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17일 사울리 니니스퇴 핀란드 대통령(왼쪽)과 마그달레나 안데르손 스웨덴 총리가 나토 가입 방침을 밝히고 있다. ⓒXinhua

러시아가 지난 2월 우크라이나를 전격 침공한 뒤 그간 불안한 눈으로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던 핀란드와 스웨덴이 마침내 오랜 중립국 지위를 포기하고 미국 주도의 유럽 집단안보기구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가입하기로 결정했다. 나토 확장에 따른 미국과 러시아 간의 갈등이 격화될 조짐이다.

5월17일 두 나라가 공식 가입 결정을 내리자 미국을 포함한 대다수 회원국은 즉각 환영을 표시했다. 프랑스와 영국 등은 두 나라의 나토 가입이 이뤄질 때까지 유사시 군사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공약했다. 두 나라는 미국과 옛 소련이 팽팽히 맞서던 냉전 당시는 물론 1991년 냉전이 종식된 이후에도 어느 쪽에 속하지 않은 채 중립국의 길을 택했다. 그런 두 나라의 나토 가입 결정으로 가뜩이나 서방의 혹독한 경제제재로 휘청거리는 러시아는 예기치 않은 나토의 확장에 따른 안보 비용을 톡톡히 치를 전망이다. 반면 미국은 러시아가 그토록 반대해온 나토의 추가 확장이라는, 전혀 의도치 않던 효과를 거두게 됐다. 〈뉴욕타임스〉가 두 나라 가입에 따른 나토 확장을 가리켜 ‘나토의 재탄생’이라고 의미를 부여한 것도 이 때문이다. 러시아는 향후 두 나라에 나토 병력이 주둔할 경우 핵무기를 포함한 상응 군사 조치를 취하겠다고 응수해 유럽의 안보 지형은 냉전 당시처럼 꽁꽁 얼어붙을 듯하다.

핀란드와 스웨덴은 러시아가 2014년 우크라이나 영토인 크림반도를 침공해 강제 흡수할 당시까지만 해도 중립국 지위를 버릴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하지만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특수 군사작전’이란 구실로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격 침공을 명령하자 두 나라의 생각이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두 나라는 러시아 군이 도발도 하지 않은 주권국 우크라이나를 짓밟자 지금처럼 중립국으로 남아 있다가는 언젠가 우크라이나 같은 운명에 처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설상가상 러시아 병사들이 우크라이나 민간인에게 저지른 참혹한 만행이 드러나면서 중립국을 선호하던 두 나라 국민의 여론도 나토 가입 쪽으로 급속히 기울기 시작했다.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핀란드의 경우 나토 가입을 찬성하는 여론이 77%까지 치솟았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찬성 여론이 겨우 20~30%였다. 지난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핀란드 국민에게 얼마나 큰 충격을 주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과거 러시아로부터 침공당한 경험이 있는 핀란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러시아로부터 생존을 위해 ‘중립국’을 택했지만 공교롭게도 같은 이유로 중립국 지위를 포기하기로 한 것이다. 나토 가입에 훨씬 미온적이던 스웨덴에서도 핀란드가 나토에 가입하면 따라가야 한다는 여론이 62%에 달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두 나라가 나토에 가입하지 않았을 뿐 실은 1994년 이후 나토의 공식 파트너 자격을 얻어 나토가 주최하는 각종 군사훈련에 참여할 정도로 나토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왔다는 점이다. 다만 회원국이 아니므로 유사시 이들의 집단방위를 보장받을 수 없다는 게 결정적 취약점이었다. 나토 헌장 제5조는 회원국이 적국의 침략을 받으면 이를 회원국에 대한 침략으로 간주해 집단 대응하도록 규정돼 있다. 따라서 두 나라가 나토 가입을 통해 노리는 점도 바로 이 같은 집단 안보이다. 나토에 가입하면 유사시 러시아의 침공에 따른 안보 불안을 느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가입 부채질한 우크라이나 침공

핀란드는 1992년 미군 전투기 62기를 구매했다. 1995년엔 스웨덴과 유럽연합(EU)에 나란히 가입했다. 인구 553만명인 핀란드는 상비 병력 28만명 외에 예비군 90만명을 보유하고 있다. 핀란드 국방비는 약 2700억 달러(2020년 기준)에 달하는 국내총생산(GDP)의 2% 수준이다. 하지만 러시아와 무려 830마일(약 1328㎞)에 걸쳐 국경을 맞대고 있는 상황이라 스웨덴보다 안보 불안감이 더할 수밖에 없다. 역대 핀란드 정부는 냉전 종식 이후 나토 가입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보여왔다. 그러던 와중에 우크라이나 사태가 나토 가입을 부채질한 셈이다.

같은 중립국이면서도 스웨덴은 핀란드와 다른 길을 걸어왔다. 광활한 영토에 비해 인구가 1000만명 정도인 스웨덴은 상비 병력이 고작 2만4000명, 예비군도 3만2000명 정도에 불과하다. 냉전이 종식된 이후 스웨덴은 군사력 규모를 계속 줄여왔다. 실제 노벨 평화상 주최국답게 스웨덴은 냉전이 한창이던 1960~1980년 당시 중립국 지위를 한껏 이용해 평화중재국으로 명성을 떨쳤다. 하지만 스웨덴은 2014년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침공하자 징병제를 재도입하고 국방비를 증액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200년 이상 유지해온 중립국 지위를 포기하기로 한 것이다.

핀란드와 스웨덴이 일단 가입을 신청한 만큼 나토는 가입 기준과 절차에 따라 이를 조만간 신속히 처리할 것으로 보인다. 나토는 유럽 어느 나라건 나토 가입을 희망하면 원칙적으로 문호를 개방해왔다. 1991년 냉전 종식 이후 옛 소련 일원이던 동구권 국가들을 포함한 14개국이 나토에 비교적 수월하게 가입할 수 있었던 것도 이 같은 문호 개방 덕분이다. 다만 가입은 만장일치제여서 30개 회원국 중 한 나라라도 반대하면 들어올 수 없다. 신청국은 가입에 필요한 일정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이를테면 신청국은 민주적 정치체제와 시장경제 체제를 갖춰야 한다. 또 자국 내 소수민족을 공정하게 다뤄야 하고 평화적으로 분쟁을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회원국은 나토 헌장 제5조에 따라 유사시 어느 회원국이 공격을 받으면 집단방위 차원에서 자국 병력을 파병할 수 있어야 하기에 나토의 군사작전 참여가 필수이다. 핀란드와 스웨덴은 이 같은 요건을 충족하기 때문에 가입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

하지만 핵심 회원국인 터키가 두 나라의 나토 가입에 일단 제동을 걸어 출발이 순조롭지 않을 전망이다. 터키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자국을 상대로 무장 독립투쟁을 펼치고 있는 쿠르드노동당(PKK)에 대해 두 나라가 관용적 기조를 유지했다며 이게 시정돼야 가입에 찬성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문제는 핀란드·스웨덴이 나토에 가입한다고 해서 지금보다 더 안전해질 수 있겠느냐 하는 점이다. 우선 두 나라는 나토 가입을 통해 유사시 즉각적인 집단안전 보장을 받는다는 점에서 확실한 안보 실리를 챙길 수 있게 된다. 유럽 주둔 미군 사령관을 지낸 벤 호지스 예비역 중장은 BBC 방송에서 “현대화된 군사력을 갖춘 두 민주정부 국가는 나토 가입으로 엄청난 긍정적 효과를 볼 것”이라고 말했다.

“오히려 무기 경쟁 촉발할 수 있다”

5월9일 러시아의 전승기념일에 등장한 대륙간 탄도미사일 발사 차량. 푸틴은 이날 나토의 동진정책 중단을 촉구했다. ⓒTASS

하지만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핀란드의 안보 우려는 여전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핀란드에 나토군이 배치되면 러시아도 나토와의 군사 균형을 이유로 핀란드 턱밑에 핵무기를 포함한 공격용 무기를 배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스웨덴 평화중재협회의 안보 전문가인 데보라 솔로몬은 “두 나라가 나토에 가입하고, 나토가 핵억지력을 제공하면 오히려 러시아와의 군사적 긴장을 높이고 무기 경쟁을 촉발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푸틴은 5월9일 전승기념일 연설에서 러시아 국경을 향한 나토의 동진정책을 중단하라고 강력히 촉구했다. 그는 최근까지만 해도 핀란드·스웨덴이 나토에 가입하면 “보복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런데 막상 두 나라가 나토 가입을 결정하고 이를 공개적으로 천명하자, 푸틴은 두 나라의 행동이 마치 자신이 초래한 것처럼 시인하는 양 차분한 반응을 보여 눈길을 끌었다. 그가 우크라이나에 침공 명령을 내린 건 나토의 확장을 막기 위한 것이었는데 결과적으로 ‘나토 확장’을 초래했기 때문이다. 이를 의식한 듯 푸틴은 “두 나라의 나토 가입 자체가 러시아에 즉각적인 위협이 되지 않는다”라면서도 “만일 나토 군대와 무기가 배치되면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만 말했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은 두 나라의 나토 가입 시 발트해 인근 러시아령 칼리닌그라드에 핵무기를 배치하겠다고 경고한 바 있다. 실제 러시아는 5월4일 칼리닌그라드에서 핵탄두를 탑재한 탄도미사일 모의훈련을 실시했다.

일부에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 전쟁을 치르는 와중에도 나토 가입을 결정한 두 나라에 대해 군사적 위협을 가할 수 있다는 관측을 제기하기도 했다. 〈뉴욕타임스〉는 “미국을 포함한 일부 나토 회원국들은 두 나라의 가입이 30개 회원국 승인을 거쳐 완료될 때까지 최대 1년이 걸릴 수도 있는 만큼 그 기간 중 이들의 안보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대책을 이미 논의하기 시작했다”라고 전했다.

기자명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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