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구

처음부터 스스로 한국행을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아일랜드 태생의 함 패트릭 신부(55)가 처음 한국에 온 것은 1991년, 아직 신학생이던 때였다. 해외 선교 실습을 나가게 된 그에게 담당 신부님이 한국으로 가보는 것은 어떻겠느냐고 추천했다. 한국 지부에 예산과 인원이 부족해 도움이 필요하다는 이유였다. 같은 신학교에 한국인 친구도 있었기에 한국이 낯설지 않았던 그는 흔쾌히 수락했다. 신학생 신분으로 장애인들을 만나 함께 실내화 만드는 일을 하며 대화를 나눴고, 이주노동자들과 상담을 했다. 30년 넘는 한국과의 인연이 이렇게 시작되었다.

1995년 사제 서품을 받은 후 함 신부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선교 실습 당시 만났던 이주노동자들과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경기도 안양, 의정부 상담소에서 이주노동자들을 만났다. 당시에도 가장 큰 문제는 산업재해와 임금체불이었다. 함 신부는 때로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노동부를 방문해 항의하기도 하고, 그들이 일하는 공장에 찾아가 고용주의 의견을 듣고 노동조건에 대한 양측의 입장을 중재하기도 했다. 그렇게 자신 역시 이주민인 그가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지낸 지 11년, 작은 전환점이 생겼다.

안식년을 맞아 아일랜드에 돌아간 그는 평화학 공부를 선택했다. 계기는 의정부에서 이주민 사목을 하며 보고 배운 것들이었다. 미군의 요청으로 군부대에서 미사를 드리기도 했던 그는 늘 “왜 이렇게 많은 군인, 그것도 외국 군인이 한국에 필요할까” 하는 의문을 가졌다. 한국과 유사하게 분단국가이자, 군사적 긴장감이 남아 있던 아일랜드에서 자란 경험도 평화에 대해 관심을 갖게 만들었다. 1년여간의 배움이 끝나고 난 뒤 그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번엔 평화운동을 하기 위해서였다.

평화운동가로서 그의 주요한 첫 행보는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반대였다. 2011년 제주도 서귀포시 강정마을에 해군기지 건설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후로 그는 꾸준히 강정마을을 찾고, 강정마을의 이야기를 알리는 데 집중했다. 그 노력의 결실로 아일랜드에서 강정마을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겠다며 찾아오기도 했다. 비자 연장이 취소될 뻔한 위기도 있었지만 그는 평화운동을 저버리지 못했다. 2016년부터는 사드 배치가 이뤄진 경북 성주 소성리를 찾아가 주민들과 연대하고 있다.

이제 그는 또 새로운 꿈을 꾼다. 강원도 삼척 화력발전소 건설을 보고 환경문제에까지 관심이 뻗어갔다. 그는 성직자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갈등의 현장에 함께 있어주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실상 늘 패배하기만 했던 싸움, 지친 마음에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는지 묻자 함 신부는 “아직은 한국이 너무 좋아요”라고 답했다.

기자명 주하은 기자 다른기사 보기 ki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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