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8월25일 국민의힘 ‘2022 국회의원 연찬회 만찬’에서 건배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신뢰는 중요한 사회적 자본으로 불린다. 신뢰가 있는 사회는 감시·통제 비용이 줄고 유대가 강화돼 사회적 생산성이 오른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부터 국정 운영의 원칙으로 ‘공정과 상식’을 내걸었다. 무너진 공정과 상식을 회복하고 사회적 신뢰를 바로 세우겠다고 했다. 공정과 상식에 따라 사회가 움직인다는 믿음이 있다면, 사회적 자본 수준이 높아지고 곧 그 사회의 경제적 수준도 높아진다는 뜻이었다.

이를 위해선 대통령과 정부에 대한 믿음이 필수적으로 뒤따라야 한다. 추진 주체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정책 신뢰가 높아지고, 국정 운영의 동력이 생긴다. 윤석열 대통령과 국가기관은 신뢰받고 있을까? 〈시사IN〉은 이를 가늠하기 위해 윤석열 정부 국가기관에 대한 신뢰도를 조사했다. 대통령실과 국회, 대법원, 검찰과 경찰 등 주요 행정·입법·사법기관이 대상이다.

윤석열 정부 국가기관의 전반적인 신뢰도는 낮은 수준이다. 평균 신뢰도 점수를 보면 조사 대상에 오른 9개 기관 가운데, 5점대를 기록한 국세청과 질병관리청을 제외하고 3~4점 ‘불신 구간’에 머물고 있다. 신뢰도 조사는 전혀 신뢰하지 않으면 0점, 보통이면 5점, 매우 신뢰하면 10점을 기준으로 점수를 매긴다. 0~4점까지 ‘불신 구간’, 5점 ‘보통’, 6~10점까지는 ‘신뢰 구간’으로 구분한다(〈그림 1〉 참조).

ⓒ시사IN 최예린

‘불신 구간’에 머무는 국가기관 가운데 조사 결과가 유독 ‘튀는’ 곳이 있다. 검찰이다. 〈시사IN〉 정례 신뢰도 조사에서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검찰 신뢰도는 주로 3점대에 머물렀다. 2017년 3.88점, 2018년 3.47점, 2019년 4.15점, 2020년 3.53점, 2021년 3.70점이었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2022년 조사에서는 3.66점을 기록했다.

신뢰도 자체는 낮은 수준에서 매년 소폭 상승하거나 하락하는 모양새인데, 조사 결과를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다른 기관과 비교되는 특징이 있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민주당) 지지자들이 검찰을 둘러싼 ‘정치 구도’에 따라 엇갈린 평가를 하면서, 전반적인 기관 신뢰도를 끌어내리고 있다는 점이다.

1.68점 vs 6.29점으로 나뉜 검찰 신뢰도

문재인 정부 전반기에는 국민의힘 지지자들이 검찰에 대해 낮은 신뢰도를 보였다. 후반기에는 민주당 지지자들의 신뢰도가 국민의힘 지지자들이 준 점수보다 낮아졌다. 2017년 조사에서, 민주당 지지자들은 검찰 신뢰도에서 10점 만점에 4.17점을 줬다. 같은 해 현 여권(당시 자유한국당) 지지자들은 3.25점을 매겼다. 양당 지지자들이 주는 점수는 2020년부터 역전된다. 국민의힘 지지자들의 검찰 신뢰도(3.67점)가 민주당 지지자들의 검찰 신뢰도(3.37점)를 앞섰다. 2021년에 민주당 지지자들은 3.32점, 국민의힘 지지자들은 4.44점을 줬다(〈그림 2〉 참조).

ⓒ시사IN 최예린

윤석열 정부 들어 차이는 더욱 극명하게 벌어졌다. 2022년 민주당 지지자들은 검찰 신뢰도에 1.68점을 줬다. 〈시사IN〉이 신뢰도 조사를 시작한 2009년 이후 가장 낮은 점수다. 국민의힘 지지자들은 6.29점을 줬다. 국민의힘 지지자들이 준 점수 가운데 가장 높은 수치인 데다, 처음으로 ‘신뢰 구간’에 들어섰다. 검찰에 대한 일종의 ‘정치적 팬덤’과 반작용이 동시에 이뤄지는 것으로 보인다.

2017년 문재인 정부 초기 ‘공수처 설치와 검경 수사권 조정’ 등과 같은 제도 개혁보다는 윤석열이라는 인물(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을 중심으로 한 ‘적폐 청산’이 검찰 분위기를 장악했다. 박근혜 정부 고위 인사들의 구속수감을 이끌어냈던 윤석열 당시 특검 수사팀장은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서울중앙지검장에 임명되면서 이명박 전 대통령 수사를 주도했다. 당시 자유한국당은 ‘정치 보복’이라고 비판했다.

2020년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과 문재인 정부가 갈등을 빚자, 검찰은 다시 ‘정치적 대결’의 중심에 섰다. ‘친문재인 대 반문재인’ 또는 ‘친윤석열 대 반윤석열’이라는 구호가 정치권과 검찰을 둘로 쪼갰다. 2021년 초 검찰총장직을 내려놓은 윤석열 대통령은 같은 해 7월 정치참여를 선언하고, 국민의힘에 입당해 대선후보가 됐다.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된 직후 새 정부는 동시다발적 사정(司正) 작업에 착수했다. 문재인 정부와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함께 겨냥한다는 말이 나온다. 야권의 과거와 미래 권력 모두에 초점이 맞춰진 셈이다. 기존 사정기관은 물론 법무부·국토교통부·통일부 등 정부 부처들도 전 정권 관련 의혹과 각종 업무를 되짚어보고 있다. 중심에는 검찰이 있다. 야권에 대한 각 기관의 수사 의뢰 또는 고발은 검찰로 향한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 검찰도 정기 인사 등을 통해 ‘윤석열 사단’으로 꼽히는 특수통 검사들을 주요 보직에 임명하고 수사 진용을 갖춘 뒤 본격 수사에 돌입했다.

검찰을 둘러싼 ‘정치 구도’와 2022년 검찰 신뢰도 조사 결과를 겹쳐보면, 국민의힘 지지자들은 ‘검찰은 우리 편’이라는 일종의 일체감을 느끼고 민주당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그에 비례해 적대감이 커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치 성향에 따라 ‘좋은 검찰’ ‘나쁜 검찰’로 구분될 경우, 단일 기관 신뢰도 하락을 넘어 전반적인 사법 불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 검찰에 대한 ‘정치 팬덤화’는 검찰총장에서 대통령으로 직행한 전례 없는 기록을 세운 윤석열 대통령이 풀어야 할 하나의 숙제가 됐다.

신뢰도 조사는 기존 지지율 조사와 궤를 같이하는 경향을 보인다. 신뢰도를 선행지수로 평가하기도 한다. 신뢰를 받기 시작하면 지지율은 따라 올라가고, 신뢰가 무너지기 시작하면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한국갤럽 조사 기준으로 윤석열 대통령 국정수행에 대한 긍정 평가는 취임 한 달 만인 6월부터 내리막을 걷기 시작해 5주째 30% 선을 밑돌고 있다. 같은 기간 부정 평가는 60%를 웃돈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

〈시사IN〉 신뢰도 조사에서도 대통령실 신뢰도는 ‘불신 구간’인 3.42점을 기록했다(〈그림 3〉 참조). 역대 정부 임기 초반 청와대와 비교해 가장 낮은 수준이다. 박근혜 정부 출범 직후인 2013년 청와대 신뢰도는 ‘보통 구간’인 5.72점, 2017년 문재인 정부 청와대는 5.86점이었다. 이명박 정부 청와대는 임기 마지막 해인 2012년부터 조사됐다(3.87점, 불신 구간). 역대 정부 임기 내 신뢰도 전체로 범위를 넓혀서 봐도, 윤석열 정부 대통령실 신뢰도가 가장 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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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최저 신뢰도를 기록한 것은 인사 논란,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의혹, 각종 정책을 두고 빚은 혼선 등이 복합적으로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윤석열 정부의 주요 행보에 대한 신뢰도 조사 결과가 이러한 분석에 힘을 싣는다. 7개 행보에 대한 신뢰도는 2~3점으로 ‘불신 구간’에 머물렀다. 구체적으로 대통령 배우자 김건희 여사 등 주변 관리 2.43점, 이준석 전 대표 징계 등 당내 갈등 2.68점, 장관 및 대통령실 인사 2.82점, 행정안전부 내 경찰국 신설 3.32점, 대통령실 용산 이전 3.42점, 도어스테핑(출근길 문답) 3.49점, 코로나19 방역정책 3.98점을 기록했다.

질병관리청·국세청 외엔 ‘불신 구간’

국회 신뢰도는 〈시사IN〉 조사 대상에 오른 9개 국가기관 가운데 가장 낮은 신뢰도를 기록했다(3.32점). 주요 정당의 신뢰도 모두 ‘불신 구간’에 있다. 민주당 4점, 국민의힘 3.37점, 정의당 2.4점이었다. 신뢰도 조사 기간(8월19~21일)에 국민의힘, 민주당, 정의당 모두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운영되고 있었다. 원내 정당 세 곳이 전부 ‘비상 상황’이었다는 뜻이다.

대통령 선거와 지방선거에서 거푸 승리한 국민의힘은 이준석 전 대표와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핵심 관계자)’의 거취, 공천권 등을 둘러싸고 극심한 내홍에 휩싸였다. 야당인 민주당은 선거 패배 이후 비대위 체제로 전환하고 전당대회를 치르면서도 이른바 ‘이재명 대표 방탄 논란’을 불러온 강령과 당헌 개정 문제로 소란을 겪었다. 지난 대선에서 2.37%(심상정 후보)를 득표하고, 지방선거에선 지역 의원 9명만을 내는 데 그친 정의당은 존재감이 작아지고 있다.

신뢰도가 가장 높은 국가기관은 질병관리청이었다. 5.12점을 기록했다. 다만 2021년 조사 결과와 비교해 1.57점이 낮아졌다. 조사 대상 기관 9곳 가운데 하락 폭이 가장 크다. 국세청은 5.03점으로 ‘보통’ 이상의 신뢰도를 기록했다. 다음으로 감사원 4.4점, 경찰 4.39점, 대법원 4.26점, 국가정보원(국정원) 4.07점 순이었다.

박근혜·문재인 정부 임기 첫해와 비교해, 윤석열 정부의 기관 신뢰도가 더 높은 경우는 국세청이 유일했다. 윤석열 정부의 국정원은 문재인 정부 임기 첫해 신뢰도보다 높았으나 박근혜 정부 임기 첫해보다 낮았다. 질병관리청은 2020년부터 조사돼 비교에서 제외했다.

기자명 문상현 기자 다른기사 보기 moo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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