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선거유세 중 총에 맞아 숨졌다. 9년 가까이 재임한, 주로 부정적인 뉴스에서 보곤 했던 이 최장수 일본 총리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어떻게 기억해야 할까. 최악으로 치달은 양국 갈등을 풀기 위한 전제조건은 무엇일까. 전문가마다 관점은 다르지만, 일본을 깊숙이 들여다본 연구자의 렌즈는 의미 있는 참고자료가 되기에 충분하다. 올해 5월 아베 시대를 돌아보는 책 〈아베 시대 일본의 정치와 외교〉를 엮어 펴내기도 한 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를 만났다.

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는 "〈반일 종족주의〉는 한·일 공동 기획이라고 본다"라고 말했다.ⓒ김흥구

처음 뉴스를 접했을 때 어땠나?

혹시라도 좌파 쪽이나 조선인이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한 일이라면 굉장히 큰 사건이 되겠다고 걱정했다. 한편으론 그런 건 아닐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처음부터. 만약 아베를 정치적 목적으로 살해하려 한다면 우익이 아닐까….

아베가 우익 정치인 아닌가?

한국인 감각으로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는데, 아베를 적극 지지했던 일본의 ‘진정 우익’ 중에는 아베를 비난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두 가지인데, 하나는 표만 받아가고 몇 년이 지나도록 왜 헌법 개정을 안 하느냐는 거다. 다른 하나는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다. ‘한국 사람들이 날조한 것을 가지고 사죄니 반성이니 말도 안 되는 짓을 저질렀다’고 일본 우익은 본다. 아베는 재임 기간 중국과의 관계를 개선하려 했고, 러시아의 푸틴과도 스무 번 넘게 정상회담을 했다. 영토 회복을 위해 교섭하면서 ‘2도 선행 반환(러시아가 실효 지배 중인, 일본명으로는 ‘북방영토’인 쿠릴 4개 섬 중 2개를 먼저 돌려받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행동할 때도 있었다. 4개 다 돌려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에게는 ‘매국노’나 다름없다.

“특정 종교단체(통일교)와 아베가 가까운 관계여서 노렸다”라고 용의자가 진술했다.

종교단체 얘기가 나올 때부터 ‘이건 통일교가 거의 확실하다’고 생각했다. 2019년 〈반일 종족주의〉라는 책이 나왔을 때 조사해봤다. 이 책이 한국에서 먼저 나오고 4개월 뒤 일본에서 나왔는데, 일본 출판계는 매우 엄격해서 누가 번역하고 감수했는지가 굉장히 중요하다. 역자가 반드시 표지에 나오고, 그가 해당 분야 전공자가 아니라면 감수까지 거쳐 출간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반일 종족주의〉 일본어판은 표지에 번역자가 나오지 않고 감수자도 없다. 대표 저자인 이영훈(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이승만학당 교장)이 서문에서 ‘일본어판 번역에 두 사람이 수고했다’며 감사를 표했을 뿐이다. 그중 한 사람이 이승만학당 수료생이자 한국에 사는 일본인인데, 통일교 신자로 추정된다. 그는 ‘한국근현대사연구회’라는 단체가 운영하는 인터넷 카페에서 활동했는데, 여기서 활동하는 ‘위안부’ 부정론자들의 면면을 살펴보니 또 다른 통일교 신자와의 연결고리가 발견되더라.

모종의 숨겨진 네트워크가 있다는 건가?

그렇다. 〈반일 종족주의〉의 또 다른 번역자는 일본에 살면서 이승만TV 강의를 일본어로 번역해 일본 우익 채널(SakuraSoTV)에 올리는 사람이다. 이 책 일본어판이 기획되어 나오는 데는 〈산케이신문〉 논설위원 구보타 루리코와 납치 일본인 문제 해결을 위해 활동하는 ‘구출회’의 니시오카 쓰토무(아베의 브레인으로 알려진 사람이다)가 관여했다. 〈반일 종족주의〉는 한·일 공동 기획이라고 본다.

한·일 우익 네트워크에 통일교는 왜 등장하나?

1960~1970년대에 전투적인 반공주의자들이 있었다. 동아시아 반공연대라고 할 만한 이 그룹에서 중심 역할을 한 단체가 ‘국제승공연합’이다. 통일교가 일본에 파고들기 위해 일본 정계와의 관계를 구축하면서 1968년에 만든 조직인데, 일본의 전투적 반공주의자들이 여기에 동조해왔다. 그중에 아베의 외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가 있었다. 기시 노부스케와 사사카와 료이치, 고다마 요시오 등 전후 우익의 거물들이 통일교와 유착관계에 있었다고 미국 하원 국제관계위원회 국제기구 소위원회(프레이저위원회) 자료로 드러났다. 기시가 (1973년) 시부야 쇼토에 있는 통일교회 본부에서 강연한 기록도 있다. 이후 아베가 다시 전면에 부상하고, 한국에선 2017년 문재인 정부가 집권하면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진행됐다. 옛 국제승공연합 세력이 보기에 이는 일본이 현해탄을 사이에 두고 공산주의 세력과 마주하게 된다는 의미다. 국제승공연합의 대학생판 단체인 ‘승공 유나이트(UNITE)’도 ‘문재인 정부 대일정책이 한·일 관계를 방해한다’고 주장하고 다녔다.

아베가 지난해 통일교 관련 행사에서 연설한 것을 보고 용의자가 범행을 저질렀다고 보도됐다.

클릭 몇 번만 하면 아베와 자민당 정치인들이 통일교 관련 활동을 지지하고 연설한 것이 다 나온다. 용의자가 이걸 보고 ‘통일교가 또 준동하고 있네’ ‘일본 정부가 끌어들인 것 아닌가’ 생각하지 않았겠나(용의자는 어머니가 통일교에 1억 엔(약 10억원) 넘게 헌금해 생활이 어려워졌다고 주장한다).

용의자는 전직 자위대원이다. 아베는 자위대를 헌법에 명시하려 한 정치인이다.

아이러니다.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성실하고 우수했다고 한다. 그런 사람이 왜 자위대를 선택했을까(생활고 때문으로 알려졌다). 자위대에서도 적응하지 못하고 나왔으리라 추정된다. 일본 안에서 자위대는 건드리기 어려운 존재다. 과거에는 자위대원 중에서도 자위대를 비판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언제부턴가 그런 얘기를 듣기 힘들어졌다. 자위대를 중심으로 한 개헌론자들이 언로를 막았을 수도 있고, 그런 것들을 자연스럽게 드러내기 두려운 사회 분위기 때문일 수도 있다. 최근에 여성 자위대원이 성희롱을 당했다고 문제 제기를 했다. 안에서는 문제를 제기할 수 없어 나와서 말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 사건이 어떻게 처리되는지도 향후 일본 사회를 가늠하는 데 중요하다.

2015년 1월 일본 참의원 본회의에서 아베 일본 총리(왼쪽)와 기시다 후미오 외무장관이 대화하고 있다. ⓒKyodo News

결국 해프닝으로 보긴 어렵다는 뜻인가?

사실 어떤 우발적 사건도 그냥 발생하지는 않는다. 용의자는 사회에 나와서도 적응하지 못하고 (여러 일자리를) 전전했다. 총기를 그렇게 많이 갖고 있었지만 사전에 드러나지 않았다. 탈냉전 이후 버블이 꺼지면서 드러난 일본 사회의 어두운 면을 고스란히 체현하고 있는 사람 같다(그는 1980년생이다). 일본이 뭔가 안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건 분명하다. 우경화나 혐한을 견제하려고 노력하는 세력도 있지만 몇 년이 지나도 정화가 안 된다. 사회가 막다른 골목으로 치달아갈 때 약한 고리를 뚫고 튀어나온 병리현상으로 느껴진다. 특히 이번 사건으로 드러난 종교와 정치의 네트워크는 일본의 종교 우파, 대표적으로 일본회의와 연결되어 있을 수도 있다. 일본의 암부, 치부가 드러나는 것이기에 조사가 쉽게 이뤄지기 어렵다.

기시다가 아베의 뜻을 이어받아 개헌을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선거에서 자민당 등 개헌 세력이 개헌안 발의에 필요한 의석수(전체 참의원의 3분의 2)를 얻었다고는 하지만, 이 3분의 2에 해당하는 네 개 정당이 헌법 개정에서 중점을 두는 사안이 각기 다르다. 예컨대 이념상 자민당보다 왼쪽에 있는 ‘공명당’은 교육개혁을 중시한다면, 공명당과 자민당 사이에 있는 ‘국민민주당’이나 자민당보다 오른쪽에 있는 ‘일본유신회’는 (대규모 재해 등 비상사태 때 시민의 기본권을 입법 없이 제한하는) 긴급사태 조항에 더 중점을 둔다(공명당과 국민민주당은 헌법에 자위대를 명기하는 데 거리를 두거나 모호한 입장을 보인다). 이들을 모두 만족시키는 헌법 개정안을 만들려면 예산이 많이 들 텐데, 일본이 지금 재정 여력이 많지 않다. 여기에 방위비까지 (GDP의) 2%로 두 배 늘릴 계획이다. 개헌은 정해진 방향이지만 거기까지 가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거다. 그 내용도 우리 생각처럼 당장 일본이 전쟁하는 국가가 되어서 미국과 함께 세계 여러 곳을 다니며 군사활동을 하는 식으로까지는 가기 어렵다.

한반도에서 자위대 활동은 어떻게 되나?

한반도는 일본 안보의 핵심적인 부분이다. 만약 자위대가 헌법기구로 편성된다면 그동안 헌법으로 인해 빗장이 걸려 있던 일본의 군사활동이 확대되고, 그 첫 번째 타깃은 가장 가까운 한반도나 타이완이 될 가능성이 있다. 한반도에 유사 사태가 벌어진다면 일본 자위대가 모종의 활동을 할 가능성은 열린다고 봐야 한다. 최소 2~3년은 걸릴 텐데, 한국 정부는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이라는 과제의 연장선에서 일본의 그러한 변화를 연착륙시키려 노력해야 한다. 그러지 않고 한반도의 분단을 지속시키거나 중국을 적대시하는 정책을 전제로 해서 일본의 변화가 이뤄지고 우리가 거기에 편승한다면 한국의 외교적 선택지는 협소해지고, 우리로서는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선택을 해야 할 수 있다. 조심해야 한다.

아베의 죽음은 자민당 내 역학구도를 어떻게 바꿀까?

당장은 아베를 대체할 새 구심력이 보이지 않는다. 대안이 없으니 사실상 정계를 은퇴한 모리 요시로 전 총리 역할론까지 부상할 정도다. 최근 정국에서는 보수 본류가 된 아베 파벌이 다시 소수가 되고, 보수 방류로 밀려났던 ‘온건파’ 기시다가 조심스럽게 자기 입지를 확보해갈 가능성이 있다. 그 그림을 안 그릴 이유가 없다. 헌법을 개정하겠다고 애드벌룬은 띄우겠지만, 물가도 오르고 코로나19도 다시 확산되니 일단 경제부터 살려놓자며 자신이 내건 ‘일본형 자본주의’를 중시할 모양새다. 또한 기시다는 미·일 동맹을 기축으로 삼으면서도 중국 등 주변국과의 외교도 잘 해나가는 ‘신시대 리얼리즘 외교’를 표방했다. 대개 이쪽 파벌은 적어도 아베보다는 아시아 국가들과의 관계를 중시한다. 이에 따르면 한반도 외교도 조금 더 유연하게 나올 수 있다. 한국의 전략이 있느냐가 문제다.

1999년 3월 한·일 정상회담에서 김대중 대통령(왼쪽)과 오부치 총리가 악수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정부는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을 계승하겠다고 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공동선언을 제대로 읽어봤는지 의문이다. 오부치 총리는 해방 이후 한국 국민의 민주화를 위한 노력을 높이 평가했고, 김대중 대통령은 전후 일본이 평화헌법하에서 (일본이 공격을 당했을 때 일본 영토 내에서만 군사력을 사용한다는 원칙인) ‘전수방위’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비핵 3원칙을 견지한 것을 높이 평가했다. 민주주의와 평화를 위한 서로의 노력을 인정했기에 양국은 신뢰를 가질 수 있었다. 그런데 일본은 문재인 정부에 대해 사법부의 판단을 시정하라는, 민주주의 원칙에 위배되는 요구를 계속 해왔다. 평화헌법을 개정해 전수방위와 비핵 3원칙을 내던지려고 하고 있다. 그렇다면 윤석열 정부는 한·일 관계의 기초인 민주주의와 평화의 가치를 앞으로는 어떻게 구현할지 일본에 물어야 한다.

아베 시대 한·일 갈등의 큰 축이었던 강제노동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하나?

‘열린 해법’을 제안하고 싶다. 민사재판인 만큼 당사자들끼리 합의해서 불법적 식민지배하에서 강제노동을 시킨 사실에 대해 사과하고, 금전적 보상 조치를 취하며, 추모 등 재발 방지 노력을 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미 니시마쓰 건설이라는 일본 회사가 중국인 노동자들에게 강제노동을 시킨 사건을 유사하게 해결한 선례가 있다. 일본 기업들은 그렇게 하겠다는 생각이 있는데 일본 정부가 계속 막아왔다. 그 빗장을 풀라는 거다. 이와 별개로 1919년 임시정부가 이미 수립된 상태에서 우리 국민의 강제노동을 막지 못했고, 1965년 청구권 자금으로 기업을 성장시키고 경제를 발전시켜온 한국 정부가 져야 할 책임도 있다. (금전적 배상을) 일본 가해 기업이 하든 한국 기업과 정부가 같이 하든,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확인한 대법원 판결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한국 정부도 책임을 이행할 방법을 고려해야 한다. 기시다가 외무장관일 때 일본 정부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 메이지 시대 산업시설을 등재 신청하면서 “그들의 의사에 반해(against their will)” “노동하게끔 강제당한(forced to work)” “희생자들(victims)”이라는 표현을 쓴 적이 있다. 그 기시다가 총리가 되었기에 해결의 가능성이 열리는 측면도 있다.

2018년 10월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승소한 강제징용 피해자 이춘식씨가 소감을 밝히고 있다. ⓒ시사IN 신선영

‘위안부’ 합의 역시 아베 총리-기시다 외무장관 때 일어난 일이다.

한국 헌법재판소는 이 합의가 정치적 구두 합의로서 공식적으로 존재하지만 아직 법적인 효력은 없다고 결정했다. 외교 문서라면 용어를 통일시켜 하나의 문서를 만들어야 하지만 지금은 양국 외교장관의 구두 발언을 각자의 언어로 가지고 있을 뿐이다. 합의 과정에서 피해자가 문제 해결에 관여할 길을 열어주는 ‘피해자 중심주의’ 원칙도 지켜지지 못했다. 따라서 이 합의에 법적 효력을 부여하기 위해서는 이 합의의 ‘바깥’이 아니라 이 합의에 ‘입각’해서 새로운 합의를 해 문서로 남겨야 한다. 또한 이 합의에 따라 일본이 해야 할 최소한의 행동도 아직 남아 있다. 합의문에는 ‘아베 내각 총리대신은 일본국 내각 총리대신으로서 (…) 사죄를 표명한다’는 내용이 있다. 정부가 바뀌었으니 기시다는 일본의 새 총리로서 이를 확인하고, 일본 정부가 예산으로 이미 한 금전적 조치가 사실과 책임 인정, 반성과 사죄, 재발 방지 노력의 의미를 갖는다고 인정해야 한다. 피해자가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시대의 ‘피해자 중심주의’는 결국 기억을 계승하는 일이다. 일본이 지금까지 한 일로 끝나지 않는다. 일본이 무엇을 해야 할지는 합의문에 들어 있다.

아베는 어떤 정치인이었나?

일본이 풀어야만 했던 모든 과제를 다 안고 있었던 사람 같다. 경제든, 외교 안보든. 아베노믹스에 대한 평가는 극으로 갈린다. 모리토모·가케 학원에 부당한 특혜를 줬다는 의혹 등은 제대로 처리되지 않은 채 덮였다. 그럼에도 일본의 국제적 위상이 약해지는 국면에서 외교안보 노선을 확실히 정립해 ‘국제정치를 주도하는 주요국’으로서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한국에서는 결코 긍정적으로 평가하기 어려운 외교 상대였다. 역사수정주의로 우리 국민에게 마음의 상처를 안겨주었고, (수출규제 조치로) 경제적으로도 피해를 줬다. 우경화를 포함해 일본을 부정적 방향으로 끌고 갔으며, 일본이 헌법 개정을 안 하는 선택지를 사실상 봉쇄해버렸다. 정치가로서는 대단한 수완을 발휘해 자민당의 장기집권 기반을 닦았다. 한마디로 표현하기 어려운 사람이다.

기자명 전혜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wo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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