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개국 외교사절단이 9월26일 세계박람회 유치 준비 과정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부산은 2030년 세계박람회(엑스포)를 개최할 수 있을까. 엑스포 유치는 부산시의 최대 당면 의제다. 2019년 문재인 정부는 이를 국가사업으로 선정했고, 윤석열 대통령 역시 공약으로 내세웠다. 지자체뿐만 아니라 정부 부처와 국회, 재계까지 발 벗고 나섰다. 민관 합동으로 2030 부산세계박람회 유치위원회(유치위)를 꾸렸다. 개최지는 내년 초 각국 대표의 실사를 거쳐, 그해 11월 국제박람회기구(BIE) 회원국 투표로 선정한다. 상황은 녹록지 않다. 회원국 상대 유치전은 험난하고, 국내에서는 방탄소년단(BTS) 병역특례론으로 논란이 일었다.

엑스포는 각국 산업과 문화를 전시하는 국제행사다. 월드컵, 올림픽과 더불어 3대 메가 이벤트로 불린다. 시초는 1851년 런던에서 열린 만국박람회다. 엑스포는 ‘등록(registered) 엑스포’와 ‘인정(recognized) 엑스포’로 나뉜다. 5년에 한 번 개최하는 등록 엑스포가 위상이 더 높다. 부산이 유치하려는 2030 엑스포는 등록 엑스포다. 1993년 대전엑스포, 2012년 여수엑스포는 인정 엑스포다.

대전·여수 엑스포는 명암을 남겼다. 사회간접자본 투자로 도시 발전에 탄력을 받았으나, 막대한 적자가 나 지자체에 부담을 지웠다. 여수엑스포는 방문객이 예상치를 크게 밑돌았다. 지역에서 예상했던 만큼의 경제효과가 나지 않았다. 대전엑스포는 관람객 1400만명이 찾아 성공 사례로 꼽혔으나, 폐막 뒤 15년간 엑스포 과학공원이 매해 100억원 이상의 적자를 냈다.

‘등록 엑스포는 다르다’고, 부산시와 유치위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개최국이 전시시설을 짓고 참가국에 무상 제공하는 인정 엑스포와 달리, 등록 엑스포는 참가국이 자비로 전시관을 건설한다. 개최국은 부지만 제공한다. 게다가 전시 면적이 25㏊로 정해져 있는 인정 엑스포와 달리 등록 엑스포는 무제한이다. 등록 엑스포는 개최 기간도 최대 6개월로, 3주에서 3개월인 인정 엑스포보다 더 길다. 등록 엑스포라고 늘 성공하는 건 아니다. 2000년 독일 하노버 엑스포는 관람객이 예상치 3분의 1을 겨우 넘겼고, 폐막 후 시설은 방치됐다. 유치위 관계자들은 인구의 문제라고 말한다. 중소 도시인 하노버(인구 53만여 명), 여수(인구 27만여 명)와 달리 339만여 명이 사는 부산은 흥행하기 쉬운 환경이라는 것. 울산과 경남 인구를 합하면 791만명에 달한다. 부산시는 자체 용역 결과 약 3500만명이 엑스포를 관람하고, 일자리 약 50만 개가 창출되리라고 내다봤다.

엑스포 유치전을 지자체장의 보여주기식 치적 쌓기라고 치부하기는 어렵다. 부산 시민사회에서도 엑스포 개최 자체를 반대하는 의견은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다. 오히려 ‘엑스포 유치를 더 원활하게 준비하라’는 목소리가 크다. 9월28일 동남권관문공항추진 부울경범시민운동본부, 부산경실련 등 7개 단체는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와 국토부는 엑스포 유치를 담보할 수 있도록 선언적 차원에 머물지 말고 2029년 (신공항) 준공에 대한 명확한 대안과 일정을 제시하라”고 말했다. 부산시민운동단체연대 관계자는 〈시사IN〉과의 통화에서 “가덕도 신공항을 2030년 전에 개항하겠다는 약속을 명확히 하라고 주로 요구하고 있다. 북항 난개발 문제도 지적하고 있으나, 엑스포 자체를 반대하는 입장은 (부산) 시민단체 쪽에 아직 없다”라고 말했다.

“사실상 정부 대 정부 유치전”

정부와 부산시는 총력전 중이다. 여수엑스포,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위는 재단법인 형태로 민간이 유치전을 주도한 반면, 이번에는 정부가 나섰다. 지난 7월 대통령령(2030 부산세계박람회 유치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규정)을 제정해 민관 합동 유치위를 설치했다. 공동위원장은 한덕수 국무총리와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SK그룹 회장)이 맡았다. 국회도 엑스포 유치지원 특별위원회를 구성했다.

상대적으로 밖에서는 엑스포에 대한 관심이 저조하다. 지난 7월 열린 유치위 첫 회의에서 한덕수 총리는 “엑스포는 단순한 지역 행사가 아니라 국가적 어젠다(의제)”라고 말했다. 왜 정부는 이 건을 국가사업이라고 볼까? 박형준 부산시장은 엑스포가 부산 경제에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수도권 과밀화를 해소할 촉매라고 말했다. 9월27일 언론 인터뷰에서 그는 “(엑스포는) 수도권으로 한정된 국가 발전 축을 확장할 기회가 된다. 미래 세대들이 더 이상 수도권에 가지 않아도 지역에서 좋은 일자리를 얻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전례 없이 정부가 직접 나선 데에는 ‘등록 엑스포의 높은 부가가치’ 외에도 이유가 있다. 윤성혁 유치위 기획본부장은 투표 주체의 차이를 꼽았다. ‘관’이 나서야 교섭 가능한 상대라는 것이다. “월드컵이나 올림픽은 피파(FIFA) 집행위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 개인이 개최국을 투표한다. 엑스포는 각국 정부 대표, 일반적으로 프랑스 주재 각국 대사가 표를 던진다. BIE 170개 회원국을 상대로 유치 교섭을 하는 셈인데, 민간 재단법인 위원들은 이들을 접촉하는 것부터 어렵다. 사실상 정부 대 정부 유치전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비롯한 대기업 총수들의 참여 역시 ‘접촉면’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된다고 그는 말했다. “몇몇 기업은 정부 이상으로 일부 국가에 방대한 네트워크를 구축해놓았다. 총수뿐만 아니라 CEO와 실무자들도 활발히 해외 출장에 나서고 있다.”

민관 합동 유치위가 BIE에 제출한 유치계획서에 따르면 2030 부산엑스포의 주제는 ‘세계의 대전환, 더 나은 미래를 위한 항해’다. 구체적으로 △자연과 지속 가능한 삶 △인류를 위한 기술 △돌봄과 나눔의 장을 제시했다.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이 된 대한민국, 수출 교역의 중심이 된 부산이 이번 엑스포의 적임지라고 유치위는 회원국을 설득하고 있다.

유치 가능성은 어느 정도일까. 유치위 공동위원장인 한덕수 국무총리는 “매우 높다”라고 말했다. 9월19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한 총리는 “대한민국이 월등하게 유리한 나라다. 기후변화에 대한 의지와 기술, 최빈국에서 선진국으로 이른 기술·산업·경제 발전의 역사가 있다. (…) 많은 개도국이 한국과의 협력이 중장기적으로 필요하다. 우리가 그들의 2세들을 교육하고 기술발전을 도와주는 데에는 어느 경쟁국보다 탁월하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실상은 좀 다르다. 유치전은 사실상 이탈리아 로마, 사우디아라비아(사우디) 리야드와 부산의 3파전 양상인데, 리야드가 앞서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협상 현황을 공개하지 않는 한국 유치위와 달리, 사우디에서는 공식 유치계획서를 제출하기 전부터 리야드 지지 의사를 밝힌 국가를 보도해왔다. 지난 7월 사우디 언론 보도를 전한 〈부산일보〉에 따르면, 리야드는 아프리카, 이슬람권 국가에서 전폭 지지를 얻고 있다. 세네갈,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에 리야드 지지를 표명한 각 경제공동체 소속 국가까지 포함하면 70개국 이상으로 추정된다. 모하메드 빈 살만 왕세자를 필두로 왕족과 각료들이 일찌감치 전 세계를 돌았다.

리야드에 열세, BTS에 기대는 부산

방탄소년단(BTS)은 7월19일 부산 세계박람회 유치를 위한 홍보대사로 위촉됐다. ⓒ연합뉴스

유치 과정에 밝은 한 인사는 “어느 정도 좁혀졌지만 여전히 터프한 경쟁”이라고 말했다. 이 인사가 말한 사우디의 강점은 ‘오일머니’만이 아니다. 이슬람 순례객이 끊이지 않는 성지 메카가 있기에, 이슬람 국가들은 심리적으로도 실질적으로도 사우디에 기울기 쉽다. 말하자면 부산은 사우디의 자금력에 영향받지 않는 비이슬람권 국가의 지지를 끌어모아야 하는 상황이다. 이 나라들은 ‘중립’이 아니라, 사우디에 지지표를 던지기 어려운 곳이 많다고 그는 말한다. “사우디는 인권 문제가 제기되는 나라다. 서방세계가 일반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신념 체계와 거리가 있다.”

그런데 정치·경제·종교를 떼어놓고 ‘객관적’으로 평가해도, 제3국으로서는 부산이 리야드를 압도할 만한 개최지라고 확신하기 어렵다. 리야드 인구는 약 770만명으로 부·울·경 인구와 엇비슷하다. 전시 면적 역시 부산보다 넓다. 명분도 있다. 2030년 사우디 정부는 ‘비전 2030’을 발표해 여러 개혁안을 내놓았다. 석유에 의존하는 경제를 첨단기술로 옮기고, 여성 차별과 시민 탄압을 일부 해소하는 안이다. 엑스포 개최를 통해 변화한 사우디를 내보이겠다는 게 목표다.

무엇보다 인프라가 당장의 걸림돌이다. 하루 20만명을 옮겨와야 할 가덕도 신공항 건설이 난항에 빠져 있다. 정부는 2030년 엑스포 이전 개항을 목표로 하나 현실적으로 가능한지를 두고 이견이 많다. 지난 4월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건설 추진 계획은 2035년 개항이 목표였다. 부산시가 엑스포를 위해 조속한 건설이 필요하다고 요청하자 원희룡 장관은 지난 7월 ‘유치 전 건설’을 공언했다. 9월7일 유치위가 BIE에 제출한 유치계획서에는 “2030년까지 신공항 개항을 ‘지향한다’”라고 적혔다. 부산시 엑스포 유치기획단 관계자는 “국토부와 계속 협의 중이며, 조기 개항할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의견도 많다. 최대한 노력하겠다는 게 유치단 입장이다”라고 말했다.

당위와 실리 양면에서 리야드에 밀리는 부산에게 남은 버팀목이 방탄소년단(BTS)이었다. 지난 7월19일 유치위와 부산시는 BTS를 홍보대사로 위촉했다. 유치위 관계자는 “실제로 교섭 도중 BTS를 좋아한다고 언급하는 이가 많다. 큰 도움이 된다”라고 말했다. 이 상황에서 ‘무리수’가 등장한다.

10월15일 BTS는 부산에서 엑스포 유치를 위한 무료 콘서트를 연다. 10만명 규모로 기획된 이 콘서트는 주변에 2차선 도로밖에 없는 좁은 곳에서 개최될 예정이었다. BTS 팬들이 안전문제를 제기해 부산 아시아드 주경기장으로 장소가 변경되고 관객도 5만명으로 줄었다. 여기에 박형준 부산시장은 BTS가 홍보대사 활동을 하도록 병역특례를 공개 건의했다. 8월31일 이종섭 국방부 장관은 국회 국방위에서 ‘여론조사를 통한 병역특례’ 주장에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데드라인을 정해놓고 (병역특례 여부를) 결론 내리겠다. ‘여론조사 빨리 하자’고 이미 지시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반발이 일자 국방부는 추후 “조사와 무관하게 대체복무 제도 확대는 어렵다”라고 밝혔다. 분위기가 묘해졌다.

최태원 유치위 공동위원장은 BTS를 홍보대사로 위촉하며 “천군만마를 얻은 것 같다. 이 정도면 거의 게임 끝났다”라고 말했다. 돌아가는 상황을 잘 아는 이들은 뒷문장은 믿지 않는다.

기자명 이상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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