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월21일 허대만 더불어민주당 경북도당 위원장이 포항남·울릉 국회의원 출마 기자회견을 열었다.ⓒ연합뉴스

며칠 전 선배의 상가에 들렀다. 조의를 표하고 식탁에 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선배는 “이런 말 하면 안 되지만”으로 화두를 열고 집안 사연을 늘어놓았어. 집안에 사람 하나 잘못 들어오면 어떻게 된다는 둥, 명색이 큰며느리가 아프다고 발인 날만 오는 법이 어디 있냐는 둥 얘기들을 쏟아냈지. 듣는 둥 마는 둥 고개 끄덕이고 있는데 말끝에 매달린 한마디가 벼락처럼 귓전을 쳤다. “누가 전라도 여자 아니랄까 봐.”

순간 아빠는 고민했다. 단호하게 ‘그따위 말 하지 마십시오’ 오금을 박아줄까. 어차피 남의 일이니 그냥 넘어갈까. 그런데 선배의 화제가 우리 집으로 옮아왔다. “너희 집은 별일 없지?” 옳다구나, 아빠는 선배의 눈을 똑바로 보고 이렇게 얘기했단다. “저야 마누라 덕에 살죠. 지금은 다 서울 사시긴 하지만 우리 처가가 원래 전.라.도.거든요.” 농담하듯 가볍게, 하지만 매우 또박또박 혀를 세우며.

상가에서 나오는 길에 강준만 교수가 쓴 〈전라도 죽이기〉의 한 대목이 떠올랐지. 지역차별 문제를 강력하게 제기하던 강준만 교수는 한 독자로부터 편지를 받는다. “내 형수는 전남 여자인데 우리 형제들의 우애를 온갖 이간질로 토막토막 끊어놓았다.” 강준만 교수는 이를 ‘악마적 편견’이라며 절규한다. “제발 이성을 회복해주십시오. (중략) 선생님 말에 따르자면 전라도의 모든 가정은 여자들 때문에 형제의 우애가 다 토막 났다는 이야기입니까.”

1970년대 연쇄 살인마 김대두가 체포됐을 때, 1990년대 살인 공장을 차리고 사람들을 납치해 죽였던 지존파가 드러났을 때 사람들은 그들의 고향을 쉽게 알았다. 전라도 사람들이었으니까. 그런데 역시 수십 명을 죽인 연쇄 살인마 강호순의 고향이 어디인지는 들어본 적 없다. 그 사람의 고향 출신들을 싸잡아 욕하는 것도 들어본 적 없다. 김대두와 지존파의 고향은 공공연하게 알려지는데 강호순의 고향에는 왜 관심이 없는 걸까? 이런 게 바로 ‘악마적 편견’이라는 거다.

1987년 이후 우리 정치를 좀먹어온 것 가운데 지역주의는 최강급이다. ‘주의’라는 말을 붙이니 뭔가 그럴싸하지만 이 지역주의는 한 사람의 잘못을 지역의 문제로 승화(?)시켰던 ‘악마적 편견’의 정치적 코스프레일 뿐이야. 이 ‘지역주의 구도’의 가장 강력한 가해자이자 수혜자는 “나라를 팔아먹어도 ○○○당”을 주장했던 사람들의 정당이었지. “나라를 팔아먹어도 ○○○당”이라는 토로는 곧 “나라를 구한대도 ××당은 아니다”라는 완고함의 소산이었고, 이 추악한 옹고집의 기반은 바로 위에 말한 ‘악마적 편견’이었다는 이야기다.

이렇듯 ‘우리는 남이다’를 되뇌며 상대 쪽에서 나온 자는 누구든 ‘떨어뜨릴 결심’에 충만한 지역에서 정치의 꿈을 펼친다는 것은 보통 이상의 용기와 결단이 필요했다. 지역주의는 골리앗보다 더 엄청난 거인이었고 그에 맞서는 다윗들은 돌팔매조차 준비하지 못한 맨몸뚱이에 가까웠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무모하리만큼 용감한 사람들이 끊이지 않은 것은 우리 역사의 불행 중 다행이었다.

여러 번 얘기했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지역주의라는 거인 앞에 돌팔매를 휘두르고 나선 것 하나만으로 아빠를 비롯한 여러 사람의 가슴을 뛰게 했던 사람이지. 원래 부산은 전통적인 ‘야당 도시’였거든. “부산·마산이 일어나면 역사가 바뀐다”라는 긍지로 민주주의의 성지를 자임하던 도시가 지역주의의 화신으로 둔갑한 것은 1990년의 ‘3당 합당’ 사건이 크게 작용한다. 야당 하라고 뽑아놨더니 덥석 여당으로 가버린 ‘부산의 맹주’ 김영삼 전 대통령의 영향력은 대단했다. 3당 합당은 사실상 ‘호남 포위망’이었고 ‘민주화의 성지’ 부산은 독버섯처럼 퍼져 있던 지역주의의 포로로 전락했다. 하지만 부산에서 처음 정치를 시작하고 김영삼에 의해 발탁된 노무현은 지역주의에 포획되기를 거부했다. 이후 그는 줄기차게 부산에 출마한다. “지역갈등은 모든 것을 망가뜨린다. (중략) 똑같은 사실도 지역을 오가면 흑이 백이 되고, 백이 흑이 된다(〈한국일보〉 1999년 2월10일).”

2002년 광주 경선에서 지역주의 벽을 넘고 1위를 차지한 노무현 후보와 노사모.ⓒ연합뉴스

위험하고도 고독한 ‘선봉’의 자리

지역주의의 아성에서 그 성을 허물자고 나선 이들은 반역자 취급을 받아야 했다. “호남이 뭉치므로 영남이 뭉쳐야 된다고 얘기하는 것은 지역감정을 안 풀겠다는 거죠. 먼저 영남이 풀어야 합니다(다큐멘터리 〈무현, 두 도시 이야기〉 중)”라고 얘기하는 노무현은 매번 버림받는다. “김대중 정권하에서 살림살이 나아진 분 손 들어보십시오. (누가 손을 들자) 전라도에서 오셨습니까. (중략) 허황되게도, 전라도 당인 민주당에서 영남 출신이면서 차기 대권주자 운운하는 얼빠진 사람이 있습니다”라고 비아냥대는 상대 후보에게 무릎을 꿇었다. 하지만 누가 얼빠진 사람인지는 이후의 역사가 증명해주었지.

다큐멘터리 〈노무현입니다〉의 마지막 장면은 노무현이 지역구 사람들에게 인사하고 다니는 장면이다. 점잖기보다는 건들건들에 가까운 그 특유의 걸음걸이로 거리를 걸으며 연방 고개를 숙이고 자기 이름을 대는 사이사이에 그는 노래를 부른다. 1980년대 운동가요 ‘선봉에 서서’. “선봉에 서서 하늘을 본다/ 고향집 하늘 위엔 굴뚝 연기가/ 투사가 되어 조국의 내일….” 선봉이란 가장 명예로운 자리 같지만 가장 위험한 자리이기도 하고 가장 큰 공을 세울 수 있지만 가장 먼저 쓰러지는 자리야. 노무현은 그 선봉을 세 번 이상 자임했다.

그런데 얼마 전 이 위험하고도 고독한 ‘선봉’의 자리를 맡아 골리앗 같은 지역주의의 성벽을 지침 없이 두드리다가 끝내 병마에 지고 만 정치인 한 명의 부음이 들려왔다. 허대만(1969~2022)이 그다. “2008년부터 2020년까지 민주당 계열 정당으로 6차례 국회의원과 포항시장 선거에 나섰다. 모두 낙선했다. 2018년 포항시장 선거에선 42.4%를 득표하며 선전했지만, 결과는 다르지 않았다(〈경향신문〉 2022년 8월22일).” 부산이나 대구처럼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만한 대도시도 아니고, 어느 다큐멘터리 PD의 전언을 빌리자면 “후원자 스크롤에 ‘김대중’이 나왔다고 보이콧 운동이 벌어질 만큼” 그 갑갑함이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고향에서, 무려 여섯 번 선거가 열리는 동안 허대만은 줄기차게 포항 사람들을 만나고, 인사하고, 이제는 지역 구도를 넘어서서 자신을 믿어달라고 매달리고 있었던 거야. 1969년생. 어쩌면 아빠하고 같은 해 대학에 입학했을 그도 포항 시내를 누비며 인사하고 절하는 와중에 ‘선봉에 서서’를 읊조리고 있었을지도 모르겠구나.

구하라 찾을 것이요, 두드리라 열릴 것이라는 성경 말씀은 포기할 수 없는 희망임과 동시에 엄중한 경고이기도 해. 누구든 구하러 나서지 않으면 사람들은 아무것도 찾을 수 없고, 누가 나서서 머리로 들이받고 몸뚱이를 내던져야 그 육중한 문을 흔들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며칠 전 아빠 선배의 망발에서 보듯, 대한민국 현대사를 가로지르는 ‘악마적 편견’과 그것을 토대와 양분 삼은 지역주의 망령의 송곳니는 여전히 날카로워 여러 사람의 목덜미에 꽂히고 있다. 너희 또래 젊은이들조차 ‘홍어’니 뭐니 독살스러운 소리들을 하는 모습을 보면 실로 진저리가 날 정도지. 그 괴물과의 싸움에서 선봉에 섰던 사람들을 기억해주기 바란다. 졸렬하고, 이해할 수 없을 만큼 괴상한 한국의 지역주의라는 골리앗에게 대들었던 다윗들을 말이다.

기자명 김형민(SBS Biz PD)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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