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23일 ‘당원 투표 100%’로 경선 룰이 확정되면서 국민의힘 차기 당대표 선거 구도에 지각변동이 감지됐다. 유승민 전 의원은 최근 잇따른 국민의힘 당대표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렸지만, 조사 대상을 지지층으로 한정하면 3위권 밖으로 밀려나는 모양새다. 현재 국민의힘 지지층 대상 여론조사에서 가장 앞서는 사람은 나경원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위원장은 윤석열 대통령)이다.

지난해 12월28~29일 실시한 MBC-코리아리서치 여론조사에 따르면, 전체 여론에선 유승민 전 의원(29.8%)이 앞섰지만, 지지층으로 한정하면 나경원 부위원장(21.4%)·안철수 의원(18%)·김기현 의원(12.8%)·유승민 전 의원(10.4%) 순이었다(〈그림〉 참조). 이어 12월30~31일 SBS-넥스트리서치가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같은 구도였다. 전체 여론조사에서는 유승민 전 의원(24.8%)이 선두였지만, 지지층 대상 투표 결과에서는 나경원 부위원장(24.9%)·안철수 의원(20.3%)·김기현 의원(9.4%)·유승민 전 의원(7.9%) 순이었다.

‘당원투표 100%’ 룰 개정 이후 김기현 의원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12월27~29일 진행된 또 다른 설문조사(뉴시스-에이스리서치)에서 김기현 의원은 나경원 부위원장(30.8%)·안철수 의원(20.3%)에 이어 15.2%를 얻었다. 룰 개정 이전 같은 조사(12월17~19일)에서는 나경원 부위원장(26.5%)·안철수 의원(15.3%)·유승민 의원(13.6%)·김기현 의원(10.3%) 순이었다. 3위이던 유 전 의원은 5위로 밀려났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김기현 의원은 현재까지 당내에서 가장 ‘윤심(윤석열 대통령의 의중)’을 끌어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윤석열 대통령과 두 차례 관저 만찬을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핵심 관계자)’으로 꼽히는 장제원 의원과 ‘김장(김기현·장제원) 연대’를 공식화하면서 ‘친윤(윤석열) 주자’라는 이미지를 굳혔다. 김 의원은 당대표 출마 선언에서도 자신을 “윤 대통령과의 격의 없는 소통으로 공감대를 만들어 당의 화합을 이끌어갈 적임자”라고 강조했다.

김기현 의원 측은 친윤 후보군이 정리되고, 윤심이 김기현 후보에게 향한 거 아니냐는 당내 인식이 커지면서 김 의원 쪽으로 표가 몰렸다고 판단한다. 김 의원 측 관계자는 당내 주류 의원 모임 ‘국민공감’ 구성원인 배현진 의원이 1월5일 지역구(서울 송파구을) 당원 연수 연사로 김 의원만 초청한 사실을 들며 “(친윤 의원들의) 김기현 띄우기가 맞다”라고 설명했다.

유승민 전 의원은 “전당대회가 윤심 팔이 경쟁이 됐다”라며 대통령과 여당 대표 간의 관계를 두고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 유 전 의원은 “맹종하고 아부해서 당대표가 되면 국민들이 국민의힘 당대표가 윤 대통령의 노예, 하인 같은 사람이라고 얼마나 비웃겠느냐. 당대표는 총선을 이끌고 당의 변화, 당의 갈 길을 상징하는 사람이다. 대통령이 아무리 잘못해도 찍소리 한마디 못하는 사람이 되면 국민들께서 그런 정당에 표를 주겠나”라고 말했다(2022년 12월29일 CBS 라디오).

일각에서는 이러한 비판이 국민의힘 지지층에게 설득력이 있기보다 유 전 의원에게 씌워진 ‘배신자 프레임’을 강화한다고 본다. 김재원 전 의원은 〈시사IN〉과 전화 통화에서 유 전 의원의 당내 지지율 하락을 두고 “원래 당선 가능성이 없었으며 그 결과가 드러나고 있다. 당에 대해 수구 꼴통당이라고 하는 등 당원들을 모욕하면서 (배신자 프레임을) 본인이 더 채색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유 전 의원이 당원들과의 소통에 실패하면서 당권과 멀어지고 보수정당에서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수도권 당대표론?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차기 여당 당대표의 역할을 두 가지로 꼽았다.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뒷받침해 정부가 성공할 수 있도록 하는 것과 동시에 다가올 총선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당의 확장성을 확보하는 일이다. “국민의힘 당원들도 100% 윤심에 치중하지 않고, 안정성을 기반으로 하되 확장성을 고려하는 전략적 선택을 할 거다. 최근 안철수 의원이 상승세를 보이는 것도 이러한 보수 유권자의 총의가 작용한 영향일 수 있다.”

1월5일 배현진 의원(맨 오른쪽)이 자신의 지역구 당원 연수 연사로 초청한 김기현 의원과 악수하고 있다.ⓒ연합뉴스

국민의힘 주변에는 ‘대통령의 의중이 당원들에게 절대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말도 나온다. 그 사례로 2014년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당대표 선거가 꼽힌다. 당시 서청원 후보와 김무성 후보가 맞붙었다. 서 후보는 친박(박근혜) 핵심이고, 김 후보는 한때 친박이었다 비박으로 분류됐다.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는 당연히 서 후보로 향했다. 하지만 결과는 김무성 후보의 승리였다. 김무성 당시 대표는 당선 이후 “청와대에 할 말은 하겠다”라며 새로운 당정 관계를 선언했다.

이번에 선출되는 국민의힘 당대표는 2024년 총선을 지휘한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시사IN〉과의 전화 통화에서 “다수당이 되려면 수도권 선거에서 이겨야 한다. 상식적인 얘기다”라며 총선에서 수도권 선거 승리를 강조했다. 그는 이번 당대표 선거에서 “수도권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당원들이 적합한 인물을 뽑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안철수(성남 분당구갑)·윤상현(인천 동구미추홀구을) 의원 등 지역구가 수도권인 당권 주자들은 총선에서 수도권 승리의 중요성을 내세우며, ‘당대표의 수도권 험지 출마’를 요구하고 나섰다. 수도권 후보들이 ‘수도권 당대표론’으로 당심을 공략하자 “지역구민을 무시한 패륜적 발언이자 허장성세(장제원 의원)” “소장파였던 장제원이 꼰대가 됐는지(윤상현 의원)” 등, 영남을 기반으로 하는 ‘김장 연대(김기현 의원의 지역구는 울산 남구을, 장제원 의원의 지역구는 부산 사상구)’와 수도권 주자들 사이에 거친 언사가 오갔다.

엄경영 소장은 “지금 (경선 승리를 위해) 당권 주자들에게 필요한 건 국정 운영을 뒷받침할 능력과 총선 승리 가능성, (본인의) 미래 가치를 동시에 보여주는 행보나 메시지”라고 말했다. 낮은 지지율에 갇혀 있던 권성동 의원은 “윤석열 정부의 성공을 위해서”라며 1월5일 당대표 불출마를 선언했다. 국민의힘 중앙당 선거관리위원회는 조만간 전당대회 일정을 정하고 당원 선거인단 기준을 확정 지은 뒤, 2월 초 당대표·최고위원 후보 등록을 시작으로 3·8 전당대회를 치를 계획이다.

기자명 이은기 기자 다른기사 보기 yieu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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