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20일(현지 시각) 바이든 대통령(오른쪽)과 젤렌스키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만났다.ⓒEPA

러시아의 침공에 맞서 1년 넘게 항전을 벌이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최대 지원국은 미국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러시아 침공 1주년을 나흘 앞두고 우크라이나를 전격 방문해 젤렌스키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전쟁이 앞으로 얼마나 오래 걸리든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겠다”라고 공언했다. 하지만 돈줄을 쥐고 있는 미국 의회, 특히 하원을 공화당이 장악하면서 향후 지원이 크게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가 요즘 워싱턴 외교가에 팽배하다.

대외적으로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폭 지원을 다짐했지만 내부적으로는 바이든 행정부의 고심이 크다. 지난해 11월 의회 중간선거에서 하원을 장악한 공화당 의원들이 (비록 소수이긴 하지만) 우크라이나 지원을 중단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중간선거 이전만 해도 민주당이 상·하원을 장악해 바이든 행정부의 우크라이나 지원 요청을 뒷받침할 수 있었다. 미국은 지금까지 공격용 무기의 핵심인 전투기를 제외하고 스팅어 지대공 미사일, 호크 방공 미사일, 패트리엇 미사일 방어체제, 다탄두 로켓 발사기, 브래들리 장갑차, M1 에이브럼스 전차 등 군사적 지원을 할 수 있었다. 경제적으로도 미국은 피난처 재건은 물론이고 우크라이나 정부가 기능하는 데 필수적인 재정(공무원 월급 포함), 소방, 의료 지원까지 아끼지 않았다. 지원액이 지난 한 해만 네 차례에 걸쳐 1130억 달러에 달했다.

하지만 공화당에 다수당 자리를 내주면서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다. 공화당의 케빈 매카시 신임 하원의장은 의장이 되기 훨씬 전부터 “우크라이나에 대한 백지수표식 지원은 안 된다”라던 인물이다. 그는 지난 1월9일 하원의장 선거 당시 무려 15차례 표결 끝에 간신히 당선되었다. 우크라이나 지원에 반대하는 강경파 의원들의 입김이 결정적으로 작용했기에 운신의 폭이 좁다. 신임 스티브 스컬리스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도 우크라이나 지원에 소극적이다.

2월9일에는 맷 게이츠 공화당 의원을 비롯한 강경파 공화당 의원 11명이 바이든 행정부에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전면 중단할 것을 촉구하는 ‘우크라이나전 피로 결의안’을 제출했다. 이들은 결의안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은 3차 대전으로 비화할 것이란 지난해 3월 자신의 예측을 잊었다. 더 이상 납세자 돈을 대외전쟁에 퍼부을 수 없다. 즉각 우크라이나에 대한 모든 지원을 중단하고, 교전 당사국은 평화협정을 체결할 것을 요구한다”라고 주장했다.

물론 220명에 달하는 공화당 하원의원 대부분은 여전히 우크라이나 지원을 찬성해 이들 소수 강경파 의원들이 제출한 결의안이 통과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그럼에도 매카시 하원의장이 강경 소수파 의원들의 주장을 무시할 수 없는 데는 이유가 있다. 지난 1월 하원의장 선거 때 매카시가 일부 강성파 의원들의 끈질긴 반대로 14차례나 당선에 실패하자 막후 협상을 통해 이들의 요구를 대폭 수용한 하원 운영규칙을 받아들였다. 그 가운데는 종전처럼 다수 의원이 아니라 단 한 명의 의원이라도 자신의 퇴진을 요구하면 이를 표결에 부칠 수 있도록 한 규정이 포함되어 있다. 이런 막후 합의를 토대로 15번째 표결에서 당선된 만큼 매카시 의장이 이들을 무시하고 향후 바이든 행정부의 대규모 추가 지원 요구를 선뜻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하원의 마이클 매콜 공화당 신임 외교위원장은 우크라이나 지원에 적극적이다. 그는 AP통신에 “당내 반대파 의원들의 마음을 돌리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라며, 이를 위해 조만간 우크라이나 검찰총장을 미국 의회에 초청해 러시아 군의 전쟁범죄에 관해 증언하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이런 증언을 통해 강경파 의원들이 마음을 움직이고, 미국인들의 지지를 끌어낼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하원 군사위원회는 매월 두 차례 의원들에게 비공개 브리핑을 열어 미국이 지원하는 우크라이나 지원액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사용되는지 설명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는 31조4000억 달러(약 4경994조원)에 달하는 연방정부의 재정적자를 이유로 우크라이나에 대한 추가 지원에 회의적인 공화당 내 일부 강경파 의원들을 겨냥한 것이다.

케빈 매카시 미국 하원의장이 2월7일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REUTERS

“올봄이 전쟁의 성패 가를 중대 시기”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는 바이든 대통령 이상으로 우크라이나 지원에 적극적이고, 다른 공화당 상원 의원들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예외는 있다. 미주리주 출신의 초선 조시 홀리 의원은 매코널 대표를 포함한 지도부가 친공화 유권자들의 민심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며 우크라이나 지원 반대의 선봉에 나섰다. 그는 〈월스트리트저널〉에 “유권자들은 이제 더 이상 우크라이나에 백지수표를 써주는 걸 바라지 않는다”라며 우크라이나 지원 반대를 분명히 했다. AP통신의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전체 미국인의 48%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을 찬성한다. 하지만 이는 지난해 5월의 60%에 비하면 크게 떨어진 수치다. 특히 친공화당 유권자들 사이에선 같은 기간 찬성률이 53%에서 39%로 뚝 떨어졌다.

바이든 행정부 고위 관리는 〈워싱턴포스트〉에 “의회의 새로운 역학 구도상 종전과 같은 수준의 군사적·경제적 지원을 의회에서 받아내긴 힘들다는 게 바이든 행정부의 생각”이라면서 “우크라이나 정부에 미국이 언제까지나 무제한 지원을 계속할 수 없다는 점을 알리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지원이 어려울 수도 있다고 판단한 바이든 행정부는, 올봄을 전쟁의 성패를 가를 중대한 시기로 보고 이 기간 중 진전을 이뤄야 한다며 우크라이나 정부에 압력을 넣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새해 벽두부터 존 파이너 백악관 국가안보 부보좌관, 웬디 셔먼 국무부 부장관, 콜린 칼 국방부 차관을 포함한 고위 관리들이 잇따라 우크라이나를 방문해 이런 메시지를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전쟁의 장기화를 막고, 러시아의 조기 종전을 압박하기 위해 유럽 우방들과 함께 사상 최대 규모의 경제제재를 단행했지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속전속결을 기대한 푸틴의 예상과 달리 전쟁이 길어지자 러시아 군의 피해도 막심하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지난 1년간 러시아 군 사상자가 약 20만명에 달해 우크라이나 군 사상자의 두 배에 이른다. 전차만 해도 최소 1000대가량이 파괴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푸틴은 2월21일 우크라이나 전쟁 후 행한 첫 국정연설에서 미국 등 서방의 우크라이나 무기 공급을 맹비난하고, 전쟁을 지속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다.

기자명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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