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전 총리의 시신을 실은 차량이 7월12일 장례식을 마친 뒤 도쿄 조조지 사찰을 나서고 있다. ⓒAP Photo

〈시사IN〉과 기사 교류를 맺은 일본의 독립언론 〈슈칸 긴요비(주간 금요일)〉가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의 피격 현장을 취재했다. 〈슈칸 긴요비〉 제1385호(7월15일)에 게재된 기사를 전재한다.

참의원 선거 투표일을 이틀 앞둔 7월8일 오전 11시32분, 아베 신조 전 총리(67)는 연설을 하던 나라시의 긴테쓰 야마토사이다이지 역 앞에서 총을 맞고 심폐정지 상태에 빠졌다.

대낮에 일어난 전 총리 저격 뉴스에 고베에 사는 기자는 곧 현장으로 향했다. 오후 2시 전에 도착했으나 테러가 일어난 역전 도로 주변에서는 아직 수많은 경찰과 관계자들이 뛰어다니고, 상공에는 언론사 헬리콥터가 날아다녔다. 삼엄하고 시끄러운 광경이 계속되고 있었다.

자민당 사토 게이 후보(이번 참의원 선거에서 당선)를 지원하러 온 아베 전 총리는 오전 11시29분, 가드레일로 사방이 둘러싸인 장소에 설치된 발판에 서서 연설을 시작했다. 2분 뒤 큰 폭발음이 난 뒤 하얀 연기가 올랐다.

그의 뒤쪽으로 접근해온 남성이 3m 정도 거리에서 총과 비슷한 무기를 들고 두 발의 총탄을 발포했다. 첫 번째 탄알은 급소를 벗어나 관통했다. 두 번째 발포 소리가 난 뒤, 아베 전 총리는 목에서 피를 흘리며 그 자리에 쓰러졌다. 곧바로 남성은 사복 경찰관들에게 붙잡혔다. 살인미수 혐의로 구속된 전 해상자위대원 야마가미 데쓰야(41)가 피의자였다. 야마가미는 아베 전 총리가 숨지면서 살인 혐의로 7월10일, 검찰에 신병이 넘겨졌다.

현장에서 목격한 사람들의 말에 따라 피격 직후 긴박한 상황을 재구성해본다. 구급차가 도착하기 직전까지 “의사나 간호사는 안 계세요? 제발 살려주세요. 제발…”이라고 자민당 관계자가 확성기로 외쳤다. 우연히 현장에 있었던 간호사가 심장 마사지를 시작했고, 인근 병원 의사도 재빨리 달려왔지만 아베 전 총리는 눈을 감은 채 의식이 없었다. 그 뒤 아베 전 총리는 구급차와 닥터헬기로 나라현립의과대학 부속병원으로 긴급 이송됐다.

현장에서 그의 연설을 듣고 있던 한 여성(67·나라현 거주)은 “사토 후보의 연설이 끝나고 아베 전 총리가 연설을 시작한 직후, 쿵 하는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배후에 젊은 남성이 서 있었고 30~40㎝의 검은 통과 같은 물건으로 아베 전 총리를 겨냥한 채 그에게 다가갔다. 남성은 곧 경찰에 붙잡혔고 저항도 하지 않고 소리도 치지 않은 채 체포에 응했다”라고 말했다. 현장에서 그가 ‘총소리’라고 인식한 것은 한 발이었다고 한다. “총처럼 생기지 않아서 나 자신도 당황하지 않았다. 모두 총이라는 인식 자체가 없어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아베 전 총리에 대해서는 각기 생각이 다르겠지만, 나는 (그의 사망이) 일본의 손실이라고 생각한다.”

사제 총은 철 파이프 두 개를 검은 테이프로 감아서 만들었다. 외형이 정교하지는 않았다. 첫 번째 발포가 실패할 경우에 대비해 두 번 연속 발포할 수 있게 만들어졌다. 야마가미 자신은 “원래는 폭발물을 제조하려 했으나 총으로 바꾸었다”라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그의 집을 압수수색해 사제 총과 발사 시험을 한 흔적이 있는 도구 등을 다수 압수했다. 경찰은 사제 무기들이 외형은 투박하고 조잡하지만 폭발력이나 살상 능력은 충분한 것으로 보고 있다. 야마가미는 2002년부터 3년간 히로시마현 구레시의 해상자위대원으로 근무했다. 이때 사제 총의 해체·조립 및 화약을 다루는 방법 등을 습득했다.

아베 전 총리가 긴급 이송된 나라현립의과대학 부속병원에는 수많은 보도진이 모여 있었다. 필자는 병원 앞에 도착한 뒤 오후 5시30분쯤 전화로 전 총리의 상태를 물었다. “상태는 어떤가?” “기자회견 예정은?” 병원 홍보 담당자는 “현 시점에서 (기자회견) 예정은 없다”라고 답했다. 실은 이때 아베 전 총리는 숨을 거두고 있었다. 도쿄에서 급히 달려온 아베 전 총리의 부인 아베 아키에 씨가 병원에 들어간 것이 오후 5시 직전이었다. 병원 측에 따르면 사망 확인은 오후 5시3분이었다.

7월8일 나라현에서 아베 전 총리를 저격한 야마가미는 범행 직후 경찰관들에게 제압당했다. ⓒAFP PHOTO

“원래는 폭발물 제조하려 했다”

오후 6시께부터 기자회견을 한 나라현립의과대학 부속병원 소속 후쿠시마 히데타다 교수는 “목 두 곳에 총창이 있었다. 대량 수혈을 했으나 심박은 재개하지 않았다. 실혈사(과다출혈)라고 말할 수 있다. 체내에서 총알은 발견되지 않았다”라고 설명했다. “아베 전 총리의 표정은 어땠나?” 필자의 질문에 후쿠시마 교수는 “얼굴을 볼 여유는 없었다”라고 답했다. “현장에서 즉사한 것이 아니냐?”라는 다른 기자의 질문에는 “죽은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았다”라고 대답할 뿐이었다.

심폐정지가 5분 계속되면 구명률은 25%까지 낮아지고, 8분이 지나면 살릴 가능성은 극히 낮아진다. 현장에서 응급조치를 취한 한 의사는 “한눈에 봐도 (구명이) 어렵다고 생각했다. 자발호흡 움직임이 없었다”라고 말했다.

피의자 야마가미의 범행 동기에 대해 7월8일 밤 기자회견을 한 나라현 경찰서 야마무라 가즈히사 수사 제1과장은 “(피의자가) 특정한 단체에 원한이 있는데, 아베 전 총리가 그 단체와 연계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진술했다”라고 밝혔다. “어머니가 종교단체에 입신한 뒤 거액의 기부를 했기 때문에 가정이 무너졌다”라는 취지의 증언을 했다는 것이다.

‘종교단체’와 관련해서 현재는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이라고 명칭을 바꾼 옛 ‘세계기독교통일신영협회’(약칭 통일교회) 홍보부는 7월10일 아침 취재에 응해, “(야마가미의) 어머니는 우리 교회 신도임이 틀림없습니다”라고 말했고 지금도 신도임을 인정했다.

또한 야마가미의 초등학교·중학교 시절 동창생과 지인 등 관계자도 취재에 응했다. 취재 결과 그의 어머니가 거액의 빚을 지면서까지 통일교회에 기부를 했기 때문에 집안 형편이 매우 빈곤했다. 〈슈칸 긴요비〉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20년 전에 그의 어머니는 나라 지방법원에서 파산을 선고받았다.

지난해 9월 〈신분 아카하타〉(일본 공산당 기관지)는 아베 전 총리가 통일교 회계 단체 이벤트에 ‘경의’와 ‘칭찬’을 표시하는 메시지를 보내는 등 ‘관계’를 맺고 있다고 보도했다. 통일교회 ‘영감상술(항아리나 문패 등을 사야 저주가 풀린다며 원가의 최고 수백 배로 강매하는 상술)’ 피해자를 지원해온 한 변호인은 “자민당은 통일교회를 ‘반공의 돌격대’로 이용해온 것이 아닌가”라고 분석했다.

‘천황’의 무덤 등이 있는 나라현은 황실 인사들이 방문할 기회도 많기 때문에 나라현 경찰의 경비 능력은 뛰어나다. 그런데 이번에는 도로에 나와 배후에서 당당하게 접근해 발포한 야마가미를 재빨리 알아낼 수 없었고, 첫 번째 폭발음이 난 뒤에도 사복경찰이 달려들어 제압하지 않았고, 아베 전 총리를 피신시킬 수 없었을 뿐 아니라 그의 몸을 낮추는 식의 기본적인 경호 동작도 하지 못했다. 현장에는 경시청이 파견한 SP(요인 경호 전문경찰관) 한 명과 공안경찰을 포함한 사복·제복 경찰관 수십 명이 배치되어 있었는데도 말이다.

7월9일 저녁 기자회견에서 경호 실수를 인정한 오니즈카 도모아키 나라현 경찰본부장은 “경찰관 인생에서 최고 후회되는 일”이라고 말했다.

번역·문성희 〈슈칸 긴요비〉 편집국장

기자명 아와노 마사오 (프리랜서 기자), 혼다 마사카즈 (<슈칸 긴요비> 기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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