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즈였다. 엄마 아빠가 돌아가신 까닭은. 어른들이 쉬쉬했지만 굳이 그럴 필요 없는 일이었다. 돌아가신 ‘이유’가 문제는 아니었으니까. 돌아가신 ‘이후’가 문제였지. 늘 곁에 있던 엄마 아빠가 이젠 없다는 것. 외삼촌과 외숙모가 아빠와 엄마의 자리를 대신한다는 것. 분명 혼자가 아닌데도 결국 혼자일 수밖에 없다는 것. 여섯 살 카를라의 1993년 여름은 그래서, 여느 여름과 같을 수가 없었다.

고마운 친척이지만 그래도 엄마 아빠는 아닌 어른들과, 귀여운 아이지만 그래도 친동생은 아닌 사촌동생과, 놀기 좋은 시골이지만 그래도 나고 자란 도시만큼 편하진 않은 집에서 첫 여름을 났다. 신나게 뛰어놀다가도 까닭 모를 울음이 터져 곤란했던 날들이 쉬이 잊히지 않았다.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또렷한 그때의 기억으로 장편 데뷔작 〈프리다의 그해 여름〉(2017)을 만들었다. 베를린 국제영화제 데뷔작품상을 받고 감독 카를라 시몬은 말했다.

“그때 느낀 감정들을 어떻게 추슬러야 하는지는 잘 몰랐다. 아이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걸 감당할 능력까지 있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프리다의 그해 여름〉 보도자료).”

5년 만에 두 번째 영화를 완성했다. 이번에도 계절은 여름, 이번에는 외할아버지 농장. 여섯 살의 특별했던 ‘그해 여름’을 빼고 생애 대부분의 여름을 보낸 곳에서 이야기를 수확했다. 평생 땅을 일구고 나무를 심고 열매를 따며 살아오신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처음으로 해본 이 생각이 시작이었다. “언젠가 이 복숭아 나무들까지 사라지는 걸까?”

항상 그 자리에 있을 것 같은 존재가 사라지면 더불어 함께 존재하던 것들은 어떻게 될지 걱정하며 시나리오를 썼다. 대대로 복숭아 농사를 짓는 가족이 땅을 빼앗기고, 더 이상 농업을 지속할 수 없게 되는 이야기를 지었다. 다 같이 힘을 합쳐 복숭아를 수확하는 마지막 여름의 감각을 상상했다.

할아버지의 복숭아 농장이 있는 스페인 카탈루냐 지역 시골에 가서 영화를 찍었다. ‘땅을 잃는다는 감정을 이해하는 농부들이 직접 연기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그 지역 농부들과 그들의 가족으로 영화 속 대가족을 꾸렸다. 햇빛은 눈부시고 복숭아는 탐스럽고 아이들은 뛰어놀고 어른들은 버텨내는 이야기. 영화 〈알카라스의 여름〉으로 이번엔 베를린 국제영화제 최고상(황금곰상)을 받고 감독은 말했다. “누구나 가족이 있고 모든 나라에 농업이 있다. 이것은 보편적인 주제다(〈알카라스의 여름〉 보도자료).”

여름이 갔다. 하지만 어떤 여름은 가지 않는다. 거기 그대로 머물러 있는 계절도 있다. 카를라 시몬의 영화에 담긴 두 번의 여름을 겪어낸 나는, 언젠간 사라지는 것들이 아직은 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한다. 그의 여름 덕분에 나의 가을이 또 한 번 풍성해짐을 감사하게 된다(〈프리다의 그해 여름〉도 4년 전 가을에 개봉했다). 모든 장면이 좋지만 이번에도 역시 마지막 장면이 특히 좋다.

기자명 김세윤 (영화 칼럼니스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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