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8일 저녁 이태원역 1번 출구 주변에 마련된 추모 공간의 모습.ⓒ시사IN 신선영

참사로 희생된 내국인의 장례가 모두 마무리됐다. 이태원 참사 국가애도기간도 11월5일로 종료되었다. 절차가 마무리됐다고 해서 애도하는 마음과 책임을 묻는 목소리가 잦아든 것은 아니다. 서울시청 앞에 놓인 정부 공식 분향소는 철거되었지만, 이태원역 1번 출구를 찾는 추모객은 여전하다. 국가의 책임을 따져 묻는 공간은 정치권으로 옮겨갔다. 이제 참사가 남긴 숙제는 정치의 몫이 됐다.

정치권은 11월1일을 이번 참사의 분기점으로 여긴다. 참사 발생 약 4시간 전부터 현장의 위험 징후를 알리는 시민들의 신고가 112 신고센터를 통해 접수되었고, 경찰이 초동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국가책임론이 부상했다. 문제는 이렇게 부각된 ‘책임’을 풀어가는 방식이다.

야권에서 지속적으로 요구하는 해결책 중 하나가 책임 있는 정부 당국자의 사퇴다. 그중에서도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용퇴가 참사 직후부터 거론됐다. 일단 이상민 장관 본인은 사퇴하지 않겠다는 뜻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11월7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긴급 현안 질의에 출석한 이 장관은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명한 적이 있느냐”라는 천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문에 “표명한 적 없다”라고 답했다. 사퇴 필요성을 묻는 질문에 대해서도 “주어진 현재 위치에서 제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정치적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유독 정부 당국자 가운데 이상민 장관에게 사퇴 요구가 쏟아지는 것은 그가 남긴 말 때문이다. 10월31일 참사 발생 직후 이 장관은 이태원 참사에 대해 “경찰이나 소방 인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참사 직후 경찰 대응에 허점이 발견되었고, 대응 인력을 제때 보냈다면 참사를 막을 수 있었다는 주장이 힘을 얻으면서 그의 초기 발언이 스스로의 발목을 붙잡았다. 이후 이 장관의 발언은 참사의 성격에 대해 반문하지 않는 선에서 도의적 책임감만 언급하는 방식으로 바뀐다. 이 장관은 11월4일 제6차 안전조정회의에서 “국민 안전을 책임지는 행안부 장관으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라고 발언한 데 이어 11월7일 국회에서는 “이런 일을 겪으면서 더욱더 열심히 해야 되겠다는 각오를 새롭게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11월4일 서울 조계사에서 열린 위령법회에서 처음으로 사과 발언을 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이례적으로 공개한 대통령의 34분 발언

이상민 장관의 ‘버티기’를 가능케 해주는 건 윤석열 대통령이다. 대통령실은 일관되게 특정 인사의 용퇴는 참사를 책임지는 방식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11월8일 김대기 대통령비서실장은 국회 운영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매번 사건이 터질 때마다 ‘장관 바꿔라’ ‘청장 바꿔라’ 이러는 것도 후진적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날 김대기 비서실장이 남긴 다른 발언은 이상민 장관 유임의 진짜 이유를 추측하게 한다. 김 비서실장은 이날 실무적인 이유를 언급하며 “지금 사람을 바꾸고 하는 것도 중요할 수도 있지만, 그다음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러면 또 청문회 열고, 뭐 하면 두 달이 또 흘러가고, 행정 공백이 또 생기고”라고 말했다. 청문회 같은 임명 절차의 부담, 내각 공백을 다시 맞닥뜨리는 것에 대한 부담감을 내비친 것이다.

5월10일 취임한 윤석열 대통령은 이제 막 ‘취임 6개월’을 지났다. 그러나 정부 첫 내각이 최종적으로 완성된 건 11월7일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을 임명한 이후다. 그동안은 18개 부처 장관 모두 출석한 국무회의를 열기 어려웠다. 참사 이전까지 윤석열 정부의 가장 큰 약점은 인사였다. 국정에 드라이브를 걸어야 하는 시점마다 인사 난맥이 이어졌고, 제대로 된 정책 어젠다를 부각시키기도 어려웠다. 더욱이 이상민 장관은 집권 초 경찰 내부 반발을 무마하면서까지 행안부 산하 경찰국을 신설한 윤석열 정부의 핵심 인사다. 윤석열 대통령이 선뜻 ‘장관 문책’을 꺼내들기 어려운 이유다.

대통령 본인도 문책의 방식에 대해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11월7일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가안전시스템 점검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의중이 드러난다. 대통령실은 이날 회의에서 대통령의 모두발언 가운데 34분을 영상으로 공개했다. 공개된 발언만 해도 1만 자 분량이다. 대통령이 주재하는 회의 영상이 이 정도 분량으로 공개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발언의 상당 부분은 참사에 대한 경찰의 대응을 질타하는 내용이었다. “현장에 나가 있었잖아. 112 신고 안 들어와도 조치를 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라며 반말이 섞인 발언도 여과 없이 공개했다.

34분 발언에서 정치적으로 눈여겨볼 점은 ‘책임지는 범주’를 언급한 대목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경찰 대응 문제를 지적한 직후 “경찰 전체를 잘못됐다고 질타하는 것은 아니다. 엄연히 책임이라고 하는 것은 있는 사람한테 딱딱 물어야 되는 것이지, 그냥 막연하게 다 책임져라, 그것은 현대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이 발언을 놓고 보면, 참사의 원인이 된 경찰 대응 미비에 관해 행안부 장관이 총체적으로 책임지고 사퇴하는 것은 윤 대통령 관점에서 ‘현대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 된다.

그러나 이상민 장관의 ‘버티기’는 여당인 국민의힘에 큰 부담이 된다. 조직강화특별위원회(조강특위)를 가동 중인 국민의힘은 내년 초 당대표 선거 이전에 69곳 당협위원장을 채우며 내부 정비를 해야 하는 시점이다. 당무감사를 비롯한 당 재정비 일정 전반이 이태원 참사로 인해 지연되었다. 자연스럽게 새 당대표 선출 일정도 늦춰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판사 출신인 이 장관은 국민의힘과의 접점이 옅은 편이다. 참사에 대한 정부책임론을 방어하는 여당으로서는 전선을 ‘행안부 장관 보호’까지 넓히는 게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주요 당권주자와 중량감 있는 인사들은 이상민 장관을 털어내고 가야 한다는 기류를 만들고 있다. 당권 도전에 나선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11월9일 CBS 라디오에 출연해 “저는 (이 장관이) 스스로 사퇴 표명을 하셔서 대통령의 부담을 덜어드리는 것이, 그게 국민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이 장관 사퇴설에 힘을 싣는 여권 인사들 중에는 주무 부처인 행안부가 참사 여파를 어느 정도 수습한 뒤, 상당한 시일이 지난 다음에 물러나야 한다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안 의원은 이날 “최소한 해야 할 도리를 하고”라며 가능한 한 빨리 스스로 용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홍준표 대구시장도 11월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세월호 참사 당시) 갓 임명된 행안부 장관은 왜 바로 해임되었나? 정치책임을 져야 할 자리에 있었기 때문이다. 정치책임은 사법책임과는 달리 행위책임이 아니기 때문에 진상규명과 상관없이 신속히 이루어져야 한다”라고 언급했다. 홍 시장이 언급한 ‘갓 임명된 행안부 장관’은 2014년 4월2일에 임명된 강병규 당시 안전행정부 장관을 뜻한다. 취임 2주일 만에 세월호 참사에 직면한 강 장관은 국회에서 해경과 해양수산부에 책임을 미루는 듯한 발언을 해 여야 모두에게 강하게 질타받았다. 당시 국회 안행위에서 현안보고를 받던 새누리당 소속 7선 서청원 의원도 “잘못했다고 얘기하라. 당신이 죄인이다”라고 호통을 쳐 화제가 되기도 했다. 결국 강 장관은 그해 7월에 물러났는데, 당시 분위기만 놓고 보자면 현 시점 이상민 장관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여야 할 것 없이 정치권에서 당연한 수순에 가깝다. 홍 시장의 말처럼 임명직 장관에게 사법상 책임보다 정치적 책임이 앞서기 때문이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11월7일 국회 현안 질의에서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명한 적 없다”라고 말했다. ⓒ시사IN 신선영

종교계와의 만남 계속하는 이유

이상민 장관보다 더 큰 정치적 책임은 한덕수 국무총리, 그리고 윤석열 대통령에게로 향한다. 윤 대통령은 11월4일 대한불교조계종 조계사에서 열린 위령법회에 참석해 “다시는 이러한 비극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큰 책임이 저와 정부에 있음을 잘 알고 있다”라며 처음으로 사과 발언을 했다. 이 사과를 기점으로 윤 대통령의 정치적 움직임도 달라졌다. 11월4일 사과 이전까지 윤 대통령은 매일 희생자 추모 분향소를 찾아 조문을 올리는 것으로 ‘애도’에 초점을 두었다. 그러나 11월4일 첫 사과를 꺼낸 이후로는 크게 두 가지 움직임에 집중했다. 하나는 경찰을 비롯해 실무진을 문책하며 진상규명과 수사에 속도를 내는 것, 그리고 나머지는 최대한 종교계와의 접점을 넓히는 것이다.

11월4일 조계종 방문을 시작으로, 윤석열 대통령은 11월5일 보수 기독교 교단이 중심이 된 ‘한국교회 이태원 참사 위로 예배’에 참석했다. 김장환 극동방송 이사장, 김삼환 명성교회 원로목사 등이 함께 자리하고, 윤 대통령도 연단에 올랐다. 다음 날인 11월6일에는 서울 명동성당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추모 미사에 참석함으로써 주요 종교 행사를 모두 방문했다. 이후에는 종교계 원로와의 만남을 연이틀 이어갔다. 11월7일과 8일 이틀간 윤 대통령은 불교·개신교·가톨릭 인사들을 만나 ‘종교계 경청’ 자리를 마련했다. 국가지도자가 닷새 동안 종교 관련 행사와 간담회에 하루도 빠짐없이 참석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참사 이후 윤석열 대통령은 국가지도자의 사명을 실무진에 대한 단죄와 국민을 대표해 애도를 수행하는 것으로 정립했다. 현실 속에서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는 대신 종교 행사에서 희생자에 대해 기도하는 것으로 공동체가 겪은 참사 후유증을 수습하려 했다.

그런데 한편으로 이 같은 행보는 참사로 인한 정치적 손실을 최소화하는 선택이기도 하다. 이태원 참사로 위기를 맞은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은 30% 내외에서 크게 움직이지 않고 있다. 한국갤럽 정례조사에 따르면, 이태원 참사 직전 30%를 기록한 대통령 직무수행 긍정 평가 비율은 참사 직후인 11월1~3일에 29% 수준을 나타냈다. 11월6일부터 8일까지 실시한 ‘KBS-한국리서치 대통령 취임 6개월 여론조사’에서도 대통령 국정운영에 대해 긍정 평가는 30.1%, 부정평가는 64.9%로 집계됐다(전국 만 18세 이상 1000명 대상, 95% 신뢰수준에서 오차±3.1%포인트). 정부에 책임이 있는 대형 참사가 일어났는데도 대통령 지지율은 ‘더는 나빠지지 않는 상황’에 놓인 셈이다. 바꿔 말하면 이 30% 지지층이 이태원 참사에 대한 정권 차원의 책임론을 막아주는 방파제로 작동한다고 볼 수 있다.

30% 지지층을 단단하게 엮어주는 것은 북한이다. KBS-한국리서치 여론조사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이들 중 39.8%가 ‘대북 강경 대응’을 평가의 이유로 꼽았다. 이태원 참사 이후에도 미사일 발사를 계속하고 있는 북한의 위협과 대북관계 불안이 대형 참사에도 불구하고 강성 보수층을 결집시키고 있다는 의미다. 이상민 장관이 ‘버티는’ 원동력이 대통령이라면, 대통령이 고위층 문책을 계속 회피할 수 있는 원동력은 대북 강경 모드를 통한 보수층의 결집이다.

하지만 주요 인사에 대한 책임을 언제까지 회피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앞서 KBS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73.8%가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안전행정 책임자를 경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질이 필요하다는 응답자 가운데 78.9%는 적어도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까지는 경질해야 한다고 답했다. 30%의 지지율에 안도하며 정치적 책임에서 눈을 돌릴지, 아니면 외연 확장을 위해서라도 용단을 내릴지는 11월11일부터 16일까지 예정된 캄보디아·인도네시아 순방 이후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기자명 김동인 기자 다른기사 보기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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