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의 미술관〉
이주헌 지음
아트북스 펴냄

‘미술’이란 말에서 무엇을 연상하든, 그게 ‘혁신’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다. 대가들의 작품은 고색창연할 따름이고, 아그리파 데생은 거기서 거기같이 보인다. 양쪽 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고안하는 것처럼 느껴지지는 않는다.

미술평론가인 저자는 이런 미술과 혁신이 “떼려야 뗄 수 없는 운명적 관계”라고 적는다. 미술 사조는 수십 년에서 수백 년간 이어온 전통을 전면 부정하며 탄생한다. 고전주의에 저항해 낭만주의가 나왔고, 낭만주의에 반발해 사실주의가 생겼다. 미술은 인간 시각의 한계에도 도전했다. 착시나 잔상을 표현해내려는 실험을 감행했다. 미술인 모두가 혁신을 추구한 것은 아니지만, 혁신에 성공한 이들은 미술사 불멸의 존재가 됐다.

책은 고대 이집트부터 앤디 워홀까지 미술계의 주요 혁신을 다룬다. 미술사를 잘 알지 못해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초점을 미술에 맞추면 혁신은 주제어가 되고, 혁신에 관심을 가진 이에게 미술 이야기는 예화가 된다. 가령 메디치 가문을 소개하며 저자는 ‘의미를 만드는 것이 혁신의 첫걸음’이라고 적는다. 눈앞의 이윤보다 더 높은 차원을 추구하면 결국 영리 측면에도 더 이롭다는 것. 정치·경제적 힘을 과시하지 않던 메디치 가문은, 피렌체의 교육·종교시설에는 확실한 자취를 남겼다. 예술가를 후원하고 건축물을 증축해 시민들에게 문화적 자긍심을 안긴 메디치 가문은 시민들의 진심 어린 지지를 얻어냈다.

책은 이 밖에도 ‘다양성’ ‘현장’ ‘관찰자’ 등 여러 소주제를 중심으로 서양미술사를 풀어낸다. 적지 않은 그림 자료가 이해를 돕고, 몇몇은 심미적 반응을 이끈다. 유명한 그림 몇 점을 모아 수박 겉핥기식으로 소개하는 책들과 좀 다르다. 미술사에 아로새겨진 비범한 인물들의 사유를 돌아보게 만드는 책이다.

기자명 이상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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