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창간호를 제작하던 밤은 어수선했다. 전 직장에 ‘집단 사표’를 내고, 독립언론을 하겠다고 나섰는데 ‘144면 창간호’ 마감은 버거웠다. 직원 수도 지금보다 적었다. 기자 몇은 마감 전날 밤을 새웠다. 캐나다 토론토에 있던 성우제 편집위원이 당시 수많은 언론이 찾던 신정아씨를 미국 뉴욕에서 만나 ‘22시간 인터뷰’를 해왔다. 그 인터뷰 보도자료를 받기 위해 몇몇 언론사 기자들이 마감 저녁에 〈시사IN〉 편집국을 찾았다. 새벽 마감을 하고, 몇몇 선배는 인쇄소로 갔다. 그런데 아뿔싸, 편집 실수로 한 기사의 마지막 줄이 잘린 채 인쇄되었다. 창간호의 특종, 창간호의 실수. 나중에 문정우 초대 편집국장에게 들었다. 그날 밤, 일을 다 마치고 집에 가 샤워기를 틀어놓은 채 울었다고. 그 이야기를 낄낄대며 들었는데, 뭔가 뭉클했다.
이번 호가 제800호다. 언젠가 여기에 쓴 것처럼, 주간지는 1년에 두 번 합병호(설, 한가위)를 낸다. 배송 때문이다. 800호이지만 (합병호가 있으니) 769번째 마감이다. 지난 호 마감은 새벽 3시30분에 끝났다. 이 일을 769번 했다니. 769번의 마감, 뭔가 마음이 꿈틀거린다.
그래서 제800호에 실릴 편집국장의 편지를 좀 멋있게 써보려고 다른 날보다 일찍 출근했다. 그런데 아뿔싸, 여태 아무 문제 없던 컴퓨터가 부팅이 안 되는 거다. 이른 아침부터 두 시간 날려먹었다. 임시로 다른 컴퓨터로 일했다. 멋있게 글 쓸 타이밍을 놓쳤다.
800호 마감 직전, 제작팀 중 한 명이 코로나19에 확진되었다. 마감 당일, 오후에 다른 제작팀원이 감기 증세로 병원에 갔는데, 그 또한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편집국 말로 ‘필수요원’인데, 그 시간에 대체인력을 구하기도 어려웠다. 그는 컴퓨터를 싸 들고 집으로 가 ‘재택근무’를 하게 되었다. 어쩔 수 없었지만, 미안했다. 얼마 전 다쳐 집에서 일을 하던 다른 ‘제작팀 요원’이 컴퓨터를 싣고, 목발을 짚고 회사로 왔다. 취재차를 운전하는 이효진 과장이 회사와 그의 집을 왔다 갔다 했다. 800호의 마감, ‘버라이어티’했다.
창간 때나 지금이나 독립언론은 매일매일이 도전의 길이다. 인쇄매체가 쇠퇴기임을 매주 수치로 느낀다. 이때 편집 책임자를 맡은 나는, 내 결정이 이 매체의 지속가능성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고민한다. 800호를 내는 지금, 2000호를 낼 때쯤 ‘예전에 800호 만들 때, 이런 일이 있었지’ 하며 〈시사IN〉 사람들이 낄낄대며 웃고 있기를 바란다. 그때까지 독자 여러분께서 곁에 함께해주시기를 바란다. 여태껏 성원해주신 데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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