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에 손에 들려 있는 스마트폰은 한계 없는 접속을 약속한다. 간단한 터치로 스마트폰을 켜기만 하면 각종 SNS를 통해 타인과 연결되고, 쏟아지는 데이터 세례에 흥건히 몸을 축일 수 있다.
무한한 가능성이 열린 듯하지만 ‘언제든’ ‘어디서든’이라는 제한이 사라진 세계에서 삶은 종종 갈 곳을 잃는다. 재독 철학자 한병철의 근작을 엮어 지난해 10월 출판된 〈리추얼의 종말〉의 부제는 ‘삶의 정처 없음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이다.
“리추얼은 세계를 안심할 수 있는 장소로 만든다. 시간 안에서 리추얼은 공간 안에서 거처에 해당한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 나오는 ‘여우 우화’는 한 예다. 어린 왕자는 여우에게 항상 같은 시간에 찾아와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반복은 질서를 낳고, 질서는 의미를 잉태한다. 반면 오늘날 시간은 확고한 짜임새가 없는 변화무쌍한 흐름이다. 삶에 안정감을 부여하는 ‘집’으로서 기능하지 못한다. 이는 대표작 〈피로사회〉에서부터 한병철 저서의 근간에 면면히 흐르는 자본주의에 대한 도발적인 비판으로 이어진다.
저자는 자신의 주장을 논증하지 않는다. 친절하게 주장을 쌓아올리기보다는 반복과 우연, 놀이와 노동, 형식과 진정성, 서사와 데이터, 포르노와 유혹을 대비시키며 은유의 힘을 빌려 논리를 전개한다. 역자의 말마따나 “시인의 기질이 다분한 철학자”이다. ‘리추얼’을 논하며 의미를 명확히 전달하지 않기에 어떤 대목은 아주 보수적으로 읽히기도 한다. 그런 우려에서였는지, 스페인 언론사의 저자 인터뷰, 역자 후기가 책 후반부에 충실하게 담겼다.
주간지를 여타 언론사와 구분 짓는 가장 중요한 정체성은 ‘매주 한 번씩’ ‘정해진 날’ 발간되는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일종의 리추얼이다. 다른 누구보다도 〈시사IN〉 독자들과 함께 읽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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