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8일 미국 워싱턴 DC 연방 의사당 앞에서 TV 드라마 〈핸드메이즈 테일〉 속 시녀 복장을 한 여성들이 임신중지 권리를 위한 시위를 하고 있다. ⓒAP Photo

임신중지의 권리는 임신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임신 유지 여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함을 뜻한다. 물론 여전히 임신중지가 권리의 영역이 될 수는 없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기에 법과 정책이 권리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만들어지는 일이 중요하다.

최근 ‘로 대 웨이드(Roe vs Wade)’ 판결이 뒤집힐 위기에 처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미국 사회가 임신중지에 대한 논쟁으로 들끓고 있다. 정치 전문 매체인 〈폴리티코〉는 지난 5월2일, 미국의 연방 대법원이 1973년 로 대 웨이드 판례를 뒤집기로 결정했다고 보도하며 사무엘 알리토 대법관이 작성한 다수의견 판결문 초안을 공개했다. 이 판결문은 올해 6~7월에 판결이 내려질 예정이던 ‘돕스 대 잭슨 여성건강기구’ 사건의 판결문이었다. 돕스 대 잭슨 여성건강기구 사건은 2018년 미시시피주가 임신 15주 이후의 임신중지를 금지한 것에 대해 잭슨 여성건강기구가 이의를 제기한 사건이다. 원고인 돕스는 미시시피 보건 당국을 대표하는 토머스 돕스의 이름이다.

이 판결문에서 뒤집고자 하는 로 대 웨이드 판결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자. 1969년 텍사스주 댈러스에 사는 22세 여성이 임신중지 수술을 요청했으나, 임신 당사자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경우가 아니면 임신중지가 허용되지 않는 당시 텍사스 주법 때문에 의사를 구할 수 없었다. 이에 여성은 텍사스주를 상대로 위헌 소송을 제기했다. 이 여성은 소송 당시 ‘제인 로’라는 가명을 사용했다. 피고소인은 댈러스의 지방검사인 헨리 웨이드가 선정되어 이 사건은 ‘로 대 웨이드’로 불리게 되었다. 짧게 로(Roe)라고 불리기도 한다.

1973년 미국 연방 대법원은 7대 2로 텍사스주의 법이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이 판결에서 연방 대법원은 수정헌법 제14조에 규정된 권리주체인 사람에 태아는 포함되지 않으며, 생명이 언제부터 시작되는지 법원이 답할 필요가 없다고 보았다. 반면 임신 당사자의 임신중지에 대한 결정은 헌법이 보장하는 사생활의 권리에 포함된다고 보았다.

로 대 웨이드 판결의 내용은 임신 3개월까지 여성이 의사와 상의해서 임신중지를 전적으로 결정하고, 그다음 3개월 동안은 임신한 사람의 건강에 대한 의사들의 판단을 반영해 임신중지 선택권을 부여하며, 그 이후의 임신중지는 금지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임신중지의 권리가 헌법으로 보장된다고 하면서도 특정 시기 이후의 임신중지를 제약하는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임신중지 권리 운동이 ‘로 대 웨이드’ 이전과 이후로 나뉠 만큼 이 판결은 역사적인 사건이기도 했다.

로 대 웨이드 이후 미국의 여러 주에서는 임신중지를 제한하는 규제를 계속 만들어왔다. 임신중지를 지원하는 공공기금을 삭감하거나 청소년이 임신중지를 원할 경우 부모 동의를 강제하는 식이었다. 2019년에는 적어도 17개 주에서 임신 6주, 혹은 그보다 더 이른 시기의 임신중지까지 금지하는 법안을 도입했다. 이런 법들은 다분히 의도적으로 만들어졌다. 해당 법에 위헌성이 제기되면 연방 대법원으로 사건이 올라갈 것이고, 연방 대법원에 보수적인 대법관이 다수라면 이 기회에 로 대 웨이드 결정을 뒤집을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 아래 도입된 법들이라는 의미다.

보수 대법관이 연방 대법원 다수 차지

공화당을 중심으로 한 미국의 보수 정치인들 또한 계속해서 로 대 웨이드 결정을 뒤집고 싶어 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러닝메이트이자 임신중지를 강력히 반대했던 마이크 펜스 전 부통령은 2016년 선거 유세에서 “우리가 트럼프의 뜻대로 미국 연방 대법원에 대법관들을 임명한다면 로 대 웨이드 판결은 역사의 잿더미로 돌아갈 것”이라고 약속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 임기 동안 닐 고서치, 브렛 캐버노, 에이미 코니 배럿이 대법관으로 임명됨으로써 보수적인 대법관이 연방 대법원의 다수를 차지했다. 보수 대법관이 다수가 되자 임신중지를 반대하는 진영은 각 주의 임신중지 관련 사건들이 연방 대법원으로 올라가길 바라며, 위헌성이 의심되는 법들을 지지해왔다. 지난해 한국에 번역된 〈턴어웨이:임신중지를 거부당한 여자들〉(동녘)을 쓴 연구자 다이애나 그린 포스터는 최근 몇 년 동안 미국의 임신중지 접근성이 로 대 웨이드 결정 이후 그 어느 때보다 큰 위험에 처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다시 이번에 유출된 판결문 초안에 관한 내용으로 돌아가 보자. 이 초안은 로 대 웨이드 판결이 뒤집혀야 하는 이유를 임신중지 권리는 헌법의 어떤 조항에 의해서도 보호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헌법에 대한 해석 오류다. 미국 헌법 제정 당시에 여성의 참정권을 포함한 기본적 권리를 보장하는 조항이 없었기 때문에 1973년 로 대 웨이드에서는 수정헌법 14조를 통해 사생활의 권리가 도출된다고 보았다. 그리고 이 사생활의 권리가 여성의 임신중지 권리를 포함한다고 인정했다. 이번 판결문 초안은 “과거에 누가 권리를 행사했는지에 따라 권리가 정의된다면, 내려오는 관행은 계속해서 정당화될 수 있고 새로운 집단은 한번 거부된 권리를 주장할 수 없게 된다”라고 한, 이전의 동성결혼에 관한 연방 대법원 판결 선례와도 어긋난다.

자료:구트마허 연구소

이번 판결문 초안에는 ‘로 대 웨이드 판결이 국가의 분열을 강화해왔으며 임신중지를 규제할 권한은 국민에 의해 선출된 대표들에게로 돌아가야 한다’는 문장이 나온다. 즉 로 대 웨이드를 폐기하고 각 주가 임신중지 규제에 대한 권한을 행사하도록 만들겠다는 뜻이다. 이 판결문 초안대로 임신중지의 허용 여부를 각 주에 맡기게 된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재생산권을 옹호하는 비영리 연구기관인 미국의 구트마허 연구소는 로 대 웨이드가 폐기된다면 미국 50개 주 중 26개 주에서 임신중지가 사실상 금지되거나 제한될 것이라고 전망했다(46쪽 〈그림〉 참조). 특히 유색인종, 청(소)년, 성소수자, 이주민, 장애인, 저소득층 등 사회적 불평등에 의해 이미 차별을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더 가혹한 일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앞서 언급한 책 〈턴어웨이〉에 인용된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임신 1분기(14주까지)에 임신중지를 한 여성의 4분의 1이 약 160㎞ 이상 이동해야 했다. 더 늦은 시기에 임신중지(20주 이후)가 필요한 여성 중 30%가 약 160㎞ 이상 이동이 필요했다. 로 대 웨이드가 유효한 때에 연구를 한 내용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임신중지를 위해 먼 거리를 이동하고 있는데, 만약 로 대 웨이드가 폐기되고 임신중지가 불법이 되는 주가 많아진다면 다른 주로 이동할 수단이 없거나 경제적 어려움 혹은 장애가 있는 경우 임신중지의 권리가 크게 제한될 수밖에 없다.

지적장애인 권리 증진을 위한 단체 ‘인클루전 아일랜드’가 발간한 〈임신중지와 장애:교차적 인권 기반 접근을 향하여〉라는 문서에는 아일랜드의 임신중지 제한법 때문에 임신중지를 목적으로 아일랜드 밖으로 나가는 여성들이 있지만, 장애 여성에게는 (아일랜드 밖으로 나가는 일이) “넘어설 수 없는 장벽”이라고 말한다. 사회적 차별 때문에 장애 여성은 교육수준 및 취업률이 낮고 소득 또한 낮을 가능성이 커 임신중지를 위해 해외로 떠날 여력이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가깝고 접근 가능한 곳에서 임신중지를 할 수 있는 법적·실질적 접근권 보장은 매우 중요하다.

여성에 대한 국가 통제 승인하는 꼴

의학저널 〈랜싯〉은 5월14일 ‘왜 로 대 웨이드가 지켜져야 하는가?’라는 글을 발표하며 로 대 웨이드 판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 글에서는 의도하지 않은 임신과 임신중지는 보편적 일이며 만약 대법원이 임신중지 권리를 부인한다면 그것은 여성에 대한 국가의 통제를 사법적으로 승인하는 꼴이 될 것이라 경고한다. 또한 소수자 집단일수록 안전하지 않은 임신중지에 노출되고 있는 현실을 제시하며, 더 많은 법적 장벽을 만들 게 아니라 그 장벽을 해소할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로 대 웨이드를 뒤집고자 하는 재판관은 임신중지를 끝내는 데 결코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안전한 임신중지를 끝장내는 데 성공할 뿐이라고 강력한 어조로 경고하기도 했다.

한편 미국 코네티컷주는 최근 임신중지 접근권을 확대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이 법은 임신 1분기에 수술 및 약물 임신중지를 제공할 수 있는 의료인의 범위를 확대하고, 코네티컷주에서 임신중지에 관한 의료를 제공받거나 제공했다는 이유로 고발당한 사람이 임신중지를 범죄화하는 주로 인도되지 못하도록 보호하는 내용 등을 포함한다.

코네티컷주 법은 다른 주의 임신중지를 제한하는 법으로부터 시민들의 권리를 보호하는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예측된다. 텍사스주의 경우 지난해부터 태아의 심장박동이 감지되는 시기(약 6주) 이후 임신중지를 금지하는 법을 시행하고 있다. 의사 등 임신중지를 도운 사람에게 개인이 민사소송을 제기해 돈을 받아낼 수 있도록 하는 이 법은 사실상 임신중지를 금지하는 법으로 작용하여 임신중지를 원하는 텍사스주의 시민들이 다른 주로 이동하도록 만들고 있다.

임신중지 권리를 지지하는 미국 시민들은 ‘로를 지켜라(Protect Roe)!’라는 구호를 들고 거리로 나섰다. 여러 국가에서는 이미 임신중지 합법화와 접근성 확대의 방향이 대세이며 미국의 많은 활동가들도 이런 사례를 참고해 운동을 이어가고 있다. 로 대 웨이드 판결을 지키는 것은 로 대 웨이드의 내용이 임신중지 권리를 완벽히 보장하기 때문이 아니다. 이 판결이 지금까지 임신중지 권리의 보장을 위한 기초로 작용해왔기 때문이며, 만약 뒤집힐 경우 여러 주에서 임신중지가 제한될 것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로는 지금까지 임신중지 권리를 위해 투쟁해왔던 수많은 시민의 대명사이기도 하다. 지금은 2022년이다. 1973년의 로를 지키는 동시에 임신중지에 대한 접근성 확대를 위해 로 대 웨이드 결정 이상으로 나아가야 할 때다.

기자명 김보영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사무국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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