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1일 지방선거에서 유권자는 투표용지 7장을 받는다. 그중 한 장은 교육감 투표용지다.ⓒ시사IN 조남진

6월1일 지방선거 날 유권자는 투표용지 7장을 받는다(세종 4장, 제주 5장,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 지역 7곳은 8장). 그 가운데 한 장은 교육감 투표용지다. 교육감은 각 지역 교육청의 수장으로서 우리나라 유·초·중·고 교육을 관할한다. 5월13일 전국 17개 시도에서 58명(5월19일 기준)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교육감 선거 후보 등록을 마쳤다.

교육감은 권한이 큰 자리다.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에 따라 국가의 교육행정 업무 중 상당 부분을 위임받는다. 내국세의 20.79%에 달하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을 받아 교육예산을 편성할 수 있다. 교원 인사권과 징계권, 교육기관 감사·감독권, 조례제정권 등도 지닌다. 아침 등교 시간에서부터 급식 형태·시험 방식·돌봄 프로그램은 물론이고 학원 영업시간·입시 선발방식·머리카락 길이까지, 학생·교원·학부모의 삶을 좌지우지하는 결정을 내릴 수 있다.

동시에 교육감은 한계가 큰 자리다. 법률상 권한과 실제 작동 가능한 권한의 범위가 다르다. 위로는 대통령·교육부·국회·지자체장·지방의회, 아래로는 각 학교 교장·교원·학부모·학생들이 교육감의 권한을 견제한다. 누가 대통령이고 시장이고 도지사인지에 따라, 어느 당이 국회와 지방의회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지에 따라 교육감이 내린 결정은 막힐 수 있다.

〈시사IN〉은 이런 교육감이 지닌 힘과 한계를 보여주는 키워드 6개를 불러왔다. 2007년 교육감 직선제가 실시된 이래 교육감을 중심으로 펼쳐진 갈등 사례들을 되짚어보았다. 과거 경험에 비추어보았을 때, ‘교육감발’ 의제와 갈등은 정치와 밀접하게 영향을 주고받는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선출될 전국의 교육감, 지자체장, 지방의원이 어떻게 구성되는가에 따라 국가 교육정책뿐 아니라 정국의 흐름과 양상이 바뀔 수 있다. 우리에게는 7장의 기회가 남아 있다.

1. 공정택: 직선제의 축복 혹은 저주

교육감 선거는 원래 직선제가 아니었다. 1991년 지방자치가 시작된 이후 교육위원, 학교운영위원, 교원단체 등이 간접선거로 교육감을 뽑아왔다. 그 과정에서 부정과 비리가 횡행했다. 2006년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 개정을 통해 직선제가 도입됐다. 2007년 부산·울산·충북·경남·제주에서부터 처음으로 지역 주민들 손으로 직접 교육감을 뽑기 시작했다.

교육감 선거가 다수의 관심사가 된 것은 2008년 7월30일 실시된 서울시교육감 선거 때부터다. 이명박 정부 집권 초기,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가 한창이었다. 현직 서울시교육감이던 공정택 후보와 진보 시민사회단체 진영의 추대를 받은 주경복 건국대 교수 등이 후보로 나섰다. 공정택 후보는 “전교조에 휘둘리면 교육이 무너집니다”라는 홍보 현수막을 내걸고 국제중 설립, 영어 몰입교육, 교원평가, 0교시·우열반 부활 등을 공약했다. 주경복 후보는 무한 경쟁식 ‘MB 교육’의 독주를 막겠다고 했다. 선거 결과는 공정택 승. 공 후보는 서울시 25개 구 가운데 17곳에서 주 후보에게 밀렸지만 강남구·서초구·송파구에서 몰표를 받아 서울 첫 직선제 교육감이 되었다.

‘리틀 이명박’으로 불리던 공정택 교육감은 1년여 뒤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선거 기간 사설학원 원장 등에게 선거자금을 빌리고 재산 신고 때 차명 재산을 누락한 것이 밝혀져 대법원에서 교육감직 상실형(벌금 150만원)이 확정되었기 때문이다. 이후 그는 교육감 재직 시절 저지른 뇌물·인사 비리 등으로 또 법정에 섰다. 2011년 대법원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아 2014년 만기출소했다.

2008년 서울시교육감 선거 당시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걸린 공정택 후보의 현수막.ⓒ시사IN 자료

공정택만이 아니다. 직선제로 선출된 교육감 중 다수가 선거법 위반으로 당선 무효의 위기에 놓였다. 2010년 당선된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은 2012년 징역 1년을 선고받아 직을 상실하고 구속 수감되었다. 조희연 현 교육감도 2015년 선거법 위반(허위사실공표죄)으로 벌금 500만원을 선고받았다. 이듬해 대법원이 선고유예를 확정해 가까스로 당선 무효를 면했다.

교육감은 선출직 공무원이되 후보 시절부터 정치적 중립성을 요구받는 독특한 직책이다. 교육감 후보는 정당에 가입할 수 없고 교육감 선거에 정당이 개입해서도 안 된다. 그럼에도 교육감 선거는 매우 정치적으로 이루어진다. 대부분의 후보가 자신이 ‘진보’ 혹은 ‘보수’ 진영 후보임을 표방한다. 여타 선거들처럼 정책 대결보다 후보단일화 과정이나 네거티브 공세에 더 관심이 쏠린다(2014년 서울시교육감 선거 기간 고승덕 후보의 ‘딸아 미안하다’ 사건이 대표적).

2. 일제고사: ‘촉매제’ 혹은 ‘최후의 보루’

교육감은 국가 단위 교육정책이 각 관할 지역 내에서 잘 작동하도록 돕고 뒷받침한다. 반대로, 중앙정부가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교육정책이 실제 교육 현장에 적용되지 않도록 막아내는 ‘최후의 보루’가 되기도 한다.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2008년부터 몇 년간 벌어진 ‘일제고사 논란’이다.

이명박 정부는 일제고사를 부활시켰다. 1998년 이후 4~5% 표집 방식으로 실시된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를 2008년부터 전수 방식으로 바꾸기로 한 것이다. 한날한시 전국 모든 초6, 중3, 고1 학생들이 같은 시험지, 같은 문제를 풀게 되었다. 시험 점수로 ‘한 줄 세우기’가 가능해졌다. 일제고사에 대비해 어떤 학교들은 ‘0교시’와 ‘야자(야간자율학습)’를 되살렸다. 어느 초등학교 교장은 성적이 좋지 못한 학생들을 교장실로 불러 “학교 평균점수 낮추지 말고 전학을 가거나 과외를 하라”고 다그쳤다.

많은 교사들이 해임되거나 징계를 받았다. 학생에게 일제고사 응시 선택권을 줬다는 이유에서다. 2008년 10월 공정택 서울시교육감은 일제고사 날 학생들에게 체험학습을 허용해준 교사 7명에게 해임·파면을 통보했다. 반면 2010년 일제고사 때는 전북·강원 교육감 등이 일제고사 미응시 학생들의 출결 여부를 두고 교육부와 맞섰다. ‘무단결석’ 처리를 하라는 교육부 지시에 따르지 않는 방식으로 일제고사 정책에 반기를 든 것이다.

2008년 12월, 일제고사 이슈로 해임·파면된 교사들의 징계 철회를 요구하는 집회가 열렸다.ⓒ시사IN 자료

일제고사를 비롯해,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각 지역 ‘진보’ 성향 교육감들은 여러 가지 이슈를 두고 교육부와 부딪쳤다. 촛불집회·세월호·국정교과서 관련 시국선언에 참여한 교사들에 대한 교육부의 징계 요청을 거부했다. 김상곤 경기도교육감과 김승환 전북도교육감 등은 교육부로부터 직무유기 혐의로 검찰에 고발당했다. 교육감들은 연구학교 지정을 거부하는 방식 등으로 박근혜 정부의 한국사 국정교과서의 학교 현장 도입을 막기도 했다. 교육부는 시정명령과 특정 감사 등으로 제재하겠다고 을렀으나 결국 국정교과서는 일선 학교들에 제대로 보급되지 못했다. 대통령과 교육부가 아무리 강하게 밀어붙이는 교육정책이라도 교육감의 협조가 없으면 실행되기 어렵다.

3. 무상급식: 교육감이 쏘아올린 ‘보편복지’

교육청에서 출발한 정책이 향후 10년 이상 대한민국 정국을 달구는 대형 의제가 되었다. 바로 초·중·고 학생 ‘무상급식’에서 촉발된 ‘보편복지’ 담론이다.

담론의 시작은 2009년 6월 경기도 교육위원회의 예산심의 과정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도 교육위는 김상곤 당시 경기도교육감이 추진하려던 초등학생 무상급식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 무상급식은 김 교육감의 핵심 선거공약이었다.

이 결정 이후 전국이 무상급식 찬반 논쟁으로 들끓었다. 무상급식 반대파는 “저급한 포퓰리즘(김문수 경기도지사)” “사회주의적 발상(이군현 한나라당 의원)”이라 공격했고, 찬성파는 “4대강 예산의 10%만 있어도 전국 초·중·고 전체 무상급식이 가능하다(배옥병 서울시친환경무상급식추진운동본부 상임대표)”라고 맞섰다. 이듬해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무상급식은 야권의 정책연대 핵심 공약으로 떠올랐다. 여당인 한나라당은 ‘선별급식’을 당론으로 정했다. 이는 우리 사회 보편복지 논쟁의 신호탄이었다.

2011년 6월, 친환경무상급식연대가 무상급식의 예산 집행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시사IN 자료

초·중·고 무상급식은 오세훈 서울시장의 문제 제기로 한 차례 또 정국을 휩쓸었다. 2010년 서울시의회가 초등학교 무상급식을 위한 조례를 제정하자 오 시장은 “이건희 손자에게도 공짜 밥을 주려고 세금을 쓰는 게 맞느냐”라며 반발했다. 이듬해 8월 ‘투표율이 33.3%에 미달하면 시장 직을 사퇴하겠다’며 무상급식 확대를 주민투표에 부쳤다. 투표율은 25.7%를 기록했다. 오 시장은 2011년 8월26일 시장 직에서 물러났다. 두 달 뒤 치러진 재보궐 선거에서 박원순 후보가 서울시장으로 선출되었다.

4. 누리과정: 교육교부금이라는 뇌관

무상급식 이후 보편복지는 거의 모든 선거 후보들의 공약에 스며들었다. 박근혜 대통령도 대선 공약으로 ‘무상보육’을 내세웠고 임기 중 실행을 계획했다. 하지만 재원이 문제였다. 2015년 모든 어린이집·유치원 누리과정(3~5세) 보육을 무상으로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는데 어린이집 보육료 예산 2조2000억원이 모자랐다.

박근혜 정부는 방법을 찾았다. ‘지방교육재정교부금(교육교부금)’이라는, 각 지역 교육청에 배부된 예산을 활용하는 것이었다. 교육부와 기획재정부는 교육감들에게 초등학교 무상급식 재원 등 다른 초·중·고 사업 예산을 아껴 누리과정 예산을 메워달라고 요청했다. 초등학생 언니의 점심 밥값을 빼앗아 어린이집 동생의 보육료를 대라는 중앙정부의 요구를,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차원에서 거부했다. 이른바 ‘누리과정 대란’이다. 각 지역 교육감들은 ‘공약 실행 생색은 대통령이 내고, 뒤치다꺼리는 교육청들이 떠맡는’ 정부의 복안에 반기를 들었다.

교육교부금은 이번 정부에서도 뇌관이 될 확률이 높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3월2일 대선후보 TV 토론에서 공약으로 내세운 보육국가책임제를 실현할 재원을 어디서 충당할 거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지방교육재정교부금에서 축적된 돈들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에 10조원에서 15조원을 전용할 수 있다.” 중앙정부 예산 대신 각 시도 교육청의 교육교부금을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각 지역 교육감 자리에 누가 앉든, ‘누리과정 대란’과 같은 중앙정부-교육청 간 예산 갈등을 피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5. 오장풍 사건: 학생 삶을 바꾸는 교육감

2000년대까지만 해도 학교 내 학생 체벌은 불법·합법의 문제가 아닌 ‘찬반’의 논쟁거리였다. 2005년 제291회 MBC 〈100분 토론〉 주제는 다음과 같았다. ‘체벌, 폭력인가 애정인가.’ 2022년 부산시교육감 선거 후보로 나선 하윤수 부산교대 교수 등이 체벌 찬성 측, 고 신해철 가수 등이 체벌 반대 측 토론자로 출연했다.

변화는 서울시교육청에서 시작됐다. 초등학생들을 자주 심하게 폭행해온 일명 ‘오장풍 교사’ 사건을 계기로 2010년 7월 서울시교육청(곽노현 교육감)은 서울 시내 각 학교들에 ‘체벌 금지 지침’을 내렸다. 이듬해 3월 교육부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개정해 도구나 신체 등을 이용해 학생의 신체에 고통을 가하는 ‘직접 체벌’을 금지했다. 서울시교육청은 2012년 1월 ‘체벌 등 모든 물리적 및 언어적 폭력’을 금지하는 내용 등을 담은 서울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했다. 경기·광주·전북·충남·제주·인천 등에서도 연이어 학생인권조례를 만들어 시행했다.

2011년 서울 광화문에서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위해 서명하는 시민들. ⓒ시사IN 자료

체벌 금지처럼, 교육감의 정책 결정은 학생들의 삶 세밀한 부분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또 하나의 사례가 ‘학원 영업시간 규제’다. ‘학원의 설립·운영 및 과외교습에 관한 법률’에 따라 교육감은 각 시도의 조례 범위에서 학원의 교습 시간 등을 정할 수 있다. 현재 지역별로 밤 10~12시까지 심야 교습 시간이 제한되어 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학원 일요휴무제’를 검토하기도 했다.

2014년 9월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은 학생들의 정책 제안을 받아들여 등교 시간을 늦추는 ‘9시 등교제’를 시행했다. 서울·인천·강원·충남 등 다른 지역으로도 확산됐다. 이번 경기도교육감 선거에서 이 9시 등교제가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보수 진영의 임태희 후보는 “일선 학교의 자율성을 침해한다”라며 9시 등교제 폐지를 공약했다. 등교 시간에서부터 학원 문 닫는 시간까지, 학생들의 삶 거의 전부가 새 교육감에게 달려 있다.

6. 금괴 택배: 교육감은 알고 계신대

2016년 4월 경기도교육청 감사관 집에 금괴 택배가 배달됐다. 발신인은 경기도의 한 사립유치원 설립자. 경기도교육청이 사립유치원 특정 감사를 벌이던 시기였다. 회계 비리 무마용으로 감사관에게 뇌물을 보낸 것이다.

교육감은 법률상 권한에 따라 지역 내 공립 초·중·고뿐 아니라 사립학교, 사립유치원의 회계장부도 들여다볼 수 있다. 부정을 발견하면 징계를 내리거나 검찰에 고발하기도 한다. 교육법인 설립허가를 취소할 수도 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2019년 ‘유치원 3법 반대 투쟁’을 벌인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가 정관상 설립 목적에서 벗어난 행동을 하고 공익을 침해했다며 법인 설립취소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한유총은 이후 법인 설립허가 취소처분이 부당하다며 낸 소송에서 2021년 2월25일 최종 승소했다).

2017년 7월, 유아교육발전 기본계획 세미나가 열리는 서울시교육청을 점거한 한유총 회원들.ⓒ연합뉴스

교육감은 교육기관 감사·감독·지정(취소) 권한을 지녔다. 이 때문에 학교나 입시 비리와 관련된 모든 정치 이슈에서 종종 논란의 중심에 선다. 부정 의혹을 받고 있는 혐의자의 예전 기록을 들춰보느냐 마느냐가 교육감의 결정에 달렸다. 2016년에는 최서원씨(개명 전 최순실) 딸 정유라씨가 다닌 청담고를 감사해 정씨에게 주어진 입시 특혜 사항을 찾아냈다. 지난해 12월에는 국민의힘 의원들이 교육청을 항의 방문하기도 했다. 서울시교육청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딸 조민씨의 한영외고 학생부 기록 사본을 고려대에 제출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서울시교육청은 국회 요청에 따라, 윤석열 당시 대선후보의 배우자 김건희씨의 초·중·고 교원 근무 경력이 없다고 확인하는 자료를 제출하기도 했다(김씨는 경력을 부풀린 ‘허위 이력서’ 의혹을 받았다).

교육감은 자율형사립고(자사고)를 지정하거나 지정 취소할 권한도 갖고 있다. 지난 정부가 추진해온 자사고·외고·국제고의 일반고 전환은 아직 미완성 상태다. 윤석열 정부는 ‘고교 유형 다양화’를 국정과제로 내걸었다. 상당수 보수 진영 교육감 후보들도 ‘자사고·외고 등을 유지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오랫동안 준비되고 추진돼온 교육정책도 이제 풍전등화의 처지에 놓였다.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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