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20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 관련 공판에 출석하는 김만배씨.ⓒ연합뉴스

“김만배 방패가 튼튼해. 별명이 이지스함이야, 김 이지스. 대한민국에 이 큰 사업을 해서 언론에서 한번 안 두드려 맞는 거 봤어?” 2020년 3월13일 김만배 전 〈머니투데이〉 법조팀장은 정영학 회계사에게 이렇게 말한다. 정 회계사는 “그건 형님이 계셔서 그렇죠”라고 답했다. 〈뉴스타파〉가 공개한 1300쪽 분량의 ‘정영학 녹취록’ 가운데 일부다. 2012년 8월부터 2021년 4월까지 김만배씨와 남욱 변호사, 정영학 회계사 등 대장동 개발 민간사업자들의 대화 내용이 담겼다. 녹취록 초반 김만배씨는 ‘김만배 기자님’으로 불리다가 이후 ‘형님’으로 불렸다.

김만배씨의 광범위한 로비 대상에 언론은 한 챕터였다. 최근 김씨와 중앙일간지 간부들의 금전 거래 정황이 드러나면서 파문이 일고 있다. 검찰 조사에 따르면 〈한겨레〉 〈한국일보〉 〈중앙일보〉 기자가 김만배씨와 억대 금전 거래를 했고, 채널A 기자는 김씨로부터 고가의 신발을 받았다. 금액과 조건은 다르지만 모두 대장동 의혹이 보도되던 시기 편집국 간부를 지냈다. 편집국 신문총괄, 뉴스부문장 혹은 논설위원이었다. 김씨가 스스로 “이지스함”이라며 호언장담하던 2020년 3월 즈음의 일이다.

돈의 액수부터 통상적이라 보기 어려웠다. 〈한겨레〉 A 기자(신문총괄)는 정치팀장을 맡고 있던 2019년 3월 아파트 분양대금을 위해 김만배씨에게 다섯 차례에 걸쳐 9억원을 수표로 받았다. 차용증이나 담보는 없었다. 〈한국일보〉 B 기자(뉴스부문장)는 2020년 5월 주택 매입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김씨로부터 1억원을 빌렸다. 차용증을 썼지만, 대장동 보도 후인 2022년 10월에야 처음 이자를 지급했다. 〈중앙일보〉 C 논설위원은 2018년 8000만원을 김씨에게 빌려준 뒤 7개월 후 이자를 합해 9000만원을 돌려받았다. 2020년에는 김씨에게 1억원을 빌렸다.

세 언론인은 사인 간의 거래였고 보도와는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모두 법조를 출입하며 김만배씨와 연을 맺었다. 김씨는 2004년 〈머니투데이〉에 입사한 후로 줄곧 법조 출입기자로 재직했다. 법조계에선 “(밥이나 선물 등으로) 후배들을 잘 챙기고” “발이 넓은” 기자로 알려져 있었다. 그저 돈 많은 타사 동료 기자에게 잠시 돈을 빌린 걸까.

김만배씨를 비롯해 그와 억대의 돈거래를 했다고 알려진 일간지 기자들 모두 법조를 출입하며 연을 맺었다. ⓒ연합뉴스

수사 무마로 증명한 로비 실력

김만배씨는 법조기자이면서 대장동 민간사업자였다. 법조기자들에 따르면 “현장에서 취재하지는 않고 회사 민원을 해결하거나 검사를 관리하는 역할”을 했다. 기사는 거의 쓰지 않았다. 직함만 기자일 뿐, 사실상 ‘사건 브로커’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정영학 녹취록’을 입수해 보도한 봉지욱 〈뉴스타파〉 기자는 “2012년 대장동 업자들이 김만배를 ‘대장동 로비스트’로 고용하는데 당시에도 검찰 수사 서너 건을 로비를 통해 무력화했다. 김만배씨가 대장동 개발사업의 중심에 설 수 있었던 이유는 ‘검찰 수사 무마’로 증명해 보인 ‘로비 실력’이었다”라고 말한다. 그만큼 법조기자였던 김만배씨와 법조계 고위 인사들과의 유착 관계가 깊었을 거란 얘기다. 

‘정영학 녹취록’에는 김씨의 로비 정황이 자세히 드러난다. 2020년 7월29일자 녹취록에 따르면 김만배씨는 “대장동은 막느라고 너무 지쳐. 돈도 많이 들고. 보이지 않게. 끝이 없어”라고 말한다. 정영학 회계사가 “형님, 맨날 그 기자분들 먹여 살리신다면서요”라고 하자, 김씨는 “걔네들은 현찰이 필요해” “걔네들한테 카톡으로 차용증을 받아. 그런 다음에 2억씩 주고” “분양받아준 것도 있어. 아파트. 서울에. 분당”이라며 구체적인 로비 방법을 밝힌다. 대여금 형태로 돈을 지급한 것 외에도 기자들과 골프를 치고 금품을 건넨 정황이 여러 차례 드러났다.

기자인 그는 왜 다른 기자들을 ‘관리’했을까. 봉지욱 기자는 김씨의 언론계 로비가 점차 확장된 시점을 2019년으로 본다. 대장동 개발 수익이 배당되던 때였다. “자신들이 예상한 것보다 많은 돈이 들어오자 이들은 걱정을 하면서 수익을 줄일 방안을 고민하기도 한다. 특히 기자들이 냄새를 맡고 달려들면 위험하기 때문에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기자 관리에 들어간 걸로 보인다.” 대장동 사업에 문제가 생길 경우를 대비한 일종의 보험용이었다는 것이다. 검찰에 따르면 〈한겨레〉 A 기자가 받은 9억원은 남욱 변호사와 정영학 회계사로부터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화천대유 회계 장부에 지급수수료 명목으로 빠져나간 198억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김만배씨가 이 계정으로 법조인과 언론인에 대한 금품을 공여했을 가능성이 높지만, 아직까지 검찰은 이 부분을 수사하고 있지 않다. 기자들에게 금품을 살포하면서 기사를 막은 것은 어찌 보면 대장동 사업에 '명백한 특혜'가 있었다는 증거가 아닌가?" 

이런 까닭에 김만배씨가 기자들에게 수억 원대 돈을 빌려준 것을 ‘단순 거래’라 말하기는 어렵다. 〈한겨레〉와 〈한국일보〉는 해당 기자를 해고하고, 〈중앙일보〉는 사표를 수리했다. 하지만 언론계에선 일부 기자들의 일탈로 정리돼선 안 된다는 목소리가 제기된다. 이들이 대장동 이슈가 보도되던 시기에 편집국 주요 간부였다는 사실 때문이다. “대가성이 있었는지와 관계없이 돈거래가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시민들이 언론 보도에 등을 돌릴 만한 이유가 된다. 어떤 건보다 투명하게 진위를 밝혀서 공개해야 한다.” 최지향 교수(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의 말이다.

금전 거래는 대장동 보도에 영향을 미쳤을까? 현재 〈한겨레〉는 언론사 중 유일하게 사내외 인사로 구성된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렸다. 권태호 〈한겨레〉 진상조사위원회 부위원장(저널리즘책무실장)은 “A 기자가 신문총괄로 있던 기간과 대장동 사건이 터진 2021년 9월부터의 기간이 거의 일치한다. 본인이 쓴 칼럼 외에도 대장동 기사 전체를 점검하고 외부 위원들에게 최종 판단을 맡길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국일보〉의 한 기자는 진상조사 자체의 한계를 전했다. “회사의 진상조사 결과 기사 편집에 영향을 미쳤다는 혐의는 나오지 않았다. 그렇다 하더라도 영향을 미치려고 마음먹으면 방법은 많다. 하다못해 취재팀 정보 보고가 그쪽으로 넘어갈 수 있는 게 아닌가.”

김만배씨가 기자들에게 억대의 돈을 건넸다는 내용이 담긴 ‘정영학 녹취록’.
ⓒ뉴스타파

언론 신뢰에 치명상 남겨

무엇보다 대장동 보도가 시작된 2021년 9월 이후로도 세 언론인 모두 간부직을 유지했다. 〈한겨레〉의 경우, 2022년 3월5일 A 기자와 김씨 사이의 돈거래 의혹이 언론에 보도되자 담당 부장에게 털어놓지만 회사 차원의 보고로 이어지지 않았다. 〈한국일보〉 B 기자와 〈중앙일보〉 C 기자도 회사에 보고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심석태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 교수는 “사인 간의 거래라 하더라도 김만배씨가 문제적 인물로 부각된 다음엔 이해충돌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했어야 한다. 재판으로 치면 법관이 회피 신청을 하듯, 비편집 부서로 옮기는 등의 대응을 하지 않은 건 변명의 여지가 없다”라고 지적했다. 이 시기가 언론 윤리를 지킬 ‘마지노선’이었다는 것이다. 〈한겨레〉 편집국장은 사태의 책임을 지고 사퇴하겠다고 밝혔다.

‘대장동 로비스트’였던 김만배씨도, 그와 억대 돈거래를 한 이들도 기자라는 사실은 언론 신뢰에 치명상을 남겼다. 남은 문제는 간단치 않다. 최지향 교수는 언론 윤리를 성찰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자들이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서 사적 이익을 추구한 사건은 셀 수 없이 많았다. 기자라는 이유만으로 이유 없는 선의와 특혜를 받는데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심석태 교수는 이번 사건을 정파적 관점에서 보는 것을 경계했다. “언론인 누구나 윤리적 문제에 놓일 수 있기 때문이다. 특정 개인을 악마화하는 것은 쉽지만 재발 방지에는 그다지 도움이 안 된다. 언론 윤리는 사실관계에 따라 신중하게 다뤄져야 한다.”

조직 차원의 책임이 비어 있다는 비판도 나왔다. 돈거래 외에 수많은 언론인에게 금품을 전달했다는 정황이 대장동 수사에서 나오지만, 대다수 언론사들이 수수방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언론학자들은 〈뉴욕타임스〉의 취재 윤리 가이드라인을 예로 들었다. 이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뉴욕타임스〉 기자들은 자기가 맡은 분야는 물론이고 앞으로 맡게 될 가능성이 있는 분야의 주식투자를 할 수 없다. 또 특정 직위 이상의 기자들은 규정에 위배되는 개인 자산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 한국기자협회의 ‘언론 윤리 강령’에 비해 정교하고 엄밀한 잣대로 기자의 이해충돌을 다룬다.

소수의 목소리이지만, 동료 기자와 한 돈거래가 해고 사유가 되느냐고 항변할 수 있다. 한 언론학자는 답한다. “언론사가 개인에게만 책임을 물을 게 아니다. 언론인의 이해충돌 문제를 ‘관리’하지 못한 편집국장과 사장의 책임은 없는가.”

기자명 김영화 기자 다른기사 보기 you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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