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WBC 결승전’에서 미국이 푸에르토리코를 8-0으로 제압하며 사상 첫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AP Photo

2022년은 축구 월드컵의 해였다. 2023년은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으로 시작한다. 2월10일(한국 시각) 제5회 WBC에 참가할 각국 대표팀 명단이 공개됐다. 세계 야구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수준이 높은 대회다. 지난 두 대회 연속으로 1라운드 탈락 고배를 들었던 한국 대표팀은 통산 세 번째 4강에 도전한다. WBC는 세계 야구 최고봉에 자리하는 대회다. 점점 성장하고 있는 대형 스포츠 이벤트이지만, 여러 면에서 다른 종목의 비슷한 대회와 차이가 있다.

■ 세계 야구 산업 지도와 일치하는 개최지

참가 20개국은 3월8일부터 4개 조로 나뉘어 1라운드를 치른다. A조는 타이완 타이중의 인터콘티넨탈스타디움, B조는 도쿄돔(일본 도쿄), C조는 체이스필드(미국 애리조나주), D조는 론디포파크(미국 플로리다주)에서 팀당 4경기씩을 소화한다. 2006년 이후 다섯 번 대회에서 1라운드가 동아시아와 미국에서만 열리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8강전인 2라운드는 일본과 미국, 4강전과 결승전은 미국에서 열린다. 2013년 3회 대회부터 굳어진 방식이다.

글로벌 차원에서 야구가 산업적으로 성공한 지역이 미국과 동아시아에 국한됐다는 점이 명확히 드러난다. WBC는 자국 내 야구 위상 추락에 위기감을 느낀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주도해 만든 대회다. 또한 일본 야구계·스포츠 산업이 WBC 대회 창설과 운영에 상당한 지분을 갖고 있다.

■ 왜 ‘야구 월드컵’이 아닌가?

축구에서 세계 최상위 국가대항전 이름은 4년마다 열리는 ‘월드컵’이다. 농구와 럭비, 크리켓, 필드하키 종목의 월드컵도 같은 위상이다. 아이스하키와 배구, 핸드볼, 라크로스 그리고 많은 개인 종목에서는 ‘월드챔피언십’이라는 명칭을 쓴다. 월드컵과 월드챔피언십 모두 ‘세계선수권대회’로 번역이 가능하다.

하지만 야구에서는 ‘월드’ 뒤에 ‘클래식’이라는 엉뚱한 이름이 붙었다. 메이저리그 우승 결정전인 월드시리즈의 별칭인 ‘폴 클래식(가을의 고전)’에서 따온 말이다. 여기에는 사연이 있다. WBC의 주요 파트너 가운데 하나가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이다. 리카르도 프라카리 WBSC 회장에 따르면, 메이저리그는 당초 WBC를 세계 챔피언을 가리는 대회로 구상했다. ‘세계 챔피언’이라는 칭호를 쓰는 데는 세계 야구를 관장하는 WBSC의 동의가 필요했다. WBSC는 이를 수락했지만, 세 가지 조건을 달았다. 국적 기준 강화와 예선전 개최, 세계반도핑기구(WADA) 규정에 따른 반(反)도핑 프로그램 운영이었다. 그런데 메이저리그가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2000년대 메이저리그에 금지약물 문제가 만연하기도 했다.

그래서 2006년 초대 대회와 2009년 2회 대회는 ‘초청 대회’ 형식으로 치러졌다. 이에 대한 불만이 WBSC가 프리미어12라는 별도 국제대회를 만든 이유다. 지금 WBC는 월드컵 또는 세계선수권에 좀 더 가까워졌다. WBC는 2013년 3회 대회부터 예선전을 운영했다. 반도핑 프로그램도 WADA 규정에 따른다. 국적 기준도 이번 대회부터 강화됐다. 종전까지 선수는 자신과 부모뿐 아니라 조부모가 시민권이나 영주권을 갖고 있거나, 태어난 나라 대표팀 출전이 가능했다. 이번 대회부터는 ‘조부모’ 조항이 사라졌다.

■ WBC는 성장하고 있는 대회

이번 대회부터 본선 참가국이 16개에서 20개로 늘어났다. 상위 16개국이 다음 대회 본선 출전권을 받는다. 1라운드 각 조 최하위는 예선전으로 강등된다. 영국·체코·니카라과가 첫 출전한다. 영국은 1938년 초대 세계야구선수권대회 우승 팀이었다. 유럽에선 이탈리아, 네덜란드, 이스라엘(유럽야구연맹 소속)까지 북중미(8개) 다음으로 많은 5개 팀이 출전한다. 메이저리그는 2019년 영국 수도에서 ‘런던시리즈’를 개최했다. 2025년엔 프랑스 파리에서 메이저리그 경기를 치를 예정이다. 1888~1889년 앨 스팰딩의 ‘세계야구투어’ 이후 120여 년 만에 다시 유럽시장 개척에 나서고 있다.

WBC 대회 성장세는 폐쇄적인 메이저리그가 세계로 눈을 돌리게끔 하고 있다. WBC 평균 관중은 2006년 1만8900명에서 2017년 2만4342명으로 28.8% 증가했다. 지난 대회 결승전(미국-푸에르토리코) 시청자는 310만명으로 앞 대회(110만명)의 거의 세 배였다. 미국 내 중계권을 갖고 있는 MLB 네트워크에서만 결승전 시청자가 230만명이었다. MLB 네트워크 역사상 2위였다. 2023년 대회는 가장 많은 현역 메이저리거가 출전하는 대회로도 기록될 전망이다. 2월 발표된 20개국 로스터에 메이저리그 MVP 출신 8명, 올스타 출신 67명이 포함되었다. 현역 메이저리거 신분인 선수는 186명, 마이너리거를 포함하면 332명에 이른다.

■ WBC 승리투수는 어떻게 정하나

야구는 정규시즌 경기 수가 가장 많은 종목으로 꼽힌다. 대회가 열리는 3월은 정규시즌을 준비하는 기간이다. 그래서 선수 건강이 중요하다. 이는 여전히 많은 메이저리그 구단이 선수 차출에 부정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특히 투수 부상이 가장 큰 위험 요소다. 그래서 WBC는 엄격한 투수 보호 규정을 택하고 있다. 대회 전 연습경기부터 투수 한 명이 던질 수 있는 투구 수는 최대 49개로 제한된다. 1라운드 투구 수는 65개, 2라운드는 80개, 4강과 결승전은 95개 이하다. 단, 타자 공격이 끝나기 전에는 투구 수 한계를 채워도 교체되지 않는다. 50구 이상 던진 투수는 반드시 4일 이상을 쉬어야 한다. 30구 이상, 또는 투구 수와 관계없이 이틀 연투를 한 경우에는 하루 휴식이다.

승리투수 요건도 프로야구 정규시즌 때와는 달라진다. ‘5이닝 이상 투구’라는 조건을 충족시키기 어렵기 때문이다. 올스타전처럼 “선발, 구원에 관계없이 승리 팀이 끝까지 지속된 최초 리드를 했을 때 던지던 투수”에게 승리 기록이 주어진다. 다만 해당 투수가 난타당했을 경우, 기록원 재량으로 그다음 등판한 투수에게 승리를 줄 수 있다.

5회 이후 15점 차, 7회 이후 10점 차 리드라면 단축 게임이 선언되는 것도 투수 보호를 위해서다. WBC의 명물인 ‘승부치기’도 연장 10회 시작으로 앞당겨졌다. 10회 초 선두 타자는 주자를 2루에 둔 상태에서 타석에 선다. 2013년 3회 대회에선 연장 13회, 지난 4회 대회에선 11회부터 승부치기가 적용됐다. 연장전이 길어질 가능성을 낮춰 투수 소모를 줄인다는 취지다.

승부치기에서는 점수가 날 가능성이 높아지므로 시청자를 붙잡아두는 효과도 있다. 투수 겸 타자로 선발 출장한 선수가 투수로 강판되더라도 지명타자로 타선에 남을 수 있는 ‘오타니 룰’은 이번 대회에서 처음으로 적용된다. 역시 흥행을 위한 고려다.

■ 베팅 업체들이 꼽는 우승팀은?

스포츠 베팅 업체들이 이번 대회 우승후보 1순위로 꼽는 팀은 도미니카공화국이다. 제레미 페냐, 매니 마차도, 블라디미르 게레로 주니어, 완더 프랑코, 엘로이 히메네스, 후안 소토, 훌리오 로드리게스 등이 포진한 타선은 최강으로 꼽힌다. 그다음이 역대 최고 팀을 구성했다는 평가를 받는 미국이다. LA 다저스 왼손 에이스 클레이튼 커쇼와 현역 최고 타자인 마이크 트라웃이 미국 팀의 중심 선수다. 커쇼는 메이저리그에서 사이영상 3회, 트라웃은 MVP를 3회 수상했다.

3순위는 최다 우승(2회) 팀인 일본. 오타니와 다르빗슈 유, 스즈키 세이야, 요시다 마사타카에 어머니가 일본인인 라르스 누트바까지 메이저리거 5명을 대표팀에 포함시켰다. 역대 최강으로 평가된다. 지난 두 대회 연속 준우승팀 푸에르토리코가 4순위 우승후보다. 한국은 베네수엘라, 쿠바와 함께 5~7위권 전력으로 평가됐다.

기자명 최민규 (한국야구학회 이사)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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