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현대가 10월8일 35라운드 전북현대와의 대결에서 2-1로 역전승을 거두었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2022시즌 프로축구 K리그1이 종착역을 눈앞에 두고 있다. 10월23일이면 8개월간 달려온 레이스를 마무리한다. 예년보다 마무리 일정이 앞당겨졌다. 11월에 개막하는 2022 카타르월드컵 때문이다. K리그1(1부 리그)과 K리그2(2부 리그) 사이 승격 팀과 강등 팀을 가리는 승강 플레이오프도 10월 내에 모든 일정이 끝난다.

이번 시즌 K리그1에서 두드러지는 특징은 역학 관계의 역전이다. 정상에 도전하는 울산현대가 결정적 고비를 넘어선 것이 대표적이다. 라이벌 전북현대와 마지막 대결(35라운드)에서 승리했다. 팬들 사이에서는 ‘어우현(어차피 우승은 현대)’이라는 말도 있지만, 우승 싸움이 두 팀의 양강 구도로 본격화한 시점은 2019년부터다. 시즌 내내 선두를 달리던 울산이 번번이 막판에 미끄러졌다. 3년 연속 전북에 ‘역전 우승’을 허용했다. 축구 관계자들은 그 차이를 멘탈 문제로 구분했다. 기 싸움에서는 전북이 늘 우위였다. 정상을 목전에 두고 무너지는 울산에는 ‘가을 트라우마’가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이번 시즌 분위기는 다르다. 우승 트로피에 새길 팀명이 ‘울산현ㄷ’까지 선명해진 수준이다. 10월13일 현재 리그는 아직 두 경기가 남아 있고, 울산은 승점 1만 보태면 자력으로 우승한다. 그러나 결과와 상관없이 인상적인 것은 우승 열망을 현실화하려는 선수들의 멘탈 변화다. 목표를 향해 흔들림 없이 나갈 수 있도록 만든 이가 홍명보 감독이다. 외부에서의 평가가 아니라 선수단 내부에서 나오는 목소리다. 주장 이청용은 “감독님이 오신 뒤로, 약점이었던 멘탈 문제가 좋아졌다. 선수들이 확신을 갖고 한 방향으로 나아간다”라고 말했다.

울산에는 스타플레이어가 많다. 전방의 이청용과 엄원상부터 골문을 지키는 조현우까지, 전 포지션에 걸쳐 국가대표 혹은 대표급 선수들이 즐비하다. 개성 넘치고 자의식 강한 선수들을 하나로 결속시키기란 쉽지 않다. 이런 면에서 홍명보라는 이름은 그 자체로 특효가 있다. 한국 축구의 신화를 이끈 선수 시절부터 연령별 대표팀을 거친 지도자 경험, 행정가(대한축구협회 전무이사)로 쌓은 실무 감각까지 두루 갖춘 그의 말은 권위가 있다. 특히 짧고 강렬한 메시지를 통한 동기부여에 능하다. 스페인 출신 명장 비센테 델보스케는 “리더는 존경의 대상이고, 보스는 두려움의 대상”이라고 했다. 홍명보 리더십은 전자에 가깝다. 감독의 권위로도 통제하기 까다로운 선수라고 알려진 박주영이 ‘백의종군’ 자세로 홍명보 감독을 찾아간 것이 단적인 예다. 국가대표 수비수 김영권이 해외 구단의 고액 연봉 제안을 마다하고 울산에 합류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개성 강한 선수들을 하나로 결속시키는 메시지가 이번 시즌 내내 주효했다. 구단 자체 제작 다큐멘터리 〈푸른 파도〉에서 홍 감독이 선수들의 마음을 어떻게 사로잡는지 엿볼 수 있다. 이전 경기에서 득점을 내지 못해 팀 분위기가 다소 가라앉은 상황. 홍명보 감독은 팀 토크(Team Talk)에서 이렇게 말한다. “여러분에 대한 평가는 내 입에서 나온 것만 믿으면 돼. 밖에서 아무리 잘못했다고 하더라도 내가 잘했다고 하면 잘한 거고, 밖에서 아무리 잘했다고 해도 내가 못했다고 하면 못한 거야. 왜? 나는 이 팀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이니까.”

지난 10월8일 전북과의 맞대결에서도 이런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한다. “오늘 (홈 관중) 2만명 온 거 봤어? (울산이) 더 나은 경기력을 보여야 할 이유야. 다른 사람이 아닌 여러분이 주인공이어야 해.” 선수들은 자신을 믿어주는 리더를 따른다. 이날 울산은 전북에 선제골을 허용하고도 후반 추가시간 연속골에 성공하며 2-1 역전승을 거뒀다. 마지막에 승부를 뒤집는 힘은 대체로 정신력에서 나오고, 울산은 올해 역전으로 챙긴 승리가 많다. 스스로 ‘가을 트라우마’를 깨트리고 있는 울산의 마무리가 궁금하다.

포항·인천·강원은 약진, 수원·서울은 부진

울산과 전북을 제외하고 6강에 진입한 팀들의 면면이 흥미롭다. 3위를 유지하고 있는 팀이 포항스틸러스다. 개막 전 다수 전문가들에게 강등 후보로 지목된 팀이지만, 전력 약화와 환경적 변수(시즌 초 홈구장 보수, 시즌 막바지 태풍 힌남노 피해로 홈 이점을 반납)에도 불구하고 저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 기세를 유지한다면 3위로 마무리할 가능성이 높다. K리그 3위 팀은 다음 시즌 AFC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확보한다.

인천유나이티드도 6강 진입으로 화제를 모은 팀이다. 인천은 이제 강등권이 아니라 챔피언스리그 티켓을 노리는 팀이 됐다. 인천의 김재성 코치는 매 시즌 잔류를 고민하던 팀이 시즌 초 선두 자리까지 넘보던 팀으로 변모한 배경에 대해 “소모성 에너지를 줄이는 데 초점을 맞췄다”라고 전한다. 공격수들은 전방 압박으로 상대를 저지해 수비 지역(수비 에너지)을 보호하고, 수비수들이 올라선 상황에서는 역습(수비 복귀 에너지)을 허용하지 않도록 상대 진영에서 볼을 끊는 식이다. 볼을 빼앗은 상황에서 패스가 5회 이상 성공하지 못하고 상대에게 다시 빼앗긴다면 역시 에너지 소모다. 이렇게 디테일한 접근으로 전술적 움직임을 다진 결과 승점과 순위를 챙기는 팀이 됐다.

6강에 진입한 또 다른 팀, 강원FC의 도약도 극적이다. 불과 1년 전 강원은 강등 직전에 몰린 위기의 팀이었다. 지난 시즌 막판 부임한 최용수 감독이 승강 플레이오프 역전승을 이끌며 가까스로 잔류했다. 이번 시즌에는 파이널 A(상위 여섯 팀이 경쟁한다)로 올라섰다. 걸걸한 입담과 웃음에 가려지곤 하지만, 최 감독의 리더십도 분석 대상이다. 선수단을 장악하는 카리스마가 전략가의 면모로 드러날 때 팀이 어디까지 올라설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특히 무더위라는 변수를 이용해 체력과 결정력으로 승부를 낸 여름의 질주가 뜨거웠다. 이 시기 쌓은 승점이 파이널 A 진입의 원동력이 됐다.

만년 강등 후보로 거론되던 팀들이 파이널 A로 올라섰다는 말은 상위권에서 싸워야 할 팀들이 파이널 B(하위 여섯 팀 경쟁)로 떨어졌다는 의미다. 수원삼성과 FC서울이 대표적이다. 최고 스타들을 양분하며 막강한 전력으로 해마다 우승을 다투던 라이벌 구도도 옛말. 앞서거니 뒤서거니 탈강등 싸움을 벌이는 동반자(?)가 됐다. 이번 시즌 두 팀의 부진에는 공통점이 있다. 골게터 부재다. 36라운드 기준 수원은 38골, 서울은 41골을 기록했다. 그나마 하반기에 수원은 오현규, 서울은 일류첸코와 조영욱의 득점포 가동으로 숨통이 트였다. 그래도 만족할 수준은 아니다. 팀 득점으로 순위를 매기면 뒤에서 두 번째(수원), 세 번째(서울) 위치다. 긴 부진에 팬들의 인내심도 한계에 달했다. 잦은 패배로 강등이 현실화하자 팬들이 ‘감독 아웃’을 외치거나 선수단 버스를 가로막는 행위로 분노를 표하고 있다. 시즌이 끝나기도 전에 감독이 팬들 앞에서 사과하며 고개 숙이는 장면이 나온 것까지 닮은 풍경이다. 국제축구연맹(FIFA)에서도 인정한 두 팀의 라이벌전 ‘슈퍼매치’를 두고 팬들은 초성을 따서 ‘슬퍼매치’라며 자조하는 분위기다. 두 팀 중 한 팀은 승강 플레이오프를 피할 수 없는 운명이 현실이다. 

기자명 배진경 (전 ⟨포포투⟩ 편집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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