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7월22일 권영세 통일부 장관(왼쪽)으로부터 부처 업무 보고를 받고 있다.ⓒ대통령실 제공

북한은 한국 정치가 다루기 까다로운 ‘숙제’다. 쉽게 정쟁화하는 경향이 있어서다. 색깔론은 국내 정치에서 곧잘 발화했던 이슈다. 그런 의미에서 윤석열 정부가 밝힌 ‘북한 방송 단계적 개방’ 추진이 눈길을 끈다. 보수 세력은 주로 북한에 대해 제재·봉쇄, 진보 세력은 대화·관여 정책을 펼쳤다는 차원에서도 마찬가지다. 이전 보수 정부와는 결이 다른 태도다.

7월22일 권영세 통일부 장관은 윤석열 대통령에게 업무 보고를 했다. 2022년 통일부 주요 업무 추진 계획을 ‘3대 원칙, 5대 핵심과제’로 밝혔다. 5대 핵심과제 중 하나인 ‘개방과 소통을 통한 민족동질성 회복’의 세부 방안에는 “소식을 전하는 사업(언론·출판·방송 등)의 단계적 개방”이 있다. 이를 통해 “(남북의) 상호 이해와 공감대를 넓혀간다”는 목표다.

가장 앞장서는 이가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이다. 태 의원은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를 지낸 탈북자 출신 정치인이다. 그는 북한 방송의 선제적 개방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다 ‘빨갱이’ ‘이중간첩’이라는 공격에 시달리기도 했다. ‘북한의 선전선동에 넘어간다’라거나 국가안보가 위협당할 것이라는 전통 보수층의 반대가 거셌다. 그는 ‘세계 10위 경제, 〈기생충〉·〈오징어 게임〉·BTS 등 문화적 위상’ 등 한국의 현실을 고려하면 과도한 우려라고 반박했다.

과거에서 한발 더 나아간 논의이기도 하다. 지난 2월25일 국민의힘이 발표한 대선공약집에는 “남북 간 단절과 대결을 상호 개방과 소통·교류로 전환-언론출판 교류·방송 개방 추진”이라고 쓰여 있다. 윤석열 정부 집권 후, 북한 방송 개방이라는 정책에 ‘상호’라는 단어가 빠지고 ‘선제적’이란 말이 쓰였다. 이 의미는 다음과 같이 입법부에서 설명된 바 있다.

8월18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태영호 의원은 권영세 장관에게 “역대 정부들은 북한 매체 개방에서 ‘상호’라는 말을 많이 했는데, 최근 장관께서 (북한 매체 개방을 언급)한 것은 우리의 선제적 개방으로 이해해도 되나?”라고 물었다. 권 장관은 “그렇다. 궁극적으로 같이 개방하는 게 좋은데 지금 북측에서 호응이 별로 없는 상황이다”라고 답했다. 북한의 결정과 상관없이 한국의 각 TV에서 북한 방송을 볼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현재도 북한 방송을 한국에서 볼 수는 있다. 국립중앙도서관 내 북한자료센터 사용을 사전 예약 후 직접 가야 한다. 9월5일 태영호 의원실이 주최한 토론회에 참석한 김성민 자유북한방송 대표는 “(저는) 특별한 승인 절차 없이 위성안테나(130만원)를 설치해 월 16만원 사용료를 내고 북한 위성TV를 청취하고 있다”라고 밝혔지만, 이 또한 문턱이 높다. 별도의 수고 없이 북한 방송을 볼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 윤석열 정부의 계획이다.

9월20일 국회 본회의에서 한 번 더 이 이슈가 언급됐다. 눈길을 끄는 대목이 있다. 검사 출신이며 국민의힘 4선 의원인 권영세 장관조차 ‘빨갱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태영호 의원은 ‘북한 방송 선제적 개방’에 대한 지지가 높게 나온 여론조사를 언급하며 권 장관에게 필요한 조치를 조속히 취해달라고 주문했다. 권 장관은 이렇게 답했다.

“우리가 (북한 방송 개방에 대해) 무조건 수세적·방어적이던 때는 지났다. 국민의 안보의식 등이 굉장히 성숙했다. (중략) 저도 빨갱이라는 얘기를 듣고 있습니다마는 새로운 길을 갈 때는 쉽지 않은, 비판이라든지 저항이 있다는 부분을 충분히 알고 있다. 국가와 국민에게 도움이 된다면 비판을 감수하고라도 그 길을 열어나가는 게 필요하다. 노력하겠다.” 일부 보수층의 반발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이를 딛고 정책을 펼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인 셈이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는 이러한 북한 방송 개방이 ‘변하는 보수정당’의 새 전략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자신이 제안한 정책이라고 8월13일 기자회견에서 말했다. 당시에는 윤석열 대통령과의 갈등이 주로 부각돼, 이 전 대표의 “저에 대해서 이×× 저×× 하는 사람을 대통령 만들기 위해 당대표로서 열심히 뛰어야 했다”와 같은 발언에 가려져 덜 주목되었다.

김문수 경제사회노동위원장이 10월13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국회사진기자단

“국가보안법까지도 논쟁할 수 있다”

통일부는 북한 방송 개방의 의미를 “민족의 동질성 회복”이라는 차원에서 설명하지만, 이준석 전 대표는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사에서 누차 언급되었던 자유라는 가치에 대한 체계화된 정책 시리즈”라고 주장했다. “보수 정권이기 때문에 (우리만) 할 수 있는, 북한의 민낯을 노출하는 북한 방송 개방까지 추진해서 저들에게 우리 문화의 개방을 끝없이 요구하고, 무엇보다 북한 정권이 스스로 폐쇄성과 문화 콘텐츠의 상대적 저열함을 부끄러워하도록 하자는 취지로 이야기했다.”

이 전 대표의 발언에 대해 “세지만 공감한다”라는 국민의힘의 한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 국민의힘은 자유를 ‘반공’으로 여기는 전통 지지층과 ‘개인’으로 이해하는 새 지지층이 섞여 있다. 체제 경쟁이 끝난 때 태어난 2030이 후자이고, 이준석이 대표 주자다. 결과적으로 국민의힘은 그 방향으로 가야 살아남는다고 본다. 한국 사회의 소득과 교육수준이 점점 올라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보수가 북한에 대해서도 ‘자유’라는 가치로 공세적으로 나가면 민주당이 설 자리가 없다. 국가보안법까지도 논쟁할 수 있다.”

실제 북한 방송 개방 이슈에는 국가보안법 관련 논의가 자주 따라붙는다. 현행 국가보안법은 표현의 자유, 양심·사상의 자유 등을 침해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관련 연구도 있다. 2018년 9월 한국법제연구원이 펴낸 논문 ‘남북방송교류의 법제화 방안 연구(이준섭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북한 방송 개방과 국가보안법 이슈를 다양한 측면에서 검토한다. 국가보안법 적용 예외규정 신설을 고민해야 한다는 내용도 있다. 국회에서도 질문이 나왔다. 권영세 장관은 “공식 사실 보도를 하는 (북한) 매체 (개방이)라면 국가보안법 개정 없이도 할 수 있지 않겠나 하는 생각도 해보지만, 조금 더 검토를 해보겠다”라고 답했다.

하지만 최근 이러한 흐름은 다른 분위기를 마주하고 있다. 국민의힘의 한 초선 의원은 “요즘 안보 상황이 워낙 좋지 않다 보니 지지자들이 예민하고… 그런 말(북한 방송 선제적 개방)을 하기가 좀 그렇다”라며 손사래를 쳤다. 북한의 도발이 계속되고 7차 핵실험이 이뤄질 수도 있다는 전망이 커지면서, 북한에 대한 강경 발언 외에는 언급하기가 껄끄럽다는 의미다. 이준석 전 대표가 정진석 비상대책위원회를 상대로 낸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이 기각·각하된 것도 이런 분위기를 만드는 데 한몫을 했다.

대신 정부·여당은 색깔론을 꺼내드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북한 이슈는 다시금 보수세력의 고전적 무기로 등장했다. 10월13일 김문수 경제사회노동위원장이 국정감사에 출석해 “문재인 전 대통령이 신영복 선생을 가장 존경하는 사상가라고 한다면 확실하게 김일성주의자다”라고 주장했다. 정진석 국민의힘 비대위원장 또한 10월1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문재인 전 대통령이 김일성주의를 추종하는 사람이 아닐까 의심하는 사람이 김문수 한 사람뿐입니까?”라고 썼다.

정점은 윤석열 대통령이 찍었다. 10월19일 국민의힘 원외 당협위원장들과의 오찬 자리에서 윤 대통령은 “종북 주사파는 반국가 세력이고, 반헌법 세력이다. 이들과는 협치가 불가능하다”라고 말했다. 협치의 대상으로 지목되어온 더불어민주당을 중심으로 반발이 나오자, 다음 날 기자들이 윤 대통령에게 발언의 의미를 물었다. 그는 “주사파인지 아닌지는 본인이 잘 안다. 저는 어느 특정인을 겨냥해서 한 얘기가 아니고, 대통령은 헌법을 수호하고 국가를 보위해야 될 책임이 있는 사람이기에, 마침 또 거기에 대한 얘기가 나와서 제가 답변을 그렇게 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뿐만 아니라 10월13일 윤석열 대통령은 전술핵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대해서도 “지금 국내와 미국 조야에 확장 억제와 관련한 다양한 의견들이 나오기 때문에 잘 경청하고 다양한 가능성을 꼼꼼하게 따져보고 있다”라고 말했다. 대선후보 시절 그리고 임기 초 5월 CNN과 인터뷰하면서 전술핵 재배치에 대해 부정적으로 답했던 것과 대조되는 모습이었다. 국민의힘 당권 주자로 꼽히는 김기현·조경태 의원은 더 나아가 핵무장까지 주장했다.

국민의힘의 또 다른 관계자는 “집토끼 다지기가 중요한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보수 단속이 우선이라는 판단에서다. 한국갤럽 정례 조사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은 지난 6월 이후 하락세가 이어졌다(〈그림 2〉 참조).

ⓒ시사IN 최예린

북한 이슈에 반응하는 보수층 겨냥

위기 상황을 타개할 방법으로 ‘북한 이슈에 더 강렬하게 반응하는 보수층’을 겨냥했다는 해석이다. 전체 여론은 ‘북한 미사일 발사가 한반도 평화에 위협적(71%)’이지만 ‘평화·외교적 해결 노력이 계속(67%)’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이념 성향으로 나눠 살피면, 보수(82%)는 중도(71%)나 진보(61%)보다 더 ‘북한 미사일 발사가 위협적’이라고 느낀다. 북한의 핵·미사일에 대해선 군사적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응답한 사람 또한 보수(45%)가 중도(22%)나 진보(10%)보다 더 많다(〈그림 1〉 참조, 자세한 내용은 중앙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이에 따른 대증적 처방이 나오고 있다는 진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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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의 또 다른 초선 의원은 지금의 흐름을 ‘나쁜 시그널’로 보고 있다. “선거는 결국 외연 확장이다. 청년, 중도를 가져와야 이긴다. 총선에서 국민의힘 공천만 받으면 되는 곳 빼고는, 다 그렇다. 대선은 더 그러하다. 그게 선거의 ABC다. 이준석 대표만 그런 게 아니라, 이명박·박근혜 대통령도 그렇게 이겼다. 자유한국당 시절만 빼고. 지금처럼 가는 건 단기 처방이다.”

북한 이슈를 대하는 국민의힘의 태도는 그래서 그 자체로 관전 포인트다. 지금 보수정당은 두 갈래 길에 서 있다.

기자명 김은지 기자 다른기사 보기 smi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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