시마 방사성 물질 오염수 같은 사안. 당장 일본은 올봄·여름에 방류한다는 계획이다. 후쿠시마 등 8개 현의 수산물 수입 금지를 해제할 것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 문제도 ‘좋아 빠르게 가’? 윤석열 정부의 ‘과속’에 설마 하면서도 별 걱정이 다 든다.

기자명 차형석 편집국장 다른기사 보기 ch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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