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이슈를 지역 이슈로 확장해봐.” 회의 도중 푸르밀이 사업종료를 발표했다는 기사를 던지며 편집장이 말했다. 포털 뉴스스탠드에 걸려 있는 걸 보고 별 생각 없이 넘긴 그 뉴스였다. 다시 찬찬히 읽어보니 ‘푸르밀 공장은 대구와 전주에 있다’는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모순처럼 느껴진 편집장의 말을 취재 과정에서 깨달았다. 며칠 동안 푸르밀 직원들의 퇴직금과 위로금, 희망퇴직에 대한 뉴스가 쏟아졌다. 간혹 낙농가와 대리점주들이 상경해 집회를 열었다는 기사도 보였다. 하지만 지역 공장의 하청업체 직원들, 화물운송 노동자 이야기를 다룬 기사는 없었다.
지입 계약을 맺고 푸르밀 제품만 운반하는 화물운송 기사가 대구공장에만 47명이 있다. 화물연대에 따르면 이들의 평균 근속연수는 15년이다. 나이가 어려서 노동조합 간부를 맡았다는 화물 기사부터 30년 넘도록 푸르밀 제품만 운송한 기사까지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푸르밀의 전신인 롯데우유 시절 제품을 운반한 사연부터 대리점주들과의 관계, 노동조합 설립 이후 생긴 변화 등 다양한 이야기가 나왔다. 회사는 이들이 특수고용 노동자라는 이유로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았다.
회사는 11월10일 사업종료를 철회한 뒤 직원들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으며, 5~7개월 치 임금을 위로금으로 내걸었다. 하지만 화물운송 기사들에겐 아무것도 약속하지 않고 있다. 줄어든 물동량만큼 감소한 수입, 인원 감축에 대한 압박은 오롯이 개인들이 지고 있다. 홍승우 민주노총 화물연대 푸르밀지회장은 11월24일 〈뉴스민〉에 “영업 정상화 이후에도 뚜렷한 계획이 보이지 않는다. 회사는 퇴직 기사에 대한 보상도, 인원 감축에 대한 결정도 그저 없다고만 한다”라며 속상함을 토로했다. 매각 재추진부터 사업종료 철회, 그리고 영업 정상화를 공포한 최근까지 나는 이들에 대해 기사를 쓰고 있다.
‘전국 이슈를 지역 이슈로 확장한다’는 말의 뜻
지역 독립언론에 있다 보니 전국 일간지가 다루는 주요 뉴스를 ‘서울에 있는 언론이 쓰겠지’ 하고 넘기는 경우가 많았다. 푸르밀 대구공장 취재를 하며 그동안 놓친 이야기가 얼마나 많았을지 반성했다. ‘지역 언론이 현장 가까이에서 무엇을 쓸지 고민해야, 전국 이슈를 지역 이슈로 확장시킬 수 있구나’ 기사를 쓰면서 배웠다. 전국 일간지와 방송사가 쓰고 떠난 자리를 지역 독립언론은 긴 호흡으로, 끝까지 보도할 수도 있다는 것도 이젠 알겠다.
통상 범위를 넓힐 때 ‘확장한다’는 표현을 쓴다. 하지만 내가 사는 지역 뉴스보다 서울 뉴스를 더 많이 접할 수밖에 없는 한국 언론 환경 속에서 ‘전국 이슈를 지역 이슈로 확장한다’는 말은 모순이 아니다. 대구·경북에 살고 있는 이들에겐 ‘우리 지역 뉴스’가 더 가까이 있어야 한다. 서울 소식과 사건 중심으로 보도되는 ‘전국 이슈’가 우리 지역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지역 이슈’로 보도하는 일은 그래서 중요하다.
서울 사람들도 푸르밀 대구공장에서 만든 흰 우유와 전주공장에서 만든 가나 초코우유를 마신다. 지역 이슈와 전국 이슈, 이 둘은 무관하지 않다.
-
기사가 변화를 만들 때, 지역 독립언론은 빛난다 [미디어 리터러시]
기사가 변화를 만들 때, 지역 독립언론은 빛난다 [미디어 리터러시]
김보현 (<뉴스민> 기자)
가끔 기사가 변화를 만드는 경험을 한다. 다음 아이템에 대한 걱정이 밀려오기 때문에 대체로 찰나의 감정이지만, 이 뿌듯함은 일의 원동력이 된다. 얼마 전에는 문 닫은 공장 입구의 ...
-
지역 독립언론에서 경제 기자로 성장하기 [미디어 리터러시]
지역 독립언론에서 경제 기자로 성장하기 [미디어 리터러시]
김보현 (<뉴스민> 기자)
홍준표 대구시장이 취임하고 한 달 새 굵직한 기업 셋이 대구시와 투자 유치 협약을 맺었다. 지역 언론은 홍 시장이 악수하며 웃는 사진과 함께 대구의 들뜬 분위기를 전했다. 일자리 ...
-
서울과 비서울, 그리고 대구와 경북 [미디어 리터러시]
서울과 비서울, 그리고 대구와 경북 [미디어 리터러시]
김보현 (<뉴스민> 기자)
솔직히 말하면, 대구·경북 매체 〈뉴스민〉으로 이직할 때 나의 고려 사항에 경북은 없었다. 경북으로 취재를 간다거나 경북 주재 기자가 될 가능성은 상상하지 않았다.이직한 지 며칠 ...
-
유튜브는 합방하는데 뉴스는 왜 안 돼? [미디어 리터러시]
유튜브는 합방하는데 뉴스는 왜 안 돼? [미디어 리터러시]
신혜림 (CBS 유튜브 채널 ‘씨리얼’ PD)
2022년 초 얼떨결에 합류하게 된 프로젝트가 있다. 이름은 ‘토론의 즐거움’이다. 20년 차 일간지 기자, 한 매체의 전 편집장, 미디어 사회학자, 영화감독이자 국회의원, 청년 ...
-
“내가 아니라 사회에 갚아라”, 〈어른 김장하〉 울림을 담다
“내가 아니라 사회에 갚아라”, 〈어른 김장하〉 울림을 담다
창원·임지영 기자
경남 창원시 마산역에서 택시를 타고 10여 분 달려 창원의 한 아파트 단지에 내렸다. 주소에는 ‘2부두’라고 쓰여 있는데 바다가 보이지 않았다. 28층에 올라가자 김주완 기자가 문...
-
해고 노동자들이 연락했다, 당신 언론사를 후원하겠다고 [미디어 리터러시]
해고 노동자들이 연락했다, 당신 언론사를 후원하겠다고 [미디어 리터러시]
김보현 (<뉴스민> 기자)
지난해 겨울, 경북 구미공단을 찾았다. 이곳에 있는 일본 기업 아사히글라스의 한국 자회사 하청업체에서 2015년 노동조합을 만들었다가 한 달 만에 해고된 사람들을 만났다. 아사히글...
-
홍준표 시장이 외치는 ‘파워풀 대구’의 이면 [미디어 리터러시]
홍준표 시장이 외치는 ‘파워풀 대구’의 이면 [미디어 리터러시]
김보현 (〈뉴스민〉 기자)
온 동네에 ‘파워풀 대구’ 현수막이 붙은 지 1년이 되어간다. 홍준표 시장의 파워풀(powerful·강력한, 힘 있는)이 어떤 의미인지 매일 시의 행정을 살피는 〈뉴스민〉 기자들은...
-
솔루션 저널리즘, 지역에서 시작할 수 있을까 [미디어 리터러시]
솔루션 저널리즘, 지역에서 시작할 수 있을까 [미디어 리터러시]
김보현 (〈뉴스민〉 기자)
‘대구의 은둔형 청년 실태’에 대한 기사를 썼다. 교회 동생이 집 밖에 나오지 않는다는 친구의 말에 취재를 시작했다. 어렵게 당사자 인터뷰를 하고 대구시청과 시의회에 문의했다. 서...
-
사람이 죽어야만 기자가 오는 곳들이 있다 [미디어 리터러시]
사람이 죽어야만 기자가 오는 곳들이 있다 [미디어 리터러시]
김보현 (<뉴스민> 기자)
7월17일 오후 대구 남산역 인근의 〈뉴스민〉 편집국 회의에선 경북의 비 피해 소식을 어떻게 보도할지 논의했다. 이날까지 집중호우로 인한 대구‧경북의 사망자는 19명, 실종자가 9...
-
지역 언론이 살아남기 위한 몇 가지 방법 [미디어 리터러시]
지역 언론이 살아남기 위한 몇 가지 방법 [미디어 리터러시]
김보현 (〈뉴스민〉 기자)
매주 월요일 아침 8시50분, 뉴스레터를 발송한다. 이름은 ‘친절한 김 기자’. 지난주 대구경북 뉴스 중 하나를 꼽아 취재 후기나 비화 같은 걸 취재기자에게 질문하고 쓴다. 아이템...
-
‘미디어 사투리’ 붐, 어떻게 봐야 할까 [미디어 리터러시]
‘미디어 사투리’ 붐, 어떻게 봐야 할까 [미디어 리터러시]
김보현 (<뉴스민> 기자)
‘미디어 사투리’라는 말이 있다. 영화나 드라마의 등장인물이 구사하는 과장되거나 어색한 사투리를 일컫는 말이다. 예전에는 촌스러운 이미지가 강했다면 요샌 힙하고 쿨하다는 이미지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